양승우♥마오,
세상에 이런 사랑놀이란...
[다큐멘터리 사진]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
    2017년 01월 18일 01: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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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진하는 사람들이 자나 깨나 갖고 있는 고민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전시란 또 무엇일까, 이는 더 어려운 고민거리다. 모든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한다고 하는,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일, 그것이 어차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어쩌면 보기에 따라 놀이 혹은 그냥 하는 어떤 것일 수 있다.

아이를 낳아 본 엄마들은 안다. 첫 아이를 낳고 매일매일 쓴 육아일기,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을 쏟아 부으며 한 일이 또 있을까? 이 경우 아빠들은 보통 카메라를 많이 든다. 카메라로 소중한 내 새끼 자라나는 한 순간 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 아빠가 남기는 사진 기록이 엄마나 남긴 글 기록보다는 찐한 여운이나 지남철처럼 당기는 핏줄의 연을 확인해주지는 못한다. 사진으로 남기는 기록은 놀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기 신혼부부가 그런 놀이를 하면서 모아놓은 사진으로 하는 전시가 있다. 서울 충무로에서 열리는 중에 있는 〈양승우♥마오 부부의 행복한 사진일기.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가 바로 그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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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양승우와 마오는 1996년에 찬란하고 슬픈 청춘의 날들을 청산하고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에서 사진을 수학하고 가난한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양승우는 2000년 초 학교에 들어온 후배 마오를 만났고 그녀는 양승우를 10년 동안 따라다녔다. 스물네 살 때 만나 서른셋에 결혼했다.

마오는 교수를 아버지로 둔 명망가의 여식이고 양승우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한국 전라도 출신의 가난한 사진가였다. 만난 지 10년 정도 되어 결혼을 승낙 받으러 갔을 때 마오 아버지는 그냥 딸을 잘 부탁하네, 라고만 했다 한다. 그리고 둘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신혼살림에 들어간다. 그리고선 둘이 서로를 죽을 때까지 찍어주기로 했단다.

지금 하는 이 전시는 바로 신혼 생활 첫 3년 핑크빛 나날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기록이 아니고 놀이의 흔적이다. 사랑놀이,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가슴 떨리고 가슴 저미는 그 사랑놀이 말이다. 사진은 이런 게 좋다. 글같이 무겁지 않아, 가벼워서 좋다. 굳이 예술의 창의성을 쥐어짜면서 작품의 경지에 올라간 것들도 있으나 이렇게 둘이 놀면서 가볍게 찍다가 예술의 경지에 올라간 것도 있다. 이건 사진으로만 닿을 수 있는 작품의 경지다.

사진전에 대해 사진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두 사람의 사진전이 사진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거침없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갖추어야 할 제1의 자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두 말 하지 않고 난, 라뽀(rapport) 형성이라고 한다. 대상과 사진가와의 거리가 없어야 한다는 것. 카메라를 든 사진가가 공기와 같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글로 쓰자니 순간적인 기록을 놓칠 수밖에 없고, 그림으로도 마찬가지인데 둘 다 글을 쓰는 이나 그림을 그린 이의 주관이 상당히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대상은 성화(聖化)가 되면서 그 뒤로 아우라가 발생한다. 그런데 사진은 다르다. 순간을 무의미하게 잡으니, 무엇보다도 기계적이다. 아우라가 있을 수 없고, 속화(俗化)가 될 수밖에 없다. 글이나 그림의 아우라에 주눅 들어 살 수밖에 없던 인간을 해방시켜 준 것이 사진이다.

라뽀를 형성하여, 그 카메라라는 기계를 의식하지만 않으면 매 순간을 그래도 가장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게 카메라다. 물론 사진가의 재현 의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상과 일 대 일 관계가 비교적 잘 유지될 수 있는 게 카메라다. 두 사람은 모두 전문적으로 사진을 수학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사진가다. 카메라를 들고 장면을 포착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능하기도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평소 하는 모습 그대로 자세를 갖추는 데도 능하다. 그래서 그 둘이 잡아낸 수 백 컷의 사진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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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랬는지, 사진가 김문호는 전시를 보고서 이렇게 평한다.

“신윤복의 스승 김홍도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수업하던 도중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림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잠시 멀뚱한 침묵이 흐르고 신윤복이 답을 설한다. ‘그림은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리고, 그림으로 그리니 또 다시 그립고 … 그림은 그리움입니다.’ 이후 그 한 문장은 차마 잊히기를 거부하고 내 가슴 한켠에서 늘 그리움처럼 남아 있다. 그 간곡한 단어, 그리움. 함께 있어도 잊히기를 거부하는 그리움, 그것이 오늘 양승우와 마오의 사진들에서 꿈틀거리며 내게 ‘또 다른’ 그리움을 뒤챘다. 수채화로 그려낸 쌉싸름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 … 잘 다듬어진 일본의 하이쿠 한 수를 읽은 것 같은 담백함 …”

두 사람의 사진은 모두 사진가와 대상과의 거리가 무너지고 없다. 그렇다고 몰래 보는 관음의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양승우의 사진 안에는 항상 페이소스가 강렬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전작, 《청춘길일》이 2000년대를 살아온 그 깍두기 형들과 함께 보낸 청춘의 하루하루를 슬프게 찬미한 것이라면 이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는 둘이 한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마주 보고 서로를 만지고, 서로를 품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의 끝자락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한 편의 시(詩),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다. 세상과 삶의 이치를 말 한 두 마디로 풀어낸 일본 문학의 정수 하이쿠 같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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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이 한 장 있다. 그리고 아직 채 피지도 않은 붉은 꽃이 어느 집 담 밖으로 토해내듯 그 꽃들을 떨어뜨린 사진이 있다. 이 둘을 전시장에서는 나란히 붙여 놨다. 알 듯 모를 듯, 일본적인 느낌이다, 하이쿠가 주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라고 말했더니, 사진가 양승우가 설명을 해준다. 결혼을 하면서 동시에 인생의 꽃은 다 떨어지는 겁니다. 사진으로 말하기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눈빛출판사에서 발간된 같은 이름의 책에서 그 사진은 전기난로 앞에 놓인 귤 다섯 개를 찍은 사진과 나란히 있다. 이 두 사진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사진가가 애써 감춘, 상징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것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도 사진만이 주는 묘미다.

한 장의 사진이 홀로 서 있을 때 주는 느낌과 의미는 다른 사진과 함께 섰을 때 주는 느낌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 파트너가 달라지면 그 의미나 느낌도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그 달라짐을 독자는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딱히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는 이는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을 가져보고, 읽는 이는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해보는 것이 무한정 허용되는 것이 사진 이미지가 주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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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할 수 있는 일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좋은 의미를 가질까? 이는 우문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카메라라는 기계만 있고 세계를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마음과 뭔가 전하려는 메시지만 서 있다면 누구든 사진으로 말할 수 있는 세계를 활짝 열어젖힐 수 있다. 굳이 예술의 세계를 탐할 필요도 없고, 굳이 ‘작가’를 욕심낼 이유도 없다.

사랑하는 이와 놀면서 안고 만지고 찍어주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이 과연 있을까?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이 있냐 말이다. 양승우가 프랑스 몽생 미셸에서 찍은 마오 사진 한 장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 그 아름다운 사랑이 부럽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이 사랑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 꺾이지 않아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이제는 멀리 멀리 가버린 나와 내 아내의 저 때가 그립기도 해서 그랬다.

양승우가 사진 옆에 이렇게 글을 썼다. “프랑스 몽생 미셸에서 염분이 들어 있는 물을 먹고 자란 양고기가 유명한데 비싸서 못 먹고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먹자고 약속했다.” 마오는 저 웅크리고 앉은 소년에서 무엇을 보는 중일까?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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