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는 학교가 아니고
    절은 절이 아닌 라오스
    [에정칼럼] 산골의 태양광발전 설치
        2017년 01월 09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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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라오스 산골마을들에서 태양광발전 설비와 그 운영을 맡는 마을위원회의 설치를 지원하는 작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입국장을 나와 이십 여분 라오스에 없던 찬바람을 맞다 공항버스에 올랐다.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금방 한국의 후끈한 공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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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아침 산골마을 법당에서 홰치는 수탉

    사전조사는 사전조사가 아니게 되고

    9박10일, 총 89개 에너지 빈곤가구들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는 일정이다. 몇 시간씩 이동해야하는 마을 개수만도 8개, 학교도 6곳이다. 2009년부터 진행해온 지원사업들 중에 설비 규모가 가장 크다.

    당연히 사전조사를 열심히 했다. 싸이냐부리 도교육청, 군교육청, 군청, 경찰까지 협력해 지원이 필요한 가구들을 확인하고 명단을 취합했다. 현지 기술자와 함께 마을마다 방문해 지원을 요청한 가구 대표들을 만나고 학교를 실측하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었다.

    그런데 첫 번째 마을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사전조사 때 마을에 살던 두 가구가 현재는 살지 않고, 새로 생긴 한 가구와 수요를 내지 않았던 기존 한 가구가 설치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라오스 오지의 마을들 가운데는 주민들이 정주하지 않는 마을들도 있다. 이 마을은 정주 마을로 지정은 되어있으나 계절마나 또는 몇 해마다 들고나는 가구들이 여전했던 것이다.) 이미 떠난 집들을 찾아가 그때 왜 요청을 했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새 두 가구를 방문해 살펴보고 관계자들에게 소명 문서를 작성하게 해 도장만 잔뜩 받았다.

    배를 타고 메콩을 삼십분을 내려가 두 번째 마을로 갔다. 여기는 더 난리가 났다.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요청했던 가구들에 이미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불과 2주 전, 라오스전력에서 5년간 매달 2만낍(약3달러)씩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초기 설치비용을 받지 않고 일반 전기를 연결해줬단다. 그런데 이 가구들이 애초 계획한 대로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요청했다. 라오스전력에서 공급하는 전기는 고작 전구 하나 켜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네 번째… 마을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바뀌어 있었다. 사전조사 결과로 세운 설치 계획이 누더기가 됐다. 관할 행정기관 자료 조사, 관계자 면담, 현장 조사까지 무얼 그렇게 고생해 했나 허탈했다. 라오스 지원사업 사전 현장조사가 사전 조사가 아닌 게 되었다.

    학교는 학교만이 아니고

    이번은 모두 마을마다의 초등학교들이다.(밤까지 불을 밝히고 공부하라고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할 일은 아니니 재작년까지는 모두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 지원을 해왔다.) 설비를 싣고 개울을 건너 마을에서 2백여 미터 떨어진 학교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다. 토요일이라 비어있는 게 아니라 마치 폐교처럼 보였다. 뒤늦게 우릴 따라온 교장이 설명했다. 방학이 끝났는데도 계속 비가 많이 와 학교로 오는 길에 건너는 개울물이 높아져 학생들이 여기 학교로 못 오고 옛날 학교, 지금은 마을회관인 곳에서 수업을 한다고. 도착한 금요일 마을회관에 짐을 내리는데 왜 이리 학생들이 많은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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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산골 초등학교 월요일 조회 모습

    라오스에서 학교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본연의 역할 외에 야간 성인 문해교육, 마을회관, 동사무소, 파출소. 소수민족 주민이 많은 동네에선 최말단의 식민 개척기관 같은 느낌마저 든다. 더불어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 개발요원,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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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학교건물, 현재 마을회관에 모여 교장으로부터 이번 지원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는 교사들

    연구소의 라오스 지원 사업에서 싸이냐부리 도교육청이 가장 중요한 협력기관이 된 것은, 단순히 개인적 경험과 판단에 의지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이렇게 라오스의 지역, 사회문화적 맥락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라오스의 학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합적인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 된다. 라오스의 학교는 학교만이 아니다.

    절은 절이 아니고

     이번 지원은 규모가 커진 만큼 한국국제협력단의 보조금만으론 턱없이 부족해 처음부터 애를 태웠다. 그래서 (결국 사전조사가 아니게 된) 사전조사의 결과로 취합된 수요목록에 올라있는 5개 마을의 절을 빼려고 했다. 현지 협력업체 재생가능에너지 회사에 견적을 내고 가격을 조정하면서 교육청, 군청 담당자들에게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우선적으로 절을 제외하겠다고 했다. 한목소리로 안 된단다. 심지어 우리 직원인 기술자마저도 반대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사찰이 어떤 의미인지. 2년을 살았던 싸이냐부리 읍내의 절들만 봐도 내가 아는 한국의 절과는 많이 달랐다. 라오스의 절은 우선 마을 한가운데 있으면서 매일의 탁발처럼 일상이 된 종교 생활의 중심지이자 마을 행사장으로서 각종 축제의 장이 되기도 하고, 종종 경내에서 고기꼬치까지 구워 팔 수 있는 야시장, 그야말로 난장의 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라오스에서 절은 학교이기도 하다. 전통문화와 종교, 예술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넓은 의미의 학교 기능 외에 (단기)출가한 남학생의 종교교육과 일반교육을 위한 근대적인 학교를 두고 있기도 하다. 아예 남녀학생 모두를 위한 보통 우리가 보는 학교를 둔 절도 있다.

    산골마을로 가면 그 기능은 더욱 확대되고 중요해진다. 변변한 공동체 공간이 없는 오지의 마을들에서는 오로지 절이 행사장이 되고 학교가 되고 마을회관이 된다. 거기에선 절이 진정한 마을의 공동체 시설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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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에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돕고, 그 사용과 관리 방법을 직접 배우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

    실제로 두 번째 마을에선 우리가 사전조사에서 마을회관으로 분류한 공간이 절 안에 있었고 다섯 번째 마을에선 법당이 아예 마을회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자기 집에 설치할 태양광발전기를 챙기는 것처럼 마을마다 절에 설치할 태양광발전기들은 이장이나 마을 어른들이 챙겼고 설치 작업을 도왔다. 기술자들로부터 그 설비를 사용하고 관리하는 방법도 직접 배웠다.

    한국의 절에서 이를 도왔다. 덕분에 한 곳도 빠짐없이 절이 아닌 라오스의 절들에 태양광발전기가 올라갔다.

    텔레비전이 또 더운 뉴스를 전한다. 질문이 불허된 기자회견을 해왔단다. 기자회견이 아니다. 라오스와 한국은 아닌 것도 이렇게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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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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