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 시위의 미래,
    ‘제왕적 사법부’와 새로운 사회운동
    촛불과 포데모스,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 모색하자
        2016년 12월 28일 1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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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우마 호세프(노동자당, PT)는 2016년 8월 상원의 탄핵투표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집계된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비자금 규모가 3.3조 원에 이른다고 알려지면서 룰라 전 대통령이 비리 의혹으로 처벌될 위기에 몰리자 호세프는 룰라를 면책특권이 보장된 수석장관에 기용하려 했다. 그러다 두 사람 간 비밀통화 내용이 공개되고, 결국 2014년 호세프 재선 당시 경제 적자를 숨기기 위해 브라질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탄핵국면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호세프를 탄핵으로 몰아낸 미셰우 테메르 정권이 거꾸로 탄핵 대상이 됐다. 최근 테메르의 측근들의 각종 비리 의혹이 줄줄 불거지기 때문이다. 중앙단일노조(CUT)와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은 테메르 탄핵 요구서를 12월 8일 하원에 제출했다. PT와 브라질 공산당(PCdoB) 등 좌파 정당도 이를 지지하며 테메르 퇴진과 조기대선을 요구하고 있다.

    남아공 제이컵 주마 대통령(아프리카민족회의 ANC)은 2009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2016년 11월 3일 남아공 국민권익보호원이 발표한 부패보고서에는 주마 대통령과 인도계 유력 재벌가 굽타 가문의 결탁과 국정전횡 의혹에 대한 정황과 증거가 담겼다. 주마 대통령은 사적 이익을 위해 내각 장관과 국영기업 이사장 선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집권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반대로 의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미래는 불안하다.

    12월 8일 <뉴욕타임스>는 뉴욕타임스는 호세프, 박근혜, 주마 세 대통령을 예로 들면서 많은 정부가 부패스캔들 때문에 붕괴하는 현상의 원인으로 ‘제도적 부패'(systemic curruption)를 꼽았다. 부패가 심각하면 전체 시스템을 감염시켜 정직한 사람조차 부패한 행동을 하게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수사를 맡은 검사와 관련기관이 충분한 독립성을 누리며 부패공무원을 조사하고, 시민사회의 감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그들은 부패 수사 검사들이 ‘정직의 섬’이 되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신자유주의 정치위기와 부패 이슈

    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대표적 신흥시장으로 꼽혔던 나라들에서 대통령이 줄줄이 탄핵 위기를 맞는 게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기실 부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가 세팅한 아젠다였다. 한마디로 경제 저성장의 원인이 부패라는 것이다. 따라서 ‘굿 거버넌스’(좋은 통치)가 필요한데, 굿 거버넌스의 전제조건은 청렴한 사법부고 전문가 비정부기구(NGO)의 감시활동은 그 보완물이다. 그렇다면 이제 저개발국에서 경제성장은 사법부와 전문가 NGO의 손에 달려 있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바로 이 부패 이슈가 부르주아 지배에 ‘자멸적’ 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세계 정치는 부패 이슈를 매개로, 정당 간 극단적 대립의 파괴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좌우파 정당의 이념, 정책이 신자유주의 정책·전략으로 수렴된 후, 정당과 유권자의 관계는 약화되고, 오히려 정당 간 대결은 극단화되었다. 정치인은 유권자와 직접 접촉하기보다는 언론폭로,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제도, 소송과 같은 비선거적 수단에 더욱 의존한다. (혹자는 이를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의 지배’라고 부른다.) ‘사정’이 대통령과 집권당이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이라면, ‘특별검사’ 제도는 야당이 집권당과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하는 장치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정치의 사법화’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를 복기해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① 총선 직후 새누리당의 쇄신이 실패한 후 → ② 보수언론 주도 하에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 비리 폭로 → ③ (우병우 수석을 수사하지 않는 검찰에 대한 공격 (즉 검찰에 대한 청와대 지배력에 대한 사전적 견제) → ④ 미르· K스포츠재단 폭로 → ⑤ 비선실세 최순실 그룹 폭로로 이어졌다. 그 후 검찰조사, 국정조사, 특별검사제도 도입, 탄핵소추 등등 일련의 과정이 이어졌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너서클에서 배제된 일종의 ‘여당 내 야당’이 대통령과 ‘여당 내 여당’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의 지배’를 활용한 셈이다.

    집회

    광화문 촛불집회 자료사진

    물론 애초 보수언론이 공공연하게 제시한 것처럼, ‘거국내각/개헌/보수정권재창출’이라는 시나리오가 어그러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촛불시위다.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를 통해 국회가 정한 일정과 절차에 따라 퇴진할 수 있다고 선언했지만, 그 주말 촛불시위에는 최대 규모 인원이 참석하여 즉각 퇴진을 주장했다. 즉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요구한 셈이었다. (말 그대로 석고대죄. 즉 “거적을 깔고 엎드려 처벌을 기다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이는 대중시위가 부패 이슈에 몰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역시 12월 12일 구악을 청산하는 ‘국가 대청소’를 주장했는데 청소라는 말 자체가 부패를 연상시킨다. 국민의 당 안철수 전 대표도 12월 11일 “부패 기득권과 전면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즉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의 키워드는 ‘부패’로 집중되는 셈이다.

    그런데 부패 이슈는 다른 모든 이슈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 체계 내에서 부패 청산으로 이슈를 한정시키다는 말이다. 실제로 보수언론은 “탄핵, 헌재에 맡기고 여야 국정 수습하라”, “경제·안보는 축제 건너편 벼랑 끝에 있다”(조선일보 12월 9일, 12일)며 촛불집회가 초점을 확대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경계하였다.

    이를 의식하여 촛불집회 참여 단체 일각에서도 보수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명백한 잘못이 있음에도 강행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 집중하는 게 맞다. 그 이상으로 의제가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 그러나 다른 이슈가 배제되고, 오직 부패 이슈만 부각된다면 결국 문제의 해결책은 검찰과 사법부 강화를 지시할 뿐이다.

    제왕적 사법부의 반민주주의

    이번 대통령 탄핵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제왕적 대통령’이 언급된다. 그러나 그 치유책이 ‘제왕적 사법부’가 될 수는 없다. 기실 현재 세계정치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치의 사법화’를 목도하고 있다. 그 ‘제왕적 사법부’라는 양상은 사법부 입법(의회 입법에 위헌 결정)이나 사법부 정책 결정(행정부 정책결정에 위헌 판결)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앞에 언급한 것처럼 ‘정치적 무기로서 법의 지배’(사정 또는 특별검사제도)로도 나타날 수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왜 문제인가? 간단히 말하면,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표기관, 즉 선출된 권력이 제정한 법률을 대표성을 위임받지 않은 사법부, 즉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판결을 통해 무효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와 사법부·헌정주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 특히 사적 소유권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었다. 그래서 사적 소유자들은 정부를 엄격한 헌법적 틀 안에 두는 것을 고안했다. 즉 설사 다수의 지배에 따라 무산대중이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유산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법률을 입법할 수 없도록 헌법체계를 구성했다.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결국 헌정주의는 행동을 제어하는 권력인 반면, 민주주의는 행동을 취하는 권력이다. 헌정주의는 본질적으로 반민주적이며, 헌법의 기본적 기능은 민주적 과정에서 특정한 결정(예를 들어 사적 소유권의 제한)을 제거한다. 보수언론이 “헌재 재판관들은 그 어떤 압력으로부터도 벗어나 순전히 법률과 양심에 의해 심리하고 판단해야 한다”(조선일보 12월 8일)고 주문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 따른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의회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로 복귀하자고 주창하는 부르주아 정치학의 관점에서도 큰 문제다. 왜 그런가?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면 첫째, 분배적 정의의 실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사법심사는 절차적 정의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분배적 정의에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물론 사법부가 재산권 보호라는 부르주아 법체계를 수호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의 사법화는 입법활동을 제약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입법가는 헌법재판소의 예상 반응에 맞춰 법안을 수정한다. 셋째,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범죄화를 야기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법수단을 동원할수록 정치의 범죄화는 심화된다. 이는 유권자의 정치혐오로 이어져 정치참여 의지를 상실케 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부패 이슈가 양날의 칼이라는 점, 정치의 사법화가 좌파운동을 공격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지극히 주의해야 한다.

    촛불집회와 포데모스

    그렇다면 광장시위는 이런 제약을 넘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번 집회를 계기로 스페인 신생정당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 방식의 정치적 조직화를 생각해보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퇴진행동>이 지도력과 비전을 창출할 수 없다면) “광장의 급진적 의제와 정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결사체로 스스로를 새롭게 조직화해가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재 ‘시민평의회’, ‘시민제헌의회’, ‘95%위원회’, ‘국민명령제안위원회’, 해적당이나 ‘포데모스나 시리자’와 같은 정치운동 등 다양한 고민이 던져지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송경동, <박근혜 퇴진해도 광장 민주주의는 이어져야 한다>, 오마이뉴스, 12월 8일.)

    심지어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12월 15일 신당 창당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포데모스는 스마트폰 하나로 의사결정을 다한다. 공천권도 필요 없다. 우리는 포데모스 정당에 주목한다.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요구가 분출한 촛불민심에 걸맞은 ‘네트워크형 신당’을 만들어 한국 정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참여집단부터 새누리당 탈당 인사까지 언급하는 포데모스는 과연 어떤 조직인가? 그것은 촛불집회의 미래 조직화 모델이 될 수 있나?

    포데모스

    스페인 분노하라 집회의 모습(위)과 포데모스 지도부의 모습들

    사실 우리는 포데모스라는 신생정당이 출현하기 전 단계에서 ‘5.15 운동’(15-M)이 분출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포데모스라는 정당 이전에 대중시위와 자기조직화가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5·15운동의 출발점은 2011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개설된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를!’(¡Democracia Real YA!)라는 플랫폼이었다. 그것은 ‘실업자, 저임금을 받는 자, 하청업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청년’이 5월 15일 전국 곳곳에서 가두를 점거하자고 제안했다. 시위를 앞두고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를!’ 집단은 여러 상징적 행동을 펼쳤는데, 예를 들면 5월 13일 무르시아 은행을 점거했다. (스페인은 부동산 폭락으로 주택압류가 늘면서 은행이 분노의 초점이 되었다.) 5월 15일 시위에는 마드리드 5만 명, 전국적으로 13만 명이 참가했다. 6월 20일, 전국 각지에서 출발하여 마드리드로 향하는 ‘분노한 사람들의 행진’ 개시되었고, 7월 25일에는 5.15운동 사회포럼이 개최되었다. 10월 15일에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도합 50만 명이 운집한 시위가 벌어졌다.

    훗날 포데모스의 지도부가 되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와 그의 동료들은 당시 TV 정치토크쇼를 진행하던 집단이었는데, 그들이 이 집회를 주도한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이글레시아스가 <뉴 레트프 리뷰>(2015년 5-6월)와 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러한 운동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몇 주 전 우리 TV쇼에서 아랍의 반역을 토론하면서 경제위기가 다른 지정학적 공간에서는 정치소요와 사회운동을 창출할 것이지만, 스페인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15-M 운동은 스페인 좌파의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적인 좌파정당은 그러한 운동의 부상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좌파정당의 지도자는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시위자들이 ‘분노한 자들’(인디그나도)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나는 지난 30년간 분노한 자였다. 그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냐?’는 식이었죠.”

    그렇다면 실제 광장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초기에 어떤 정당이나 노동조합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제도화된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성을 강조했는가? 이에 대해, 집회 참가자의 주축이 교육을 받았고, 반(半)프롤레타리아화된 서비스부문 중간계급, 즉 전형적으로 말하자면 ‘콜센터에서 일하는 대졸청년’이라는 보고가 많았다.

    이글레시아스에 따르면, 강력한 노동조합이 없는 부문의 청년 노동자가 핵심층이었다. 즉 그들은 장기간의 부동산 거품 동안 높은 소비수준에 기반을 둔 사회적 동일성을 믿으며 성장했으나, 위기로 인해 사회적 취약층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공공부문과 산업부문 노동조합이 세계금융위기 초기에 총파업을 비롯해 긴축 반대 투쟁을 전개했으나, 15-M 운동은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간 투쟁을 전개했다고 덧붙였다. 15-M 운동의 참가자들은 특히 초기에 공화국 깃발과 같이 좌파적 상징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총파업 참가자 집단과는 사회적 구성이나 정치문화가 크게 달랐다는 점도 지적했다.

    15-M 운동의 인상적인 측면은 유로존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자율적 조직의 물결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세 가지 운동은 ‘퇴거반대운동’(PAH), 보건서비스를 방어하는 ‘흰색 물결’(Marea Blanca) 운동,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의료민영화를 저지한 스페인의 ‘하얀 물결’>, 2014.), 공공교육체계를 방어하는 ‘녹색 물결’(Marea Verde) 운동이었다.

    이글레시아스는 “자율적 조직에 참여한 수는 아마도 15-M 운동에 참여한 수보다 아마도 작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방법은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증명되었습니다.” “그 운동에서 리더십 경험을 획득한 많은 사람들이 포데모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포데모스의 지도부는 대부분 사회운동에서 온 사람들로 충원되었습니다.”

    실제 이글레시아스 그룹이 정치조직화에 나선 것은 2013년 여름이다. 그는 현존 좌파와의 협력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조직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좌파정당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안했다. “시민에게 후보자 선택을 개방하는 것이 세력균형의 열세를 만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페인 공산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IU) 지도자들이 완고한 태도를 보이면서 독자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2016년 총선에서야 포데모스와 좌파연합(IU)은 동맹을 형성했다. 명칭은 연합-포데모스(UNIDOS-PODEMOS)다.)

    광장시위의 미래

    이제 요약해보자. 5·15운동은 첫째, (부패 이슈라기보다는) 실업자, 저임금노동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에게 시위를 호소했다. 그리고 실제 청년층이 운동의 핵심 주체였다. 둘째,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중도우파정당(인민당)과 중도좌파정당(스페인사회주의노동자당)의 실패, 그들에 대한 대중적 환멸을 배경으로 했다. 셋째, 2011년 5.15 시위 전후로 시위, 포럼, 행진 등 다면적 활동이 전개되었고, 그 후로도 흰색 물결, 녹색 물결 등 몇 년에 걸친 자율적 조직화의 과정을 겪었다. 넷째, 기존 좌파가 5·15운동에 대해 완고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율적 조직은 점차 포데모스와 연계를 맺기 시작했다.

    반면 현재 한국 촛불집회는 첫째, 부패 혐의자 처벌이 중심이 되면서 이슈가 상당히 제약적이다. 둘째, 야당을 통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수준이 여전히 상당히 높은 편이다. 셋째, (촛불집회 주최단체의 실천적 의지에 비해) 참여 대중이 지속적 활동을 전개하며 자기조직화를 실행할 의지가 있는지 아직 불확실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촛불집회가 자연적으로 5·15운동과 같은 청년노동자의 자기조직화나, 그 후 주택, 의료, 교육 이슈를 둘러싼 사회운동 경향의 형성으로 이어질 것이며, 나아가 포데모스와 같은 신생 좌파정당의 약진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이 더욱 목적의식적인 운동과 조직화를 실행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단계의 운동을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 이글은 사회진보연대 기관지 <오늘보다>에도 같이 실리는 글이다<편집자>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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