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에너지,
이제 2차전을 준비하자
[에정칼럼] '에너지 정치'에의 고민
    2016년 12월 09일 05: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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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법, 제도, 정책도 반대 대상이고, 여기에 사업과 시설과 인물도 빠질 수 없으며, 나라나 체제로 확대되기도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통령 탄핵과 범죄자 처벌이 촛불의 목표이지만, 각종 부정부패 척결과 모순 해소를 위한 요구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의 낡은 시스템이 거대한 변환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촛불 민심이 폭발적으로 일상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촛불 집회가 사회운동 방식과 집회시위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고 촛불 집회 자체가 만능은 아닐 터.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이며 다중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하겠다.

특정 임계치를 넘어서는 촛불 집회의 위력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위대하고 강력하다. 이 상황에서 공권력이 구분하여 결정하는 합법과 불법 그리고 폭력과 평화라는 경계는 모호해진다. 유동적인 변화 덕분에 어느 정도 구습도 사라진다. 촛불 주체 역시 국가와 사회를 멈추게 하는 불복종이나 사보타지라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도 의회 권력은 정략적 판단을 앞세우고 자산의 무능력을 드러냈다. 결국 박근혜, 의회, 시민이라는 삼중의 권력구도를 낳았다. 이 불안정한 교착 상태는 국민 4%와 새누리당만 대표하는 대통령과 의회 탄핵세력 그리고 촛불 민심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지만, 여기서 미래 권력 투쟁의 장이 열렸다.

그런데 미래 권력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정당의 정권 (재)창출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은 탄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시민 권력이 헌법기관들을 에워싸고 있다.

수동혁명을 바라는 보수 세력들과 정권 창출의 기회에 집착하는 정치 세력들은 각종 편의를 제공하면서 시민들의 광장 참여를 독려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결국 12월 9일, 23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국회에서도 대통령을 불신임하였다. 이제 다시 헌정주의가 가동될 수밖에 없다.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헌법재판소 판결에 몇 가지 변수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비선출 재판관들도 시민 권력과 의회 권력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위기를 모면하려는 온갖 카드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촛불은 현명했다. 이렇게 꼼수가 먹혀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이를 읽지 못한 정치인과 전문가들 모두 스스로 구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촛불의 에너지는 인간의 에너지

이제 촛불의 힘은 지구전과 진지전을 펼쳐야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반대하고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것과 함께 직접 민주주의를 통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더 열어야 한다. 정부형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대의제를 제어하는 국민들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와 일상을 지배하는 시장 권력도 통제해야 한다. 시민이 누려야 할 비지배의 자유는 해방과 자기 지배와 다르지 않다.

자기 지배를 기획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근대적 에너지를 고안한 인간은 스스로가 동력원임을 잊고 지낸다. 화석연료와 핵에너지가 없이도 신체를 움직여 열과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재생가능에너지도 좋지만 더 좋은 에너지는 바로 인간이다.

에너지원 변화가 역사 변화의 큰 축이 되었다는 설명도 맞지만, 역사 발전의 동력은 무엇보다 인간이 보여준 혁명의 열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것은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이들의 전복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새로움이 과거의 낡음과 얼마나 단절할 수 있을지는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 큰 움직일수록 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촛불은 단순한 빛에너지가 아니다. 어떤 것보다 강한 운동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사회 전환은 이러한 정치 에너지로 가능하다. 이게 진정한 ‘에너지 정치’가 아닐까. 에너지는 정치적이며 정치는 에너지로 움직인다.

탈핵 에너지 전환과 기후 정의에도 이런 에너지 정치가 필요하다. 지난 11월 25일, 쿠바 혁명의 상징이던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했다. 1992년 브라질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그의 연설 “내일은 늦으리”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너무 늦습니다.”(<기후정의>, 이안 앵거스 엮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2012)

1차전은 촛불이 승리했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직무 정지가 국정 공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권한 대행이 있어서가 아니다. 촛불이 공화국을 ‘리셋’할 기회이다. 촛불 민주주의가 전면에 나서 사회와 나라를 변혁하는 새로운 공화국을 향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진짜 미래 권력 투쟁이 시작된다.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촛불 2차전을 준비하자. 이번에도 내일로 미루면 또 다른 박근혜, 최순실, 새누리당이 나타날 것이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촛불을 들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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