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 역사교과서를 읽고
    [기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
        2016년 12월 06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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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낯선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2013년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취임을 앞두고 인사청문회를 받았는데, 그는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써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국회의원 : 국정원장으로 오기 전에 강의한 내용 녹취록이다. 증인은 강의에서 4.3 항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4.3 사건은 무장폭동이자 반란이다 . . . 가용한 모든 요소를 총동원해서 무장봉기를 일으킨 것인데, 그 중 하나가 4.3 사건이었다. 김달삼 휘하의 천여 명이 북의 명령으로 무장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남한 단독총선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것이 바로 그 4.3 사건이다”

    남재준 인사청문회

    인사청문회의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방송화면)

    잘 알다시피 4.3 사건은 대통령이 나서서 국가가 잘못을 저지른 대표적인 사건이었고, 또 제주도민에게 깊은 사과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국가가 사과했고, 또 교과서에서도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된 줄 알았다.

    국정원장은 국가의 정보기관으로 ‘폭동’이나 ‘반란’은 대표적으로 정보기관이 담당할 업무 가운데 하나다. 담당할 업무라고 하니까 국정원이 폭동이나 반란을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할 줄 모르니 정확하게 하자면,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할 민간인들을 감시하고 체포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되는 기관장이란 말이다. 한데 ‘잃어버린 10년’ 동안 대통령 직을 지내셨던 분이 “국가의 잘못으로 제주도민이 희생된 것”이라고 사과한 사건에 대해 청문회에 등장한 정보기관의 수장이 “북한의 지령으로 발생한 무장반란 사건”으로 이해하고 계시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국정교과

     

    국정교과서 검토본

    지난 1년여 동안 논란에 시달리던 국정교과서 검토본이 드디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교과서(고등학교용)는 현대사 부분이 모두 1장 3절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라는 장 제목 아래로, 1. 대한민국의 수립과 자유민주주의의 시련 2.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경제 사회 발전 3. 국제 질서의 변화와 대한민국의 발전, 이렇게 세 개의 절로 나뉘어 있다. 다 뒤져볼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앞으로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질리도록(!) 소위 “좌파 현대사학계”에서 문제를 제기할 터이니 필자는 몇 가지 문제만 살펴볼 생각이다.

    뭐 국정교과서란 것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1절의 내용들은 딱히 뭐랄 것은 없어 보인다. 이게 뉴라이트들이 쓴 교과서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왜 “반일 민주주의 정당의 연합을 통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곧 “소련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는지 모르겠다.

    또 “소련의 계획(정책)에 따라”라는 용어가 세 번씩이나 한 페이지에 등장하고 있는데, 그럼 “북한에 군정을 실시”했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군정을 실시했다는 말의 의미는 모든 정책에 점령군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소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해당한다. 즉, “군정이 실시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이 소련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와 같은 의미다). 그럼 남한에서는 미국이 군사점령을 안했다는 건가? 뭐 입 아프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걍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문제제기 할 것이 있지만, 뭐 적당히 봐주기로 한다. 그래, 뭐 국정교과선데.

    한데 1절의 전체 서술 요약에 해당하는 제일 첫머리의 문장이 좀 걸린다. 이런 부분이 쓰여져 있다.

    “. . . 광복이후 우리는 민주적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대한민국을 수립하였다.”

    해방 후 남한에서 실시된 단정에 대해서 비밀, 보통, 평등, 직접 선거라는 4대 원칙을 적용시킨 최초의 선거였다는 설명은 우리 모두가 많이 들어서 잘 안다. 한데 국정교과서는 첫 번째 절에서 이 선거를 ‘민주적 자유선거’라고 아주 독특한 설명을 붙여 놓았다.

    나는 이 선거가 ‘자유선거’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로 반대할 생각이 없다. 정말 선거는 아주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내가 볼 적에 그렇다는 게 아니고 미군정 관찰자, 그것도 최고 책임자가 볼 때에도 그랬다. 촌장님이 수백 명의 투표권을 좌지우지 할 ‘자유’도 있었고, 정치범 석방과 경찰민주화를 끊임없이 요구했던 반대파들의 의사와는 달리 ‘경찰국가’는 ‘지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었고, 속임수를 통해 “공적인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재력과 다른 수단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것 등등.

    우리는 5.10 선거가 그 이후 치러진 소위 독재체제 하의 선거보다 한 뼘도 다 민주적으로 치러졌다고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선거 당시 좌익은 물론이고 우익들 가운데에서도 김구를 비롯해서 좌우합작을 주장하던 많은 단체들이 5.10선거에 불참했고, 또 선거를 감독하겠다는 유엔 측에서 모두 50명도 되지 않는 인원을 파견하여 “공정한 선거”를 치렀다고 평가하는 것도 그렇고, 죽창을 든 ‘향보단’같은 우익청년단원들이 투표소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던 선거가 ‘민주적인 선거’였을까? 오히려 그 이후 선거가 나아가야 할 길을 그대로 보여준 대표적인 ‘반민주적’ 선거였다. 한데 이런 선거에 대해서 ‘민주적 자유선거’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 교과서가 가지는 대표적인 오류일 것이다.

    한국전쟁 관련 서술

    1장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한국전쟁일 것이다. “남북한의 군사적 격차가 컸다”라든가, 인용하고 있는 통계표가 과연 믿을 수 있는지(253쪽), “북한은 대규모 군사훈련”(254쪽), “남파간첩을 파견” 등등은 한쪽만 설명하고 나머지 한쪽은 침묵하면서 사실상 반쪽짜리 반공교과서임을 잘 보여준다.

    그럼 남한은 아무것도 안하고 평화통일만 바랬나? 문제는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남한도 간첩을 북으로 보냈고, 군사훈련을 했으며, 미군이 공격용 무기는 아니지만 상당한 수의 무기를 지원했으며, 소련 고문단보다 더 많은 숫자의 군사고문단을 남겨두었으며, 평화통일은커녕 ‘북진통일’을 주구장창 신문에다가 읊조리고 있었다. 뭐 이런 것은 교과서에 안 싣는 게 낫겠다. 국정교과서니까.

    딴 것은 다 넘어가더라도, 도대체 지금 한국전쟁을 가르치면서 이 고등학생들에게 뭔가 남겨주는 것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원한 통계로는(이 통계도 믿을 수 없긴 하지만) 남북한 민간인 65만 명이나 사망한 대규모 살육전쟁이었다. 게다가 한국전쟁 직후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의 살해행위를 지시한 것은 대통령 이승만 자신이었다. 누구를? 물론 좌익전력을 갖고 있던 ‘보도연맹원’ 소속이거나 대전형무소의 좌익 활동과 관련한 많은 죄수들도 포함되어 있고.

    도대체 왜 이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겨우 “군인과 민간인 등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가 전부다. 뭐 4.3 사건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필자들께서 열심히 원고를 쓰시다가 잠시 쉬는 동안 허리를 펴고, 하품을 쭉 하면서 잠시 고개를 돌려 저쪽을 보니 “오, 한국전쟁에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네? ” 정도? 뭐 그 정도의 노력이 들었을 걸로 본다. 한데 민족의 비극이라고 하는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희생자의 문제, 누가,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슬~쩍 넘어가는 점은 이 교과서의 두 번째 문제라고 하겠다. 역사란 과거를 성찰하여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배운다, 라는 뭐 그런. . . 이 교과서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뭐 국정교과서여서 그런가?

    한데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아주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가난한 삶을 극복하려는 ‘개인 혹은 소수의’ 노력이나 좌경용공에 대한 ‘국민적인’ 적개심에 대해서는, 국어학적으로 아주 잘, 그것도 주관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예를 들어 “이승만 정부는 자력으로 활로의 개척에 나서게 되었다”라든지, “북한이 강압적으로 시행한 점령지 정책은 많은 반발을 샀다”라든가, “자유를 찾아 월남해 온 사람들 중에는 향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이들도 많았다” 등등. 이런 설명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인용하기도 좀 귀찮지만, 이런 설명은 국정교과서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시키려는지 잘 보여준다.

    원래 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쎈치해지기 쉽다. 아… 존나 열받네, 안타깝네, 저래서야. . . 거창학살이나 노근리 학살에 대해 슬퍼하고, 김구를 살해하고도 대한민국에서 잘 살고 있던 살해범에 분노하면서,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던 5.18을 보면서, 아, 내가 왜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라고 절망하기도 한다. 뭐 그래서 2008년도 금성교과서가 문제가 되면서 이런 “편향된 교과서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해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뉴라이트들이 새롭게 쓴 교과서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보면 MBC가 한발씩 오른쪽으로 ‘정상화’되는 과정과 아주 비슷하다. 뉴라이트들이 준교과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검정교과서인 지학사 교과서를 발간했고, 이제 국정교과서까지 쓰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이제 2장으로 넘어가보자. 거기에는 박정희 체제가 설명되어 있는데, 이게 사실 새로운 교과서를 쓴 이유이기도 하다.

    박정희 시대는 검정교과서에 비해서 서술 양도 늘어나고 긍정적인 측면만 묘사되었다는 비판은 뭐 많지만, 나는 뭐 국정교과서니까 이런 점은 걍 넘어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에 관해서 이 정도 쓸 수도 있잖아? 나는 그런 충효지심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위에 설명한 것처럼 주관적인 묘사들(“적극적으로” “급격히” 같은 수식어는 제발 좀 안 썼으면 좋겠지만, 여기서든 더 많이 등장한다)은 더 늘어나버렸는데, 교과서에서는 이런 신파적 언급은 좀 안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박정희 시대하면 떠올리는 사건, 간첩단 사건과 관련된 부분에 문제가 좀 있다.

    이응로

    1968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던 이응로 화백의 모습(보도사진연감)

    동백림 간첩단 사건은 누가 보면 9.11테러 사건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이 사건은 실제 재판 과정에서 단 한 명도 간첩죄가 적용된 바도 없었으며, 2006년 국정원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명백한 국가의 가혹행위에 대해서 사과할 것이 정부에 권고되기도 한 사건이었다. 다른 사건의 경우는 추후에 교정이 되거나 설득(?)이 되어 묘사가 완화되기도 하고 수정이 된 반면에 이 부분은 전혀 상관없이 필자들이 쓴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것 같다.

    뭐 내가 필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아냐고 할진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을 옆에서 집필을 돕는 간신…아니 공무원 등이 지적을 안 했을 리가 있나? 한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백림 사건에 대해서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이야기도, 또 실제 재판의 진행상황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붙어있지 않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센치해지곤 한다. 나는 아직도 동백림 사건 재판 당시 이응로 화백의 사진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새로운 국정교과서 필자들이 신파극을 싫어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은 명백히 국가가 잘못한, 이응로를 비롯한 다수의 피고인들에게 사과를 해야 할 사건이었다.

    전경련 요약사 같은 박정희 시대 서술

    그 외 박정희 시대는 온통 경제 관련 서술로 되어있다. 나는 경제에 약했고, 지금도 약하고 앞으로도 약할 계획이어서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갔다. 아마 이 책을 교과서로 써야할 학생들은 KAIST, ADD, 포항제철 제2고로, 주바일항만 건설 사업(1972), 이병철, 정주영,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모태로 하는 ○○○운동 등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전경련 요약사’에나 나올 법한 것들을 외워야 한다고 고생깨나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넘어갔다.

    참, 이 시기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자본가와 맞서서 노동자들이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더해야 할지에 대해서 설명할 전태일에 대해서도 한마디 짧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본문이 아니고 짧은 사진 설명에 넣어서 말이지.

    사실 5.18 광주민주화운동부터는 나도 아직은 국사책에서 다룰 만큼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뒤로부터는 잘 안 읽힌다. 사실 예전에 일본 역사왜곡 관련해서 일본인 유학생들을 만나면서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우리는 국사를 배울 때 명치유신 이후의 사건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잘 가르치질 않고, 또 시험에도 안 나와서 잘 모른다”는 말처럼, 80년 이후의 역사는 역사라기보다는 현재에 더 가까운 일들이다. 이 점은 검정 교과서때도 마찬가지여서 서술은 했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북한군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이니…

    나는 국정교과서 초고부터 이번에 공개된 검토본에 이르기까지 여러 원고들을 보았지만, 그나마 검토본은 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교과서에 반대하는 여론이 여전히 70%로, 2015년에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보다 반대하는 여론이 오히려 더 높아진 상황이다.

    나는 최근에 일어나는 사건들 때문에 이제 국정교과서는 잠시 등장했다가, 그래서 이런 쓸데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아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국사교과서를 쓰시면서, 이번에야말로 학생들의 역사관을 제대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믿는 분들에게는 참 죄송한 일이지만, 때를 잘못 만난 것 같다. 순실이만 아니었다면, 국정교과서 논란은 아마 통과되어서 내년에 학교에 배포되기는 했을 것 같다. 당장에 수령…아니 대통령님께서 목이 날아가냐, 마냐로 난린데, 무슨 교과서 따위로…

    필자소개
    현대사 전공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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