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브레이크 없는 극우정치
    [유럽의 극우파 바람 ①] 폴란드
        2016년 12월 01일 03: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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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적으로 극우파 정치세력의 급부상이 심상치 않다. 특히 유럽의 곳곳에서 극우정당들은 더 이상 주변부 정치세력이 아니다. 서유럽에서는 아직 집권당이 된 곳은 없지만 동유럽에서는 이미 집권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서유럽에서도 12월 오스트리아 대선과 내년 프랑스 선거에서 극우파 후보들의 집권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뿐 아니라 독일, 영국, 그리스 등 주요 국가들에서도 이미 외면할 수 없는 주요 정치세력들이다. 이런 정치적 흐름들의 배경과 의미를 짚어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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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법과 정의당(PiS)는 한때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불렀다. (중도)우파정당과 극우정당의 경계선에 있는 정당이라는 의미였다. 바꾸어 말하면, 우파정당이기는 하지만 위험한 극우정당은 아니라는 것이다. PiS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 반 동안 집권한 과거의 경험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우파 정책을 밀어붙이다 자멸하기는 했지만, ‘극우적인’ 정책들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단독 집권한 PiS는 어제의 PiS가 아니었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를 뛰어넘는 극우정당이 PiS의 현재 모습이다.

    2015년 10월 실시된 폴란드 총선에서 PiS는 235석(460석)을 차지하며 과반의석을 획득했다. 1989년 이후 즉, 폴란드가 민주선거를 시작한 이래 첫 단독 집권이었다. 중도우파 시민연단(PO)이 한동안 집권했지만 모두 연립정부였다. 선거전부터 PO의 몰락(59석 하락)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PiS의 과반의석은 여론조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였다.

    PO의 몰락보다 더 심각한 것은 원외정당에 불과하던 신생 우파정당 Kukiz’15(42석)과 Modern(28석)가 극우 바람의 수혜에 힘입어 원내에 진입한 것이다. 기존의 우파정당인 농민당(PSL 16석)을 포함하면 폴란드는 극우정당과 우파정당들이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좌파는 의회에서 사라지고 극우파와 우파들로 폴란드의회가 채워졌다.

    폴란드

    전통적으로 동쪽은 PiS, 서쪽은 PO의 지지기반이다. PiS가 높은 득표율로 단독집권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친재벌 중도우파 PO의 지지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전후 첫 유럽 극우 수반의 탄생

    총선에서 PiS가 제1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은 3개월 전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의 결과 때문이었다. 대선 결선투표에서 PiS가 내세운 안드레이 두다(Andrzej Duda)가 5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다가 당선되자 유럽 언론들은 두 가지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첫 번째는 두다가 우파 대통령인가 아니면 극우 대통령인가 하는 것이었다. 언론들은 전후 첫 극우 수반이라는 요란한 제목을 달지는 않았다. PiS의 행보도 극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두다 후보가 내건 공약도 단순히 우파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두다 후보가 유럽의회 의원이 경력의 전부에 불과할 정도로 무명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PiS가 무명의 인물을 내세운 것은 확실히 의외였다.

    내각제인 폴란드는 총리가 모든 실권을 행사하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대통령이 명예직은 아니다. 폴란드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을 거부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최근 유럽의 난민문제로 빈번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보기에 따라 더 위험한 권한도 가지고 있다. 군 최고통수권은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PiS의 당수인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10월 총선에서 총리 자리를 노린다고 하더라도 당내에는 두다를 제외하더라도 경력과 인지도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다를 내세운 것은 대선을 포기하고 총선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왔다. 요컨대 극우적인 경력과 다소(?) 거리가 있는 사십대 초반의 두다 후보로 판을 한번 흔들어 보는 것이 PiS의 전략인 것으로 해석됐다.

    2015년 폴란드 대선과 총선은 들여다볼수록 어쩌면 모호함 그 자체였다. 대선에서 PiS의 두다는 두 가지만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집권당인 PO가 실시한 퇴직연금 시기를 늦춘다는 결정을 반대로 앞당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주류세 인상도 원래로 되돌리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어떻게 보면 우파 공약이 아니라 자유주의 공약에 더 가까웠다. 그동안 PO가 동결해 온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도 약속했다. 극우는커녕, 포퓰리스트 공약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난민 추방과 장벽 건설 등 혐오를 부추기는 선동은 멈추지 않았다. 국민들의 눈에는 PiS가 우파정당으로 보였다. 그렇게 무명의 두다는 손쉽게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의회독재 혹은 PiS 독재

    총선에서 PiS가 단독집권에 성공했지만 당수인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총리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에 베아타 쉬드워(B.Szydlo)를 총리로 내세웠다. 대통령선거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적으로 얼굴을 알린 것이 크게 작용했고, 그녀 역시 PiS를 대표하는 정치인 중에 한 명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광부의 딸이 총리를 맡을 것이라는 전망은 높지 않았다. PiS의 노회찬 정객,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두 사람을 내세우고 커튼 뒤로 숨어버렸다. 언론들도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폴란드 만평

    대통령과 총리를 사실상 배후조종하는 카친스키를 풍자한 폴란드 만평

    가면이 벗겨지자 숨겨둔 모습들이 하나 둘 쏟아져 나왔다. PiS는 선거 직전 의회가 임명한 5명의 헌법재판관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준비한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했다. 곧바로 의회와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삼권분립을 뒤흔드는 일이었지만 PiS는 멈추지 않았다. 국가안보부의 독립 권한을 축소시키고 그 일부를 의회로 가져왔다. 선거가 끝난 두 달 만에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의회 독재 즉, PiS의 독재를 실현했다. 전격적인 PiS의 결정에 다른 우파정당들조차 손을 놓았지만, 언론은 연일 두 법률의 위험성과 위헌성을 보도하며 저항했다.

    PiS는 두 번째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영TV와 라디오의 경영진을 재무부장관이 임면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모호한 공영체제의 언론을 모두 ‘국유화’한 것이다. 라디오는 방송을 중단하고 매시 정각에 폴란드 국가를 틀며 저항했고, 공영TV 경영진들은 법률이 상정된 날 국회 앞에서 총사퇴 기자회견으로 맞섰지만 PiS는 비웃음으로 대신했다. PiS는 집권 직후 재빠르게 허술한 삼권분립을 의회독재로 만든 이후, 제4부인 언론마저 재갈을 물리고 장악했다. 준비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그것은 모두 외신뿐이었다.

    극우파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낙태 문제다. 인구의 절대 다수가 가톨릭신자인 탓에 폴란드에서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과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는 전면 금지할 정도로 엄격한 편이다. PiS는 이 조항마저 삭제하는 법안을 상정하며 전형적인 극우파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검은 수요일’이 시작됐다. 수만 명의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폴란드 전역의 도시로 나선 것이다. PiS는 법안 상정을 강행했지만 반대여론이 날마다 치솟아 오르며 멈추지 않았다. PiS는 자신들이 내놓은 법안에 반대 표결을 하는 촌극을 연출하며 후퇴했다.

    민주주의 훼손과 내정 간섭

    불과 서너 달 만에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EU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넘어 폴란드를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U 집행위원회가 폴란드 제재의 근거로 든 것은 ‘민주주의 훼손’ 조항이었다. EU 초창기에 없던 민주주의 조항이 생긴 것은 동유럽 국가들이 줄지어 가입을 신청하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를테면 EU 가입을 계속해서 원하고 있는 터키가 가입에 제동이 걸린 것도 민주주의 조항 때문이었다. 유럽의회가 터키의 EU 가입을 유예하기로 결정하자 터키는 즉각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경을 개방해 300만 시리아 난민을 유럽으로 보내버리겠다며 EU를 겁박까지 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상태다.

    폴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EU 집행위원회는 수차례 민주주의 조항을 상기시키며 경고했지만 PiS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내정 간섭”이라고 정면으로 반발했다. 내정 간섭, 이만큼 간단명료한 단어와 저항도 없었다. 게다가 PiS의 대응도 일사불란했다. EU 회의에 참석한 베아타 쉬드워 총리에 대해 집행위원회가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면 공식석상에서 내정 간섭이라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외교석상에서 흔히 말하는 ‘일부 오해’ 같은 수사조차 발언에 담지 않았다. 베아타 쉬드워 총리의 역할은 ‘돌격대장’이었다.

    정교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EU 집행위원 중에 독일인이 발언하면 즉각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이 이제 다시 내정 간섭을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EU 집행위원 귄터 외팅어가 폴란드에 대해 발언을 할 때마다 PiS는 히틀러와 나치 침공을 연상시켰다. 독일인들의 입을 막는 것이 PiS의 준비된 노림수였다. 외신에 따르면 귄터 외팅어는 한 강연에서 중국인들을 ‘째진 눈(slitty eyes), ‘사기꾼'(chiselers)’이라는 비하발언을 하다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자멸했다. 귄터 외팅어는 “(중국인은) 구두약을 사용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머리를 빗는다”라는 발언도 덧붙였다.

    카틴숲 학살과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2010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일행을 태운 전용기가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로 향하던 도중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 레흐 카친스키의 방문은 카틴숲 학살 70주년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탈린에 의해 폴란드인 2만여 명이 학살당한 카틴숲으로 향하다 폴란드대통령이 사망하자 폴란드는 충격에 빠졌다. 누구보다 절망한 사람은 대통령의 쌍둥이 형인 야로슬라프 카친스키였다.

    2차대전 당시 불가침협정을 깬 나치는 기습적으로 소련을 침공했다. 소련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중간에 놓인 폴란드는 화약고가 되었다. 스탈린은 귀찮은 장애물에 불과한 폴란드인 2만 여명을 총살해 카틴숲에 암매장했다. 소련군이 후퇴한 후 암매장한 시신을 발견한 것은 나치였다. 소련은 즉각 나치의 음모라며 사실을 부인했다. 폴란드는 충격에 빠졌지만 소련과 나치는 서로가 한 일이라고 공을 떠넘겼다. 여론은 연합군인 소련 편이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특사를 파견하면서 학살은 미궁에 빠졌다. 조사를 맡은 특사는 학살의 주인공이 소련이라는 비밀보고서를 루즈벨트에게 제출했다. 학살이 나치의 짓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거두지 않던 루즈벨트는 보고서를 최고기밀에 붙였다. 반세기만에 진실이 알려진 것은 소련연방이 해체된 덕분이었다.

    최근 폴란드 검찰은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 함께 사망한 80여명의 유해를 재부검하기로 결정했다. EU는 물론 당시 사망한 유족들조차 검찰의 결정을 취소하라며 반발했다. PiS가 장악한 검찰은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PiS의 레흐 카친스키가 대통령일 때 총리는 PO(시민연단)의 도날트 투스크였다. 공교롭게도 레흐 카친스키와 정부 대표단이 카틴 숲을 추모 방문할 당시,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탑승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 러시아 관제탑의 교신 불량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러시아와 PO가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에 찬 나머지 동생 부부의 무덤을 다시 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폴란드 국민 대다수도 반대의 의견을 나타냈지만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정부와 검찰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전면에 나서지 않은 이유였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대통령과 총리를 내세워 ‘원격정치’를 한다는 소문이 현실이었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의 브레이크 없는 극우정치는, 최초의 단독집권이라는 자신감과 이후에도 PO가 따라잡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총선 결과로만 보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폴란드 좌파는 지금

    PiS가 선거를 통한 의회독재를 장기화할 가능성조차 있는 상황에서 좌파의 현실은 회색, 그 자체다. 폴란드 좌파의 구심은 민주좌파동맹(Democratic Left Alliance:SLD)이었다. 정당들이 난립한 91년 총선에서 60석(전체 460석)을 차지하며 출발했다. 폴란드 통일노동당(공산당)의 잔당이라는 비난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2년 후 재차 실시된 선거에서 민주좌파동맹은 171석을 획득하며 제1당에 오른 것은 동맹 스스로도 놀란 결과였다. 동맹의 이런 선전은 갑자기 들이닥친 자본주의에 국민들이 적응을 하지 못한 이유도 작용했지만, 사회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희망도 설득력을 얻었다.

    동맹은 불안전한 연립정부 집권 기간에도 자신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국민영웅’ 바웬사 대통령에 맞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4년 후 동맹은 더 많은 지지율을 획득했지만 교차상태에서 2당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다시 4년 후 동맹은 창당 이후 최대의 지지율을 올리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거기까지였다. 이후 동맹은 급격히 소수정당으로 밀려나면서 의회의 주도권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본주의도 살만한 체제라는 생각과 사민주의가 현실에서는 곧바로 얻을 것이 없는 ‘구호’라는 반박도 먹혀들었다. 무엇보다 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우파정당들의 공세에 대항하기에는 동맹은 무력했다. 동맹은 지난 해 선거에서 나머지 좌파들을 모아 ‘함께’(Razem)라는 이름으로 대응했지만, 원외정당으로 밀려나면서 몰락, 아니 전멸했다.

    호들갑이 아니다. 12월 4일, 오스트리아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럽은 연일 긴장하고 있다. 언론은 전후 최초의 극우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을 조명하고 있다. 그 틈새에서 조용히 폴란드에서는 극우 수반과 총리가 탄생했다. PiS 의회독재는 국민국가의 내정 간섭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2차 대전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동유럽에서 폴란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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