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권위주의 몰락의 이유
        2016년 11월 21일 03: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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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이 저물어갑니다. 인터넷으로 전국의 밤을 밝힌 촛불들을 보면서, 지난 4년 동안의 기억들을 다시 정리해봅니다. 사실 좀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게도 굳건하게 보였던 박근혜와 유신잔당들의 그 성곽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고 있나요?

    출범 초기의 박근혜 정권은, 정말 “서슬 시퍼렇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 가장 권위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선 국가보안법 관련 입건 건수는 2013년에 129명이나 달해 노무현 집권 이후 신기록을 갱신한 셈이었습니다. “통진당 사건”이 터졌을 때에 30여년 만에 그 무시무시한 “내란음모”라든가 “내란선동”까지 다시 나왔습니다.

    물에 휩쓸려와 병영 근처에서 우연히 터진 지뢰가 “북한이 매설한 지뢰”로 돌변돼 이 “도발”에 대해 군은 “백배 천배 복수”를 공공연하게 외쳤습니다. DMZ를 넘어 이북으로 가려는 한 시민이 군에 의해 사살되고, 개성공단 등 이명박 시절에도 지속됐던 대북사업들은 다 문을 닫았습니다.

    전자우편 등을 정보기관들이 다 감시한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아 “가상공간에서의 망명”, 즉 외국 서버 사용이 늘어났습니다. 이북에 대한 적대, 그리고 정적에 대한 탄압 이상으로 노동에 대한 억압적인 자세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세상의 산업화된 사회 중에서는 교사노조가 “법외노조화”당하고 노총(민주노총)의 수장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경우는 과연 대한민국 이외에 어디라도 있는가요? “산업화된 세계 최악의 노동탄압” 소리도, 바로 박근혜 시절에 들은 것입니다.

    박 노동개악

    노동개악 추진 당시의 방송화면 캡처

    그런데 이렇게도 무시무시했던, “신권위주의”라고 정평이 난 이 공포의 정권은, 인제 반으로 와해된 상태가 된 것입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말씀이죠.

    2013~15년에 “데모”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백남기 농민을 살인한 살수차나 진압봉은 물론이고, 시위 조직자에 대한 사법 탄압 (박래군의 체포 등)이나 참가자 사진 채증과 출두요구서, 벌금을 통한 괴롭히기 등은, 집회의 자유를 매우 심하게 제한시켰습니다. 명실상부한 신권위주의답게 말이죠.

    그런데 돌연히…모든 게 풀리고 말았습니다. 100만 명이나 모이는 집회를 경찰들이 존중해주는 만큼 폭력도 발생하지 않고, 사법을 가장한 집회 참가자 괴롭히기도 어디론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집회 시 폭력의 주범이었던 경찰도, 박근혜의 시대가 인제 거의 다 됐다는 점을 눈치 채서, 다음 차례에 권력을 잡을 것 같은 세력들의 눈치도 적지 않게 보는 모양입니다. 통진당을 불법 탄압한 바로 그 검찰은 인제 박근혜를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새누리당 안에서도 탄핵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신권위주의의 그 공포스러운 성곽은, 순식간에 반으로 와해된 셈입니다. 도대체 뭐가 바뀐 건가요? 사실 바뀐 건 딱 하나죠. 삼성/JTBC와 <조선일보> 등이 박근혜호를 내려와서, 박근혜호를 상대로 집중 포화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권력의 이너 써클 안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비선실세” 관련의 “천기”를 “평범한 백성”들에게까지 누설시킨 것입니다.

    삼성이 박근혜와 각을 세운 것은, 경/검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민중의 집회 등에 대한 탄압을 정지하라는 신호나 마찬가지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부자들이 대체로 다 알아도 피통치민들에게 여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청와대 권력 실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도 충격적이었기에 민중의 행동들이 이미 탄압이 불가능한 정도로 그 폭이 커진 것입니다. 100만 명의 시위를, 세상의 어느 경찰이 “진압”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한국형 신권위주의의 한 가지 약점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국가는 대기업에 기대지 않고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박근혜는 중국에서의 삼성 사업에 극히 불리한 THAAD 배치 결정을 했다가 삼성계열의 언론에 의해서 결국 치명적 결정타를 입고 만 셈이었죠. 즉, 신권위주의 체제가 대기업이 아닌 (펜타곤의 현지 지부라고 볼 수 있는) 국방부의 주장대로 했다가 대기업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해체를 당한 셈이 됩니다. 한국을 실제로 누가,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지, 극명하게 잘 보여준 사태죠.

    앞으로 “대통령”을 누가 해도 삼성을 위시한 대기업들의 사회 지배는 여전할 것입니다. 또, 노동자들에게 그 대가를 전가해야 할 위기의 시대인 만큼, 지배자인 대기업들이 계속해서 청와대에다가 보다 권위주의적으로 나가기를 요구할 가능성은 많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2차 촛볼 혁명”으로 인한 기회를 살려 민중의 정치력과 여론 조성력 등을 확대해야 합니다. (주로 인터넷 기반의) 민중 언론들이 영향력을 지니고, 민중 정당들이 힘을 쓰게 되면, 그래도 다음 신권위주의 체제 구축 시도에 보다 효율적으로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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