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과 1인 체제 확립?
    [중국과 중국인] 중국에 대한 오해
        2016년 11월 01일 01: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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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18기6중전회의 결과에 대한 국내여론의 반응이 후끈하다. 그리고 그 방향도 대체로 비슷하다. 시진핑의 전임인 후진타오에게는 붙이지 않았던 ‘핵심’이란 단어가 이번 6중전회를 통해 추가된 것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1인 지배체제 확립, 마오쩌뚱, 떵샤오핑에 버금가는 권력 장악 등등의 표현이 중국 관련 기사에 넘쳐나고 있다.

    물론 시진핑이 전임 후진타오의 적극적인 협력 하에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당-정-군의 지휘권을 장악하고, 총리 리커챵과 당의 사정 책임자인 기율검사위 서기 왕치샨의 적극적인 협력까지 확보함으로서 빠르게 권력을 강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력을 마오쩌뚱이나 떵샤오핑의 그것과 견줄만하다거나 이제까지 당의 통치방식이었던 정치국과 그 상무위원회를 통한 집단지도체도의 무력화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중국정치에 대한 오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진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신화통신)

    ‘핵심’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못한 최고지도자는 마오에서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후진타오가 유일하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권력을 내놓았던 화궈펑, 후야방, 자오즈양 등 3명을 제외하고는.

    절대권력을 휘두른 마오쩌뚱을 제외하면, 떵샤오핑도 쨩쩌민도 절대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물론 다른 상무국위원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고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견이 있더라도 대외적으로는 당의 단합과 통일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후진타오가 남들 다 갖다 붙인 ‘핵심’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전임 쟝쩌민의 견제라 할 수 있다.

    쟝쩌민은 떵샤오핑 등 당의 원로들이 자신의 후임으로 지명한 후진타오를 자신이 집권한 13년은 물론,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에서의 수적 우세와 당의 군사위직을 2년 더 연기하면서까지 후진타오를 계속해서 견제했다. 후진타오에게 ‘핵심’ 대신 ‘비운의 황태자’란 수식어가 붙여지게 된, 또 그가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에게 당-정-군의 3권을 동시에 이양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진핑이 6중전회를 통해 ‘핵심’이란 수식어를 쟁취한 것이 그의 권력 강화의 한 측면이면서 과정이기도 하지만, ‘핵심’이란 단어가 중국 정치에서 역사적으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대한 좀 더 면밀한 고찰이 필요가 있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정몽구나 이재용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김일성, 정주영, 이병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또 한 가지 이번 6중전회를 두고 한국 언론들에서 많이 언급했던 내용이 시진핑과 왕치샨의 임기 연장 문제 및 후계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시진핑 초기에 시진핑이 당내의 거의 모든 중요 영도소조의 책임자 자리를 꿰차자 홍콩 등을 비롯한 해외언론에서 시진핑의 임기연장에 대한 추측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떵샤오핑의 정치개혁과 혁명 1세대의 은퇴로 당-정-군 고위 지도자들의 연령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국무원(행정부)과 인민대표대회를 비롯한 각 주요 기구 수장의 임기는 이미 법적으로 1기 5년 최대 연임 10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쨩쩌민 집권기에 총리로 재직했던 리펑이 총리를 연임한 후 전국인민대표대회위원장으로 보직을 바꾼 것도 임기제한 규정 때문이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중국을 총괄하는 당의 총서기 임기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쟝쩌민은 1989년의 6.4 천안문 사태로 자오즈양이 물러나면서 총서기에 전격 발탁된 후 13년 동안 당의 총서기직을 유지했다. 그리고 후진타오에게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쨩쩌민이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한 챠오스(乔石, 전인대위원장), 리뢰이환(李瑞环, 정협주석)을 은퇴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연령을 내걸면서 소위말하는 7上8下, 즉 당 대회가 개최되는 해에 67세(한국의 만(滿) 나이)까지만 정치국상무위원에 새로 진입이 가능하고 68세부터는 새로 정치국상무위원 진입이 불가하다는 규정이 당 내부의 암묵적인 동의를 받았고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총서기 10년이란 내부의 동의 역시 딱히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최고 권력자의 임기를 규제하는 관례 또는 준칙으로 정착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1953년생인 시진핑이 59세에 총서기에 올랐으니 그럴 욕심이 날 만도 하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달갑지 않지만. 현재 시진핑이 빠르게 권력을 장악했고, 방금 폐막한 6중전회를 통해 ‘핵심’이란 날개를 달았지만 세간에 떠도는 임기연장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6중전회 공보에서도 재차 강조되었지만 당의 권력 운용은 여전히 정치국 상무위원을 포함한 25인의 정치국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역시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당의 중대사는 정치국에서의 합의와 표결을 통해 결정된다. 수많은 소조가 설립되었지만 이 소조들은 소조가 담당한 특정 사안을 논의(议事)해 정치국의 결정을 돕는 기구임을 명시하고 있다.

    정치국에는 당의 원로급 인사들과 후기지수들까지 포함되는데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을 꿈꾸는 정치국원들을 비롯해 여전히 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최근 발탁되는 모든 사람들을 시진핑의 심복, 측근으로 표현하지만 실제로 다 그렇지만은 않다. 특히 시진핑도 쟝쩌민처럼 중앙정치 경력이 짧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적지 않은 인사들을 발탁했지만 그들의 지위가 경력이 정치국 차원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마오쩌뚱 시대를 제외하면 한 단계 정도를 건너뛰는 발탁은 있었지만 두서너 단계를 건너뛴 발탁은 불가능하다.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이 가능하고 동시에 최소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시진핑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 최소한 정치국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년에 개최되는 19대에 들어서야 가능할 것이며 그 수도 많지 않다.

    중국 정치체제를 한국 정치처럼 사람 하나만 보고 또 한 두 가지의 현상으로 판단하려 한다면 오해하기 십상이다. 이념이 달라서가 체제가 달라서가 아니라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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