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혈 박빠였던 우리 아빠
    [기자수첩] 배신당한 지지자의 한숨
        2016년 10월 28일 08: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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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세 충남 출신의 제조업에 종사하는 한 남성, 박근혜를 지지하기 위한 완벽한 프로필을 갖춘 이 남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을 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며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선거 유세 차량 앞에 서서 “늬들이 뭘 아냐”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일은 다반사다. 박근혜 대통령을 욕한다고 친구와 싸워 절교까지 한 경험을 지닌 이 열렬한 박근혜 지지자는 당연히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늘 하는 말인 “여성 대통령이 한 번쯤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뽑았다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엔 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따라 붙었다. 세월호로, 메르스로, 국정교과서 사태로, 심지어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이 나라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에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아주 잘한다”고 평가했었던 절대적인 박근혜 지지자다. 나는 이 남성을 ‘박근혜빠’라고 불렀다.

    ‘박근혜빠’, 줄여서 ‘박빠’라고 지칭했던 65세의 이 남성은 우리 아빠다. 내가 실제로 대면한 사람 중 아빠만큼 박근혜를 믿고 지지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용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빠의 입에선 “하야”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당연히 “아직 두고 봐야지” 정도의 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빠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긴 한숨만 연거푸 내뱉었다. 말투며, 표정이며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너무너무 실망감이 크다. 이명박이 됐든, 김영삼이가 됐든 그런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는데 박근혜한테는, 내가 박정희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하다고 보는데,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기대를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번에 최순실 사건을 보면서…아휴 참… 어떻게 그런 여자(최순실) 치마폭에 휘둘려서…내가 박근혜 찍었지만 다시 박근혜가 대통령에 나오면 그땐 절대 못 찍어줘”

    그리고 다시 한참 침묵. 다시 입을 연 아빠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딸인 내가 배신했어도 저 정도의 깊은 한숨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참담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발 벗고 찬성하는 ‘배신하지 않는 지지자’였다.

    이 배신 당한 지지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모를 여읜 불쌍한 공주라는 동정심도 거의 남아 있지 않는 모습이었다.

    “최순실이 그것도 앞뒤 못 가리고 갑자기 로또 당첨된 사람처럼…그게 무슨 짓이야. 박근혜도 최순실도 한심해. 전부 제 정신이 아니야. 박근혜는 아휴… 한편으론 부모도 배우자도 없으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최순실한테 기댄 것 같은데 그건 그거고 대통령이라는 중차대한 지위에서 어디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을 북한의 김정은에게 비유하기까지 했다.

    “내가 볼 땐 그래. 김정은 같은 경우도 밑에 있는 놈들이 제 자리 지키려고…김정은이 뭘 알겠어. 반꼭두각시잖아”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자들, 국민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되느냐고도 물어봤다.

    “최순실이 우리나라로 데려와서 심판 받게 하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사과를 해야지. 박근혜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긴 한데. 아휴… 저번에 한 사과는 정말, 부족하고 박근혜가 크게 실수한 거야”

    그리고 열렬한 박근혜 지지자였던 아빠의 입에선 끝내 ‘하야’라는 단어가 나왔다.

    “대국민 사과 할 때 ‘어떻게 됐든 내 책임이다’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지금 최순실 파문의) 진실을 밝히는 정도는 돼야지. 이게 대한민국이 이게 무슨 꼴이냐. 뉴스엔 뭔 최순실이 얘기만 나오고. 빨리 (수습하려면) 박근혜가 말을 해야지. 그것도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또 그 정도도 안 하면 ‘하야’해야지. 난 이제 박근혜 지지 안 한다”

    보수와 진보,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 20대와 60대. 세대로, 이념으로, 정치성향으로 갈라섰던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한다. 이들 모두 진실을 밝힐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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