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의 진화,
    포데모스의 정당 시스템
    웹 플랫폼 이용 '쌍방향 논의 결정'
        2016년 10월 28일 0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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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스페인 집권당인 중도우파 국민당(PP)은 신생정당인 급진좌파 포데모스의 지도자 이글레시아스가 바스크의 테러단체인 ETA와 관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유럽의회 선거인 탓에 유권자의 관심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기사거리를 찾아 헤매던 황색저널은 국민당의 ‘소설’에 연일 ‘스토리’를 덧붙였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당은 오랜 라이벌인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SOE)을 공격하는 대신, 포데모스를 집중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창당 90일 만에 포데모스는 10%에 가까운 지지율을 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국민당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두 가지였다. 자신들의 기반인 마드리드에서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다른 곳보다 급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기 지방선거에서 마드리드 집권이 위험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불과 1년 후,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포데모스의 마드리드 선거리스트인 ‘아호라 마드리드(Ahora Madrid·지금 마드리드)’는 국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사회노동당과 연정을 통해 시장 자리를 차지했다. 24년간 마드리드를 장악해 온 국민당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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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이글레시아스(사진=포데모스 홈페이지)

    또 하나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고 심각했다. 카탈루냐는 중도정당이자 제1당인 카탈루냐민주당(CDC)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분리 독립을 주장해왔는데, 이는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주민투표를 강행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집권 국민당의 라호이 총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것은 당연했다. 카탈루냐의 독립이 현실화된다면 바스크와 갈라시아의 독립도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당이 취약한 카탈루냐에서 포데모스가 약진(특히 바르셀로나)하고 있었고, 포데모스 역시 독립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국민당이 사회노동당 대신, 포데모스를 저격하고 나선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우려도 1년 후 현실이 됐다. 카탈루냐민주당을 중심으로 ‘찬성을 위해 함께’(Junts pel Si)라는 통합리스트가 탄생했고 제1당에 올랐다. 분리 독립에 찬성하는 급진좌파정당인 ‘민중연합당’(CUP)과 카탈루냐의회 과반수를 장악했다. 최근 카탈루냐의회는 내년에 분리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한다고 결정했다.

    민중모금 : 포데모스와 이글레시아스를 방어하자

    광장에서의 정치와 정당정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돈이다. 마요르 광장에 모여 긴축반대에 저항할 때는 많은 비용은 필요하지 않았다. 포데모스는 자본의 후원을 거부하고 오직 민중의 호주머니에 의존해 당을 운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광장과 SNS를 통한 선거운동은 한계가 있었다. 스페인의 농촌지역은 인터넷에 소외된 민중들도 부지기수였다. 공중전, 즉 미디어를 통해 대응해야 할 경우도 존재한다.

    국민당이 이글레시아스가 바스크의 ETA와 연관된 의혹이 있다고 공격하고 나서자 포데모스는 미디어를 통해 정면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많은 비용이 필요해졌다. 포데모스는 민중모금을 실시했다. 웹 플랫폼을 이용한 인터넷모금 방식이다. 이를테면 크라우드 펀딩과 유사하다. 포데모스는 이 플랫폼 방식으로 며칠 만에 수천만 원을 모금했다. 물론 이 자금은 국민당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공중전 비용으로 사용됐다. 요컨대 프로젝트 모금이다. 포데모스는 이렇게 민중모금을 할 때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 구분해서 모금하고 있다. 당 대회를 개최할 때도 사전에 프로그램과 필요한 예상 비용을 설명하고 민중모금을 진행한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포데모스는 민중모금을 통해 10만유로(약 1억5천만 원)을 모금하는데 성공했다. 전국적인 선거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공중전과 지상전에 비용을 적절히 배분하며 다섯 명의 유럽의원을 탄생시켰다. 포데모스는 여세를 몰아 1년 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의 오래된 야당체제에 균열을 내고 어느 정당도 과반수가 되지 않은 교착상태를 만들어버렸다. 포데모스는 무조건 당을 후원해 달라는 공급자 중심의 방식이 아니라,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동의하는 민중들은 후원해달라고 하는 식이다. 철저하게 지지자들이 모금의 성격에 따라 돈을 낼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재정을 마련하는 것도 큰 이유지만 이를 통해 지지자들이 포데모스의 활동에 계속해서 관심을 집중시키는 추가적인 효과도 나타났다.

    그렇다면 포데모스는 유럽의회 선거에 나갈 후보들의 리스트를 어떻게 결정했을까. 포데모스는 이를 위해 ‘Agora Voting’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다. 온라인 오픈프라이머리다. 당원이 아닌 지지자들도 참여가 가능하다. 아고라 보팅을 이용한 투표방식은 단기 이양식 투표(Single Transferable Voting) 즉, 선호투표 방식이다. 후보자 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선호하는 사람의 순서를 적는 것이다. 마드리드 지방선거에도 동일한 시스템을 사용했고, 1위에 오른 일흔 살의 여성투사 마누엘라 카르메나가 사회노동당과의 연정을 통해 시장 자리에 올랐다. 한국의 진보정당에서는 이제 낡은 유물로 치부될 만큼 흔한 시스템이지만 스페인에서는 그동안 어느 정당도 시도한 적이 없는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짚고 넘어갈게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 진보정당의 웹 플랫폼 기반은 기술적으로는 스페인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이런 식의 모금은 불가능하다. 소위 ‘오세훈 법’에 의해 중앙당 후원회와 지구당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중앙당 후원회가 없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캠페인을 기획하고 후원을 조직하는 것은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돈 먹는 하마’라는 표현으로 지구당 폐지에 동조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불법정치자금은 더 확대되었고, 지하주차장에서 사과박스가 오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지역구에 사무실을 낼 수 없는 원외정치인들은 연구소라는 형태로 지구당 아닌 지구당을 만들고 운영한다. 사실상 유사사무소 금지에 해당하지만 선관위가 문제를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쯤은 사문화된 셈이다. (2015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의 정당후원회를 금지한 정치자금법 규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17년 6월까지 개정이 불가피해졌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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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자 포데모스 페이지 화면 캡처

    CIRCLES : 모든 것은 플라자 포데모스로 통한다

    포데모스의 강력한 힘은 천여 개에 이르는 ‘CIRCLES’에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구당 산하에 몇 개의 동(洞)을 모은 기초조직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골간조직으로 규정했던 ‘분회’와 유사하다. 포데모스의 CIRCLES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회노동당도 오랫동안 이런 형태의 지역조직을 운영했고,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히 사무실이 있는 형태가 아니라 지역조직의 책임자 집에 주말에 삼삼오오 모여 하몽(Jamon)에 에스트렐라 담(Estrella Damm)을 한잔씩 하면서 동네에서 할 일을 점검하는 식이다. 사회노동당의 최대기반 중에 하나인 안달루시아 주를 비롯해 대부분의 농촌지역에는 지금도 기초조직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CIRCLES도 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CIRCLES가 사회노동당이나 공산당과 다른 점은 인터넷을 통해 ‘쌍방향으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중앙당이 아래로 임무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웹 플랫폼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대화한다. 쌍방향, 혹은 온라인 직접민주의의 최대 성공사례가 포데모스라고 할 수 있다.

    TITANPAD는 당 대회와 각종 정책들에 의견을 제안하고 토론하는 플랫폼이다. 우리처럼 게시판을 만들고 개인들이 의견을 하나씩 올리는 방식이 아니다. 주제를 정하고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문서를 계속해서 수정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위키피디아를 포데모스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당 대회가 시작되면 TITANPAD에 주제가 공지되고 천여 개에 달하는 CIRCLES에 소속된 모든 당원들이 문서를 완성해나가면서 의견을 종합한다. 물론 당원들은 당 대회에 제출할 다른 주제를 TITANPAD에 개설하고 토론을 진행할 수도 있다.

    포데모스가 자랑하는 플랫폼의 결정판은 ‘레딧’(REDDIT)이라는 시민참여 시스템이다. 포데모스는 이를 ‘플라자 포데모스(Plaza Podemos)’라고 부르고 있는데, 시민들이 직접 정치인들에게 의견이나 입법요구들을 제안하고 정치인들이 답변하는 방식이다. 온라인 광장에서 개인들이 자유로운 발언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회의원 등과 쌍방향으로 대화하는 방식이다. 포데모스의 주요 정치인들은 대표적인 SNS인 페이스북을 이용한다.

    하지만 수많은 댓글에 일일이 답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플라자 포데모스에 쏟아지는 수많은 의견들에 답변하는 “과연 가능한가?”라는 회의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문제는 다시 CIRCLES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CIRCLES와 의제별 모임들은 실현 가능한, 개선되어야 할 내용들을 오프라인에서 토론하고 플라자 포데모스로 가져온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무게감 있게 답변할 수밖에 없다. 플라자 포데모스는 고대 그리스의 광장의 정치를 연상케 한다. 아고라에서 실현되었던 직접민주주의를 온라인으로 가져온 셈이다. 포데모스는 세계 어느 정당도 시도하지 못한(않은) 광범위한 온라인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쌍방향이라는 것이 핵심 키워드다.

    국회톡톡 : 국회의원들은 응답하라 2016

    그동안 국회의원들에게 입법청원을 할 수 있는 세력은 다양한 이익집단과 대자본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표와 돈을 무기로 입법청원을 가장하지만, 보수정당 의원들을 무력화시키기에는 충분히 위력적이다. 예를 들면 실효세율이 대표적이다. 현행 법인세율은 22%이지만 실효세율 즉, 실제로 내는 법인세는 그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삼성의 경우 15%대까지 내려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다른 3대 대기업들도 17%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대기업 집단은 17%라는 최저세율이 엄연히 존재한다. 삼성은 이마저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각종 면세법안을 스스로 입법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삼는 순간, 자신들이 스스로 위법한 법률을 만들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예산 심의를 앞두고 정의당과 민주당 일각에서 법인세를 25% 이상으로 올려야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법인세를 필요한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법인세(실효세율)을 낮추는 법률들을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법률들을 감시하는 ‘안테나’라도 절실하다. 지금은 법인세 인상과 실효세율을 바로잡는 양 날개가 필요한 시기이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이명박 정권이 만든 98조의 부채, 박근혜 정권이 3년 반에 기록한 168조의 부채를 해결할 방안을 지금 찾지 않는다면, ‘폐허’ 위에서 임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달리다 끝나고 말 것이다.

    지난 10월 11일 정치 스타트업 ‘와글’은 입법 플랫폼 ‘국회톡톡’((http://toktok.io)을 개설했다. 국회톡톡을 요약하면 이렇다. 국회톡톡이 청원하고자 하는 법률을 정해 플랫폼에 올리면 일정한 숫자(천 명)의 시민들이 동의(2주일 내)하면 국회의원들에게 동의 여부를 ‘호출’하는 방식이다. 과거의 시민단체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입법을 ‘시위’하는 것보다는 호출방식이 구체적이다.

    국회톡톡이 1호 입법청원으로 전면으로 내세운 것은 정의당의 당론이기도 한,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이다. 국회톡톡이 다른 점은 1호 법률을 300명의 국회의원들에게 무작위로 동의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 초점이다. 입법청원의 취지에 맞는 상임위 즉, 보건복지위에 소속된 22명의 의원들에게 동의 여부를 직접 묻는 방식이다. 정의당의 윤소하 의원 등 3명의 의원이 동의한 상태이고 오늘(25일)로 설정한 기간은 마감된다.

    영국의회는 매주 수요일 야당(노동당) 대표가 총리에게 질의응답을 하는 날이다. 당 대표로 당선된 제러미 코빈은 첫 질의를 위해 지지자들에게 질의할 내용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고 약 4만 명이 답변에 응했다. 원내정당인 정의당은 국회톡톡과 같은 플랫폼을 구축할 기술과 재정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 웹 플랫폼을 통해 ‘10만 명이 동의하면 입법추진하기’를 도입한다면 지지자들의 관심을 상시적으로 당에 붙잡아 둘 수 있다. 공급자 중심의 온라인 시대는 이미 끝났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쌍방향, 온라인직접민주주의 시대가 진보정당들에게 시급한 과제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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