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중항쟁의 원형을 찾아서
[책소개] 『10월 항쟁』(김상숙/ 돌베개)
    2016년 10월 03일 01:24 오후

Print Friendly

김상숙의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항쟁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기간의 대구·경북 일대의 사회운동과 학살의 역사를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룬 책이다. 해방 직후 일회적 사건으로 알려진 10월 항쟁이 실제로는 경북 지역, 아니 미군정 하의 남한 전역에서 진보세력 주도로 일어난 건국운동이자 시민 항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찰과 군인이 자행한 학살 사건으로 전개되는 과정까지 살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공백을 채워주는 중요한 연구다.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다른백년 연구원장)

1946년 10월 1일 정오경 대구역 광장에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가운데 노동자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튿날 10월 2일에 죽은 한 사람(김용태, 27세, 역수)의 시신을 싣고(시신 시위) 학생과 시민들이 대구 도심 전역에서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 “해방된 새 나라를 건설하자”, “친일 경찰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또 다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었고,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총을 맞고 여기저기서 쓰러졌다. ‘10ㆍ1폭동’, ‘대구 10월 사건’으로 알려진 ‘10월 항쟁’의 서막이었다.

10월항쟁

 

폭동인가, 항쟁인가―사건을 둘러싼 역사의 왜곡과 진실

저자 김상숙은 ‘10월 사건(폭동, 소요)’이 아닌 민중 항쟁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10월 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심지어 ‘10ㆍ1폭동’이라는 명칭에는 소수의 ‘좌익 분자’들이 일으킨 소요로서 ‘사건’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군정과 경찰이 ‘폭동’ 또는 ‘소요’라고 규정하고 반공이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항쟁은 오랜 시간 그렇게 인식되었다.

10월 항쟁이 민중 항쟁 또는 시민 항쟁으로서 평가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시위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조선공산당(조공)과 이후 무장투쟁을 이끈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반공 국가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며 항쟁 자체가 ‘좌익’의 권력 투쟁이나 반란으로 오인되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은 10월 항쟁이 좌익 전위 엘리트가 선도한 ‘소요’와 ‘반란’이 아니라 노동자, 학생들과 더불어 기층 민중이 전면에 나선 시민 항쟁이었음을 90년대 이후 공개된 미군 문서와 항쟁 참여자 및 목격자의 증언 구술을 통해 새롭게 입증하고 있다.

미완의 시민혁명,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선산 인민위원회 및 민전 간부)가 항쟁 중에 경찰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로 더 잘 알려진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었다.

10월 항쟁은 식민 통치와 봉건제 유산의 청산을 시도했던 미완의 시민혁명이자, 미군정과 친일 경찰로부터 건국의 주권을 탈환하기 위한 숭고한 항거였으며, 전국으로 확산된 항쟁이라는 점에서 ‘제2의 3ㆍ1운동’이라고 부를 만했다. 농민의 자발적 봉기 양상은 19세기 농민 항쟁(1862년 농민 봉기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계승이었다.

도시에서의 항쟁은 미군정의 계엄령 하에 진압되었다.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청년들은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다. 군경 토벌대는 빨치산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학살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과거 사회운동에 관여했다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수많은 사람들이 값없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바로 초기 현대 국가로서 반공 우익 국가인 한국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학살은 한 세대 사회운동의 절멸을 의미했으며, 국가 권력의 토대를 강화하는 폭력적 방법이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성립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10여년 후 4ㆍ19라는 뒤늦은 시민혁명이 뒤따랐고, 쿠데타로 인해 좌절된 시민혁명의 이상은 다시 20년 후 5ㆍ18항쟁으로 현현했다.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으로 한국인의 무의식중에 살아 있었다. 이제 봉인된 시간 속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2016년 10월 1일은 항쟁 70주년이다.

저자 김상숙은 2007~2010년까지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대구 10월 사건’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담당한 조사관이었다. 2010년 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뒤 더 이상 조사관의 신분이 아니면서도 항쟁 참여자 및 목격자, 유족의 증언 구술을 찾아 다녔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그러면서 ‘대구 10월 사건’이 시민 항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10월 항쟁』은 9년 동안 진행한 조사와 연구의 결과물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