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로부터 떠날 때
[메갈리아 해방전쟁] "젠더사회의 진정한 적과 맞서야 할 때"
    2016년 09월 12일 05: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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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부산에서 열린 노혜경 시인의 ‘메갈리아 해방전쟁’ 특강의 강연록이다. 소위 메갈리아 사태는 지난 7월 정의당 문예위원회에서 게임업체 넥슨이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고 인증을 했다고 성우를 교체한 사건에 대해 표현의 자유와 노동권 문제에 대해 논평을 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 논평을 둘러싸고 메갈리아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비화됐고, 정의당 내에서도 논평 철회와 상무위 입장 등 지도부가 태도를 표명하고, 당원들 사이에서는 메갈리아 찬반 논쟁이 격화되고 탈당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또 정의당 내 여성주의 당원들 모임이 결성되고 논쟁에 나서기도 했다. 한 정당의 내부 논쟁이 아니라 시사인 등 다양한 진보매체들에서 이 논쟁에 주목하면서 기사로 다루었고 따라서 그 찬반의 격한 파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창우 정의당 부산시당 전 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버전의 메갈리아 티셔츠를 제작하고 그 수익금으로 당 내 논의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노혜경 시인의 메갈리아 해방전쟁 특강을 개최했다. 노 시인은 정의당 당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메갈리아 논란, 페미니즘의 이슈화에 대해 정의당이 역할을 한 것을 평가하며 이후에도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강연록을 이창우 전 위원장이 녹취하여 푼 것이기에 분량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독자의 입장에서 분량을 나누는 것보다 한번에 게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여 전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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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오늘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에서는 청중이 적은 걸 아쉬워 하지만 나는 많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시끄러운 논쟁도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것은 100에 한 명 정도다. 노사모가 회원은 10만이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전국적으로 2000명이 안 된다. 인터넷의 소음과 오프라인과는 다르다. 10명 정도 오면 성공이라고 했다(웃음)

2001년 부산대학교 영페니스트 그륩 ‘월장’에서 여학생에 술을 따르게 하는 등 복학생 문화를 비판한 웹진을 발행했을 때 전국의 남학생들이 총궐기했다. 호남향우회, 고려대동문회, 해병대전우회가 무섭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부산대 게시판에 다 몰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월장에 대한 사이버 테러가 극에 달했었다. 그런데 정작 오프라인 토론회를 해보자고 했더니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인터넷상의 특성이 그렇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온 분들이 더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이 아니라면 뭐가 페미니즘인가?

나도 이번 메갈리아 사태에 지지를 표명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메시지가 왔다. “당신이 메갈리아의 실체를 잘 몰라서 지지하는 것 같다”라며 우스을 정도로 똑같은 사진 화면 캡쳐한 메시지들을 받았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는 그들은 진지한데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 본부가 있어서 뿌리라고 시킨 것 같은 정도로 똑같은 캡처 화면들이었다. 설득된 논리를 자기의 언어로 재구성할 논리가 부족하다 보니 어디서 베낀 게 아니겠는가? 싶었다. 어떻게 보면 여성혐오라는 사상이 퍼져나가는 것도 비슷한 논리일 것이다.

그런 메시지들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메갈리아가 뭘까? 내가 보기엔 메갈리아는 전형적인 페미니즘이었다. 21세기 2016년 한국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렇게밖에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건 전형적인 페미니즘 운동이다. 지금 여자들이 억울해서 미치겠는데 뭔가 여자들끼리 모여서 해보자고 했을 때 그들이 어느 사이트를 찾아가겠는가? 갈 데가 메갈리아밖에 없다. 따라서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정말 쓸 데 없는 문제를 만들어서 오답노트를 베끼는 것과 같은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메갈리아 해방전쟁’은 일종의 영토분쟁

‘메갈리아’는 사람의 지칭이 아니다. ‘메갈리안’이 정확한 명칭이다. 그런데 왜 ‘메갈리아’라고 했느냐? 이건 영토 분쟁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의 영역다툼 성격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는 남녀 지분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가 역사비평에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메갈리아 논쟁까지’라는 글의 부제로 ‘페미니즘 봉기와 한국남성성의 위기’라고 썼다. 지금까지 그 어떤 페미니즘 운동보다 남성들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메갈리아가 ‘제대로 찔렀다’는 것인데 나 또한 우리 사회 내에서 드디어 여성들이 똑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똑같은 영역, 영토를 요구하기 시작한 운동이 잘하면 새로운 전환의 시발점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메갈리아 해방전쟁’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전쟁이 잘되면 ‘땅’이 생긴다. 땅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남녀가 둘이 손잡고 사이좋게 살 수 있다. 메갈리아의 로고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여주인공이 자주 쓰는 표식이라고 한다. 인류가 파멸하고 사회가 파괴된 세상에서 새로운 인류를 책임지는 주체적인 여성상이다, 그 로고는 남성에 대한 야유임과 동시에 주체적인 여성으로 우뚝 서겠다는 의지의 표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노헤경 켭처

강연하는 노혜경 시인

1. 메갈리아란 무엇인가?

DC인사이드에서 김치녀를 추방한 미러링

원래는 메갈리안은 누구인가?라고 해야 하지만 그냥 은근한 의도를 갖고 메갈리아라고 하겠다. 메갈리아는 ‘메르스 갤러리’와 ‘이갈리아의 딸들’이 합성된 조어다. DC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메르스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메르스 사태 당시 홍콩을 경유해 입국한 여성이 검사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김치녀니, 된장녀니 온갖 비난이 쏟아졌는데 나중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 게 밝혀진 후 일제히 입을 다무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욕을 해댔으니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면 최소한 부끄럽다는 한마디라도 해야지 당연한 게 아닌가, 라며 분노한 여성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여기서 그간 인터넷에서 한국 여성들에게 ‘된장녀’, ‘김치녀’ 등 무슨 일만 생기면 무슨 ‘녀(女)’자 붙여 일반화시키고 딱지를 붙이는 것이 놀이였는데 여성들이 처음으로 ‘남(男)’ 자를 붙이기 시작했다. ‘김치남’이라고.

그런데 그동안 김치녀, 된장녀라는 말에 대해서는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던 DC인사이드 운영자가 ‘김치남’과 ‘김치녀’ 둘 다 사용금지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일베적 언어가 난리를 쳐도 모른 척하던 관리자가, 여성혐오적 언어를 모르는 척하던 관리자가 그것을 ‘미러링’하는 방식의 언어가 나오자 ‘혐오표현을 규제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래도 디씨인사이드 관리자는 근대의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공정성은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왜냐면 김치남은 김치녀를 뒤집은 것인데, 김치녀는 되고 김치남는 안된다고 하면 자기가 여성혐오자라는 걸 커밍아웃하는 것이 되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줄 알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끄러울 수 있었다는 것이 ‘대박’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워하면서 김치남과 함께 김치녀가 금지되는 걸 본 여성들이 ‘아! 이거 좋은 전략이로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뒤집어서 되돌려주니까 쟤네들이 꼼짝 못하더라’ 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미러링을 사용했다고 한다. 삼일한(여자와 명태는 삼일에 한 번 씩 패야 한다)과 같은 여성비하적 서사의 성별을 바꾸기만 해도 충격이었다. 여자들은 급기야 일베의 언어까지 뒤집기 시작했다. 여성비하의 서사에 대해 여자들은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을 뒤집는 일은 여자에겐 쉽다. 뒤집기 놀이는 생각보다 재밌다.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분리

그런데 미러링은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거울이 깨끗해야 하고 똑바로 비춰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즉 미러링은 정교한 언어전략이다. 그런데 뒤집기는 그 전제가 되는 어떤 서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대가 이야기를 안 하면 이제 미러링할 거리를 발굴해야 한다. 메갈리아를 비난하는 근거가 되는 성소수자 비하, 노무현 대통령 비하 발언들이 그런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 성소수자는 ‘똥꼬충’. ‘노무현도 한남충’이라는 식이다.

모든 남성이 욕먹어 마땅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욕하는 재미에 빠져서 도를 넘어서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메갈리아 사이트 내에서는 이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 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미러링은 하지 말라는 공지가 나가자 이에 반발해 ‘나는 계속 씹어야겠다’는 이들이 메갈리아 사이트를 떠나 워마드로 갔다.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반대하던 이들도 떠났다. 결국 메갈리아 사이트 공지사항은 2015년 12월 9일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운영자들이 떠나버린 유령사이트가 된 것이다.

남성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반대했던 나머지는 ‘페이스북’으로 터전을 옮겼다. 이렇게 페이스북에 메갈리아 사이트를 만들었더니 남자들이 페이스북 코리아에 몰려가 신고함으로써 메갈리아 사이트는 세 번이나 폐쇄되는 수난을 겪었다. 지금은 페이스북에 ‘메갈리아4’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만약 또 폐쇄하면 소송에 들어가겠다며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판매했다.

메갈리아에 대한 비난은 옛날 글들과 워마드 사이트에서 흘러나오는 지나친 미러링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정작 ‘메갈리아4’는 미러링을 더 이상 하지 말고, 여성혐오의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행위를 하자고 하고 있다. 이렇게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다르다. 나에게는 다르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메갈리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메갈리아 워마드를 구분하지 않는다.

개별 여성의 패륜도 모든 여성의 연대책임인가?

남성젠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개별 여성의 문제를 ‘녀’자를 붙여 일반화한다. 된장녀라는 말을 보면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는 여자라는 말인데,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문제 삼을 정도로 우리 경제가 끔찍한 수준인가? 커피 한 잔 마신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된장녀’만으로 부족했는지 이제 ‘김치녀’가 나온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인데 어떻게 여성 전체를 ‘김치녀’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지만 여자에 관한한 개별 여성의 문제가 ‘김치녀’, ‘된장녀’ 같이 일반화 되어 언어적으로 전파된다. 마찬가지로, 단 한사람이라도 패륜적인 언어를 쓰는 구성원이 있었으니 메갈리아 전체는 일베나 다름 없다는 확대논리를 적용한다. 그렇다면 일베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집중적으로 하고 온갖 패륜적인 언어를 쓰는 건 다 남자들이니까 대한민국 남자는 몽땅 일베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논리는 안 쓴다.

워마드가 잘못되었으니 메갈리아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가? 부분의 잘못을 전체가 연대책임을 지는 것은 항상 소수자의 몫이다. 다수자는 연대책임을 강요받지는 않는다. 다수자는 언제나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행사하는 반면 소수자들에게 개인의 권력은 없다.

이번 메갈리아 논쟁에서도 이런 언어적 기동이 굉장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여자들도 넘어 간다. 여자들도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이건 언제나 여성문제가 발생했을 때 있어 왔던 일이다.

2. 무슨 일이 벌어졌나

사건으로서의 메갈리아

왜 다시 메갈리아냐? 2015년 12월에 이미 분화된 사이트가 왜 지금 와서 시끄럽게 이야기가 되는가?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우선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여성혐오가 죽였다”는 말이 나왔다. ‘여성혐오’란 말을 여성학자들 말고 일반인들은 이때 처음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이 ‘미소지니(misogyny. 부정적 의미의 접두사 mis와 여성을 뜻하는 gyn의 합성어다)’의 잘못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젠더를 정확하게 얘기하면 가부장 지배를 대신해 들어선 남성지배를 일컫는 말이 젠더라 할 수 있다. 젠더화 된 사회 속에서 나는 여성의 역할을 하고 너는 남성의 역할을 하는데, 남성 지배 사회이기 때문에 내가 여성 젠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좀 복잡하게 정의할 수 있는 말이다.

남성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모든 전략을 ‘미소지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여성혐오’라고 번역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여성혐오라는 말이 가진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언어생활 속에서 지니는 혐오라는 어감과 여성혐오라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생하는 이해의 차이가 지금 논쟁에서 많이 드러난다.

메갈

“여성은 왕자를 필요롤 하지 않는다” 티셔츠

그 다음에 일어났던 사건이 넥슨의 성우 해고 사건(정확히는 성우 교체)이다. 이것은 메갈리아가 워마드와 헤어지고 나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가 세 번이나 폐쇄되면서 ‘메갈리아4’라는 페이지를 만들고 또 폐쇄하면 소송을 걸겠다고 소송비용을 모금하는 티셔츠를 그 성우가 입고 인증샷을 올린 것을 문제 삼아 교체시킨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정의당 문예위 논평 사태, 시사인 절독 사태, 급기야 정의당에서는 “우리는 여성주의 정당”이라고 선언하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담론투쟁들이 벌어졌다. 시사인, 미디어오늘, 프레시안 등에서 독자투고를 받아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들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 있다. 소위 ‘로린이’와 그것을 미러링한 ‘좆린이’ 사건인데 우선 ‘로린이’부터 살펴보자. ‘로린이(로리타와 어린이 합성 조어)’를 구글로 검색해 보면 43만개가 나온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로린이’를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등 소아성애자들이 어린이를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어떤 곳을 가면 동영상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줄줄이 나온다. 43만개의 게시물 모두가 소아성애적 게시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압도적 다수는 그렇다. 로린이 사진을 검색하면 90% 이상이 어린 여자애들 사진이다.

그러면 로린이를 미러링한 ‘좆린이’ 사건은 어떤가? 이 게시물을 올린 이는 유치원 여교사였는데 어릴 때 아동 성폭행 피해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하도 ‘로린이, 로린이’ 하니까 뒤집어서 ‘좆린이’라고 미러링한 것이다. ‘좆린이’라는 게시물이 최초로 게시된 곳은 이미 활동 중단된 메갈리아 옛 게시판이었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이 글이 조회수 7일 때 처음 외부로 퍼 날라지는데, ‘이것이 워마드의 실체’라고 폭로하고 싶은 소위 ‘여혐러(여성혐오주의자)’들에 의해 퍼 날라지고 또 퍼날라지고 하면서 심지어 그녀의 신상이 털리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구글 검색을 해보면 이 어휘를 다른 여성이 똑같이 사용한 예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못찾았다. 심지어 신상털기도 있다. 원래 ‘좆린이’라는 게시물은 로린이와 달라 그 여성 한 사람이 올린 글이다. 그 한 사람을 조리돌림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게시물들이 생산되었다는 말이다.

사진을 보면 더 확연하다. 대부분의 ‘좆린이’ 게시물의 사진은 남자 어린이가 아니라 그 글을 욕하기 위해 캡처한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더 재미있는 건 ‘로린이’는 그냥 볼 수 있는데 ‘좆린이’는 19금 인증을 해야 볼 수 있다. 여자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건 아무런 금기도 없이 검색이 되고 남자 어린이를 미러링한 것은 19금이다. 이 두 개의 글은 지금 한국 여성현실과 여혐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다.

나는 ‘좆린이’라는 글이 메갈리아에서 널리 돌아다니는 글인 줄 알고 아무리 미러링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머리 나쁘게 하냐고 생각했다. 왜냐면 여자 어린이는 남자가 강간할 수 있지만 남자 어린이는 여자가 강간할 수 없다. 기껏해야 주무르는 정도인데, 물론 이것도 성추행이지만, 로린이라는 말과 결코 등가가 아니다. 여자 아이를 갖고 있는 엄마들이 갖고 있는 공포감을 남자들이 절대 느낄 수 없다. 다만 불쾌감 정도일 뿐이다. 불쾌하게 느끼는 정도만으로도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했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러나 현실은 23만개나 되는 역공의 대상이 될 확율이 더 높지 않은가? 게다가 그 자체가 소아성애를 연상시키는 범죄적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한 사람이 쓴 글을 이렇게 많이 퍼다 날랐는데 그게 남자들이 퍼뜨린 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모욕했다는 것도 자기들이 퍼뜨린 것이다. 이것도 남녀의 지형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일종의 공격이구나 싶었다. 메갈리아 쪽에 있는 여성들과 메갈리아를 반대하고 공격하는 쪽의 남성들과는 파워에서 비교가 안 된다. 한 여성을 공격하는 데 23만개의 글이 생산되었다. 여자들 가운데 이런 정도로 공격받는데 간 크게 그래도 ‘좆린이’라고 할 여성이 몇 명 있겠는가? 23만개의 글 중에서 70~80%는 그 여성을 성토하거나 단죄하기 위해 공격하는 글이다. 23만 대 1로 당하고 있는 것이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형 속에서 진보진영의 논객들이 ‘나도 메갈리안’이라고 지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 이건 힘 약한 사람들에게 편들어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가 있는데 이런 일은 진보매체들이 당연히 해 온 것이다. 진보매체의 기자들이 조사도 안하고 그런 기사를 쓰겠는가? 부당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사인] 같은 곳에서 (메갈리아에) ‘분노한 남자들’이라는 특집을 냈을 것이다. 그 특집을 읽어보면 평이하다. 현상이 그렇다는 걸 썼는데 분노한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기반하고 있었던 어떤 팩트가 무너지는 면이 있다. 그러니까 그걸 참을 수가 없어 시사인 절독으로 나타났다. 이런 담론 투쟁의 형식을 띠고 있는 걸 나는 ‘사건으로서의 메갈리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런 사건들 속에서 흡사 메갈리아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팽팽히 싸우고 있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게 되는 것은 정의당이라든가 시사인이라든가 여러 진보매체들이 메갈리아 현상이라는 것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또 메갈리아가 약자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약자인데 크게 잘못한 것도 없이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편드는 건 당연한데 우리 사회의 ‘여혐러’들은 여성폭력들을 반성하기는커녕 왜 우리에게 여성혐오를 한다고 하느냐? 라고 나서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사건으로서의 메갈리아는 여성혐오가 우리 사회에서 단순히 일베와 같은 저렴한 자질을 지닌 남성 군단뿐만 아니라 자신은 ‘선량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남성들도 대부분 ‘여혐러(미소지니)’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진짜 미러링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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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에 대한 이창우씨의 만평

 

의미로서의 메갈리아

미러링이라는 것이 지니고 있는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지금까지 여성운동과 메갈리아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다.

지금까지 여성운동은 제도개선, 고상한 의미에서 담론투쟁을 통한 의식개혁 정도였다. 물론 호주제 철폐 같은 성과나 비례대표 홀수순번제 같은 작은 진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의식개혁이란 측면에서는, 기껏 싸움이 있었다면 2000년대 초반 영페미니스트 그룹 ‘월장’으로 대표되는 게 있으나 사실 박살나버렸다. 소수그룹의 운동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에 비해 메갈리아 여성들은 광범위하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식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미러링을 했더니 지금까지 반응이 없던 운영자가 반응을 보이고, ‘김치남’과 함께 ‘김치녀’를 금지어로 하더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현실 속에서 미러링이라고 하는 위력을 깨달았고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꽤나 성공을 거두었다.

– 미러링, 언어의 수행능력

여성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발언은 ‘상처를 주는 말’이라고 했다. 혐오발언의 영어 표현은 익사이터블(excitable) 스피치다. 헤이트(hate) 스피치가 아니다. 뭔가 감정을 격동시키는 말들, 상처를 주는 말 그 자체는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고, 그 말이 뿌리내리고 있는 관습, 과거 기억에서 그 말의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와 명태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드려 패야 돼”라고 말을 할 때,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옆집의 어린 남자애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냥 웃어넘길 것이다. 그런데 마누라 패는 옆집 남자가 술 한 잔 마시고 똑 같은 얘기를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그 발화자가 그 말 속에 있는 과거의 맥락을 당겨 쓸 수 있기 때문에 그 말이 위력을 발휘하고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거의 맥락을 끊어버리거나 또는 뒤집어 버리거나, 빼앗아 쓴다면 즉, “남자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돼”라고 하면 남자는 그 과거의 맥락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된다. 언어를 단순히 문자라든가 무엇을 지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종의 ‘수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우리가 말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과거의 맥락과 당신이 갖고 있는 과거의 맥락을 내가 발화를 함으로써 이어주고 어떤 행동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수행능력에 기대어서 혐오발언에 맞받아치는 것이 굉장히 위력적인 과거와의 단절행위가 된다고, 관습을 흔들어놓는 행위가 되다고 주디스 버틀러가 얘기하고 있다. 어떤 여성혐오 발언을 어떤 남성 주체가 한다고 하더라도 그 남성 주체는 그 말이 지니고 있는 과거 기억, 과거의 다양한 맥락들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지 그 권력 자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뒤집어 버림으로써 그 과거의 맥락을 끊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미러링 전략이 지닌 파워는 이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메갈리아 여성들은 이걸 몸으로 경험했다. 그녀들이 이런 책을 읽고 논리적으로 이런 전략을 써보자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작전이 효과가 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발언을 국가가 규제하는 걸 반대했다. 국가가 규제권을 갖게 되면 결국 국가는 남성주체들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기 때문에 소수자들의 언어가 먼저 혐오발언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메갈리아의 언어가 혐오발언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하는 이들은 그것이 일베적 언어와 같다고 하지만 그건 핑계다. ‘오유(오늘의 유머 사이트)’가 일베와 싸운 것은 사실이지만 오유가 일베와 싸운 것은 정치적인 맥락에서였다. 일베뿐만 아니라 오유에서도 만연하고 있는 여성혐오와 직접 피해당사자로서 싸운 것은 메갈리아밖에 없다는 정희진의 말은 옳다. 오유는 피해당사자가 아니다. “우리가 지지하는 노무현을 감히 너희가 모욕을 해?”라고 하며 그것을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 기동은 했을지라도 당사자들의 반대는 아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똑같은 주먹질을 했으니까 피해자라는 사실은 배제하고 똑같은 폭력배라고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옹색하다. 똑 같은 혐오발언이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은 강자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그것이 같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언어가 가진 효과, 언어 수행을 통해서 여혐을 드러내는 것이 이렇게 쉽더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메갈리아에 대한 공격은 언어적 측면이 있다. 메갈리아가 나쁜 말을 했고, 나쁜 말을 하는 메갈리아를 편드는 너희도 나쁘다는 식이다. 내 페이스북에 과거 노사모 운동을 같이 했던 어떤 지인이 [시사인]이 자기를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는 식으로 얘기하던데 (시사인)을 직접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남자는 여자에게 굉장히 가르치려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자기는 가르치려고 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것을 우리는 ‘맨스플레인’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남자에게 끊임없이 ‘맨스플레인’을 듣는데 그걸 지적하면 “내가 언제 가르치려 했어?”라고 반문하지 않는가? 그런데 [시사인]의 그 기사가 남자들에게 맨스플레인으로 들렸던 것 같다. 자기가 할 때는 괜찮다가 남에게 들을 때는 싫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지 붙이기나 호명하기 같은 건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메갈리안이 뒤집어서 남자에게 그렇게 했다. 혐오발언을 돌려주기만 해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소동이 났다. 상처를 주는 말에 의해 역으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자들이 저러는 것이다.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저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처라는 게 “끊임없이 여자들에게 주고 있던 상처를 언어적으로 되돌려줬을 뿐인데, 고작 저 정도에 상처를 받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동안 여자들의 상처는 얼마나 심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상당히 많다.

– 메갈리아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의 억압에 대한 도전

어떤 남자가 여자보고 “가슴도 납작한 것이”라고 했을 때 여자가 기분 나빠서 “왜 그런 기분 나쁜 말을 해”라고 하면 효과가 없다. 그래서 “그래, 나는 가슴이 납작하지만 너는 자지가 실자지야”라고 했다. 발설하기 굉장히 어려운 말이지만 여성들이 ‘실자지’라고 하는 말에 남성들이 상당히 기가 죽는다. 실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처음 메갈리아의 언어들을 보고 굉장히 힘들었다. “아니 어떻게 우아한 여성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성이 우아해야 한다고 누가 정해준 거냐? 말하자면 젠더사회에서 여성젠더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여성들을 규정지어 온 언행이다. 게이에 대해 비난하는 언어 중에 “여자처럼 말한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젠더적 여성성이란 생물학적 성별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여성적 태도, 마음가짐, 언행과 같은 사회적 다발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여성화되는 것이다. 여성젠더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성젠더에 부여되어 있는 여성적 행동을 뒤집어서 남자들과 똑같은 언행을 하면, 즉 젠더적 금기를 제외하면 여자가 왜 욕을 해서는 안 되는가? 거꾸로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젠더에 부여되어 있는 수많은 사회적 규칙은 거꾸로 말하면 남성젠더에게 부여되어 있는 수많은 남자다움과 짝을 이루고 있다. 이 금기를 깨는 것이 남녀 모두에게 자유를 준다.

내가 여자다워야 할 강제는 없는데 “그래도 나는 여성스러운 게 좋아, 내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하고 예쁘게 보여야 할 그런 강제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경우와 “여자는 화장을 해야 돼, 여자는 옷을 잘 입어야 돼, 단정해야 돼, 남편 앞에서 맨얼굴을 보이면 안돼” 이런 수많은 리스트들 속에서 여자다워진다는 건 정말 다르다. 전자는 자유고 후자는 엄청난 억압이다.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남자답기 위해 너무 많이 애를 써야 한다.

그래서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는 것의 이면에 들어 있는 남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 여성혐오로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자신이 남자답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여자를 괴롭혀서라도 남자다워야겠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웃음)

그렇다면 차라리 메갈리안의 언행은 그런 의미에서 젠더 파괴적 요소가 있다. 남자는 어때야 하고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혹은 어떻다는 것에 대항하고 뒤집는 것은 남녀 누구에게나 해방감을 준다. 이런 걸 통해 역전이 될 때, 여기서 해방감을 느끼고, 지금까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엄청나게 짓눌려 온, 가부장제를 바로 남성지배로 이어받아 낑낑대고 있는 남자들을 이 기회에 해방시켜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많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강남역

강남역 사건 주변의 추모 모습

3. 젠더와 여성혐오

21세기 유일한 페미니즘 전투장은 넓은 의미로 메갈리아가 될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 메갈리아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세대로 볼 때나 운동의 방식에서나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전투이기 때문이다. 메갈리안은 중고등학교 때 외환위기를 겪고 2008년 촛불시위 때 촛불 들고 거리로 나와 봤고,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을 때 울고불고 했던 세대들, 촛불소녀세대들로, 새로운 세대다.

메갈리아의 가장 큰 공헌은 여성혐오라는 말을 대중화시킨 것이다. 번역은 좀 잘못되었으나 이 현상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성혐오’라고 번역함으로써 안 해도 될 담론 싸움을 많이 해야 할 상황이지만 꽤 잘 찾아낸 말이다. 여성‘혐오’라는 말 때문에 ‘혐오를 혐오한다’, ‘모든 혐오를 반대한다’는 들의 말들이 만들어졌지만 사실 그런 말들은 말장난에 가깝다. 혐오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레퍼런스(지시하는 바)들이 다 다른데 글자만 같다는 이유로 모든 ‘혐오’를 반대한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런 말장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여성혐오’라는 번역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말은 잘 찾아낸 말이다. 여성혐오의 반대말은 남성혐오가 아니라 인간존중이 되어야 한다.

여성혐오에 대한 반대말로 ‘남성혐오’를 쓰는 사람은 일종의 자동반사, 조건반사처럼 대응하는 것과 같다. “모든 여성은 성폭행의 잠재적 피해자다”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 맞다. 여자 아이에서 할머니까지 잠재적 피해자다. 러시아에서는 11개월짜리 여아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모든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면 “모든 남성은 잠재적인 가해자”가 맞을까? 그건 당연히 아니다. 모든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라면 여자들은 남자 없는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데 남자들은 ‘모든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라는 말에 대해 “그러면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냐”라고 받는다. 이건 그냥 말 따먹기다. ‘혐오를 혐오한다’는 식의 말 따먹기와 유사한 것이다. 모든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라고 할 때 남성의 경우에는 일부 가해자와 잠재적 방조자, 방관자가 될지는 모른다. 여성을 가해하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동료가 되지 못한다면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 방조자’는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자동 번역하고 잘못된 담론투쟁을 하는 게 상황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다.

4. 어떻게 할 것인가

메갈리아로부터 떠날 때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남성젠더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올바르고 남성젠더의 권력이 정당하다는 인식에 균열을 내어버렸다. 그런데 균열을 내긴 했는데 현재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여성들의 연대가 중요하고, 정의당의 여성당원들도 남성들과 싸울 일이 아니고 함께 손잡고 헤쳐 나가야 할 일이다.

이제 내버려 두어야 할 일과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내버려 둘 것은, 메갈리아가 일베와 다르다는 것을 여성들이 굳이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것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증명할 일이다. 그렇게 내버려 둘 일이다. 이제 메갈리아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일, 메갈리아를 중심에 놓고 얘기하는 데서 떠날 때가 되었다. 문제는 메갈리아가 아니고, 문제는 상처받고 있는 여성들이고, 문제는 여성혐오를 들켜버린 남성들이다.

반지성주의를 경계해야

메갈리아로부터 탈출하기 전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일베라든가 반메갈 사태, 그리고 티셔츠 인증했다가 교체된 성우 등에서 보여주는 것 중에 굉장히 위태로운 것들이 있다. 오유가 앞장서서 ‘예스컷’ 운동이라는 걸 했다. 리버럴을 표방하는 집단에서 검열을 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은 막가자는 것이다.

규제권력에서 벗어나자는 문화에서 20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메갈리아이기 때문에-워마드의 행동강령을 따랐다고 하는데 워마드는 노사모와 같은 오프라인 조직이 아니다. 행동강령이 아니고 아마도 게시판 글쓰기 수칙 정도의 것을 따랐다는 이유만으로-사실 따랐는지 안따랐는지도 증명된 바도 없다- 검열에 동의하고, 자기들에게 비판적인 욕 좀 했다고 예스컷 운동과 같이 웹툰 작가들을 공격하고 검열을 조장한다는 건 우리나라 인터넷 네티즌 운동에서 흑역사가 될 것이다.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도 그렇다. 일베든 메갈이든 쓰는 언어를 보면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자음만 잔뜩 늘어놓고 자기네들끼리만 알아본다. 이건 언어파괴다. 영어로는 반달리즘이다. 반달족이 로마의 문명을 몽땅 때려 부수었듯이 언어 파괴는 문명과 문화를 때려 부수자는 것이다. 우리가 오랜 세월 언어라는 걸 통해 쌓아 올린 가치를 이런 식의 언어활동을 통해 너무 심하게 파괴하고 있고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말 귀 못 알아듣고 내가 느끼는 대로 마구 화를 내고 마구 공격을 해대는 공격성을 드러내는데 마치 그것이 자신의 권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소위 팩트 투쟁이라면서도 입맛에 맞는 정보만 골라 인용한다. 빼어난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법에 맞춰 얘기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런 걸 통칭해서 ‘반 지성주의’라고 한다.

시사인1

메갈리아와의 전쟁은 초점이 어긋난 싸움

[시사인]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자들은 왜 분노하는가?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자기가 약자의 처지에 놓여있고 앞날이 불투명한데도 시사인을 보고 분노한 것은 “네가 지금 그럴 처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시사인]의 기사 ‘분노한 남자들’을 보면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인 위기상황에서 제일 먼저 책임지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역시 남자들이다. 물론 여자들은 이미 절벽 밑에 있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절벽 위에 있다가 떨어지면 매우 아플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연애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고 싶은 여자들이 나를 싫다고 하고 ‘갓양남’이라면서 서양 놈 좋다고 그러고,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으려고 하면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싸움의 핀트가 잘못된 것이다.

– 2030 남성청년들의 처지를 이해해 보자

그런데 이제는 남자들, 특히 2030 남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적극적으로 들여다 봐야 할 시점이다. 메갈리아에 대해 2030 남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고 핀트도 어긋나 있다. 하지만 이 핀트가 어긋난 것에 대해 여성들도 그 세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문제, 성차별 문제 이런 건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온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젠더적 지배전략으로 오래 전승된 것이다.

여성들은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비교적 양성평등한 분위기에서 성장한다. 학내 남성들이 단톡방에서 성희롱 농담을 찌질거리며 하는 게 드러나면 아예 작살을 내놓는다. 그런 성희롱 발언이 노출되면 그 남학생은 죽은 목숨과 같다.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이다 보니 여학생들의 경우 학내에 있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삼엄한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아직 절실하게는 모른다. 메갈리아에 있는 여성들은 공부 잘하는 ‘알파걸’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 취직을 하려고 하면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도 자기 아버지가 판검사가 아니면 경북대나 부산대 나왔지만 자기 아버지가 판검사인 남자에게 밀린다.

어떤 여자라 하더라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밀리고, 낙오당하고, 무시되고, 도태당하는 경험을 하고,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가도 상사들의 성희롱에 일상적으로 시달린다. 스물 다섯 넘은 여자들이 만나는 세상은 정말 끔찍한 것이다. 그런데 2030남자들은 이걸 모른다. 마찬가지로 여자들은 자기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처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서 남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른다.

– 젠더사회의 진정한 적과 맞서야 할 때

그래서 메갈리아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남녀들이 서로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좀 더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그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마당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에서는 이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뭐가 문제인지 여성의원조차 모른다. 의식이 있는 여성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정의당에서는 가능하다.

결국 메갈리아 해방전쟁은 메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두 전선이 공동의 적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기 위해 관점을 돌려야 완성된다. 즉 메갈리아로부터 스스로 해방해야 한다. 메갈리아라는 영토에서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서 젊은 세대들이 손 좀 잡아야 한다. 그런 뜻에서 ‘해방’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손잡고 나아가기 위한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다. 메갈리아 전쟁은 한가한 싸움이 아니다. 이제 메갈리아가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적 분위기를 이만큼 폭로했으면 남성들도 그것을 반성하면 더 큰 파워가 생긴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제는 서로 손을 잡고 서로 대화해야 한다. 그것으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진짜 적들에 맞서야 한다. [끝]

필자소개
시인 (녹취정리 이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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