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여성 징집,
    그 배경과 한국적 오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무책임 국가
        2016년 08월 30일 10: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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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한국에서 노르웨이에서의 여성 징집제 소식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남성들과 함께 여성들도 평등하게 징집되겠다는 결정이야 몇 년전부터 노르웨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실질적 여성 징집은 금년부터 시작돼 한국에서 화제에 오른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 소식은 여러 가지 용도로 전유됐습니다. 일부 넷상의 마초들이 “우리도 여성까지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난리치기도 했는데, 대체로 보수쪽의 징병제 옹호론의 하나의 보충자료로 쓰인 듯합니다. 노르웨이 같은 선진국에서 징병제를 폐지시키기는커녕 여성에게까지 확대하는데, 우리도 우리 징병제를 지켜나가자는 이야기로 이용, 혹은 악용된 것이죠.

    아마도 “악용”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맥락이 전혀 다른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갖다가 한국 상황에서 그대로 적용시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는 이미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의 단순화가 되니까요.

    일단 같은 징병제라 해도 한국 징병제와 노르웨이 징병제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70만 대군”의 대한민국에서는 남성 현역 복무율은 90% 정도로 세계 최고 (내지 최악?)에 달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해마다 약간씩 달라지지만 대체로 20-30%에 불과하며 이제 여성까지도 가세해서 남녀 양성에 약 15%에 머물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르웨이군은 기본적으로 “소군”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징병제라 해도 대부분의 노르웨이 젊은이들은 한국인과 달리 군생활의 경험은 없습니다. 있다 해도 그 무게는 전혀 다른 거죠. 노르웨이에서는 군 복무기간은 1년을 넘지 않으며, 많은 경우에는 6-8개월로 끝납니다.지리적으로 가능하면 주말에 집에 갈 수 있는 거죠.

    한국과 핵심적으로 다른 점이라면, 평화주의자들은 군 복무 면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핵심적 차이라면, 노르웨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생명과 정신, 신체 건강을 위협받는 게 아니라는 거죠.

    노르웨이 군대라고 해서 왕따 현상 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폭력이나 심한 폭언, 모욕 등은 거기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발생이야 할 수 있지만 그 발생의 확률은 일반 시민 사회, 예컨대 징집자들의 동년배들이 다니는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고, 마찬가지로 커다란 뉴스가 되는 거죠.

    이런 차이의 근원은 뭘까요? 노르웨이 젊은이들이 한국 젊은이들보다 더 착한가요? 꼭 그렇지는 않죠. 사실 노르웨이 고교나 한국 고교는 왕따 피해 비율은 엇비슷합니다 (약 20% 정도죠). 단 노르웨이에서 같으면 왕따 현상은 대개 신체적 폭력보다 심적 소외를 뜻하는 게 큰 차이겠죠.

    징집자들이 노르웨이쪽에서 심성이 더 아름답거나 그런 게 전혀 아니지만, 일단 군에 가서 동료에게 – 특히 폭력을 수반하는 – 규율위반 행위를 좀처럼 안하려고 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행여나 폭행 사건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바로바로 가해자에게 “책임”이 발생될 것이고, 또 직접적 가해자만이 책임질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해당 부대 지휘관도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거고, 피해자가 군을 상대로 해서 피해배상을 재판해서 요구할 경우 군 자체도 재정적 책임을 지는데다가 엄청난 명예 실추를 당하는 거죠.

    폭력 사건의 “후과”가 이 정도로 무겁다면, 전문가인 장교들은 “폭력, 폭언, 왕따 등 사건 방지”를 그 일차적인 임무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인 만큼 그런 사건들의 발생을 나름대로 방지할 수 있는 것이죠. 병사 사이의 가해-피해 관계 발생의 초기 조짐들을 눈치 채는 대로 바로 조치를 취하면 – 예컨대 잠재적 가해자에게 가해에 따르는 사법적 책임을 환기시키면 – 폭력 방지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여성을 징병한다 해도, 남성들과 같은 막사를 쓰고 같이 훈련 받을 딸들을 부모들이 안심하고 보내는 이유는, 국가의 “책임”을 어느 정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신뢰가 전무하는 이유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책임”의 “책”자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남족이라면 군에서도 좋은 보직 받아 그 부모들이 누구인가라는 걸 아는 지휘관이 개인적으로라도 사적 책임을 지고 안전한 복무를 가능케 하겠지만, 흙수저에 대한 한국이라는 국가의 공적 책임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군 복무하다가 국가가 “북한 도발”이라고 떠들어대는, 사실상 아마도 물에 흘러내려간 지뢰를 잘못 밟아 다리를 잃어도, 제대하고 나서 지속적인 후속 치료를 자기 돈으로 해야 하는 만큼 “무책임 국가”의 전형입니다.

    이런 “국가”에서 군 시절의 선임병 괴롭힘으로 정신신경과 신세를 지게 된 예비역에게 국가가 심리 치료를 받을 만큼의 보상을 해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는가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한국에서 국가란 신자유주의 시대의 “재벌의 수족”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직까지 대민 통치기관, 즉 식민지 시대 총독부라는 외삽적 폭압 통치기관의 후계기관이지, 공민들에 대해서 공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공화국”은 아닙니다. 헬조선의 실체라면 바로 흙수저들을 착취하는 자들의 심부름만 해주고 흙수저들에게 각종 의무들을 뒤집어 씌어도, 흙수저들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무책임 국가”입니다. 그러니까 “밑”의 계급적 자각과 투쟁이 이 국가를 개선시키기 전까지 현재와 같은 참상은 계속 이어질 셈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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