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보다
더 무서운 기후변화
[에정 칼럼] 폭염은 물러났지만
    2016년 08월 29일 09: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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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던가. 가정용 전기요금을 향한 불만이 ‘폭발’했다. 무더위가 찾아오는 여름만 되면 가정용에만 붙는 누진제가 뉴스가 되곤 했다. 올해는 여름 한철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기후변화

누진제냐 기후변화냐

기록적인 폭염이 결국 누진제를 대폭 손질하는 쪽으로 돌려놨다. 현재의 6단계 11.7배율의 누진제를 3단계 2배율 정도로 개편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누진제 정국 초기에 개편 자체를 반대하던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는 새로운 요금체계를 11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여기서 변수는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우선 한국전력의 가정용 판매금액의 손실분을 어떻게 상쇄할 것인가. 이는 산업용 등 다른 용도요금의 개편과 관련된다. 다음으로 가정용 내에서 요금이 인상될 다수의 가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누진구간과 배율을 대폭 낮추면 현재에 비해 ‘역진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번 누진제 논란은 그동안 비정치적으로 취급받던 전기요금 체계가 갖는 모순들을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값싼 산업용’으로 대표되는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의 불공정성과 대기업 특혜를 건드렸다. 원가산정 정보와 사용량 검침일 등의 논란에서 나타난 한국전력의 부조리한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에너지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폭염 대응이 전기요금으로, 그것도 누진제에 국한되어 있어 유감이다. 폭염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현상이지만 그 원인은 사회체제에서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후변화 완화를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점차 바뀌고 있는 자연상태에 적응하는 사회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누진제와 전기요금에 ‘폭탄’을 퍼붓고 있는 국면이 불편한 이유다. 숱하게 수립된 기후변화적응계획이 작동됐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더위를 증폭시키는 환경을 만드는 도시의 기후 취약성을 문제 삼는 경우도 드물었다.

여전히 누진제 소식이 압도하고 있지만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진제만이 아니라 차제에 전기요금은 물론, 불합리한 에너지가격체계 전반을 손볼 기회로 삼자는 주장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반갑고, ‘에너지전환’으로 누진제 국면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에 박수를 보낸다.

폭염에 대한 개별 가구의 일차적 반응은 선풍기와 에어컨의 사용이다. 올해 폭염 비상으로 예전보다 에어컨을 많이 켰다는 가구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로 인해 누진 구간이 500kWh을 훌쩍 넘긴 집들이 ‘누진제 폭탄’을 맞고 있다. 반면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켜기 어려운 집들은 에너지 빈곤층이나 기후변화 취약계층이라는 딱지를 받는다.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상당하다. 적응 비용의 부담 정도에 대한 판단도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누진제 개선이냐 개악이냐

현재 검토되고 있는 누진제 개편이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행 누진제는 전기 절약을 유도하고 계층 간 형평성을 꾀하는 제도이다. 현재 정부와 거대 정당들이 검토하고 있는 개편안은 이 두 측면에서 사실상 자칫 ‘개악’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기요금 개편 ‘정상화’의 최우선 과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전기 수요관리를 위해서는 누진제나 이와 유사한 방식을 가정용만이 아니라 산업용 등 다른 용도에도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력사용 총량과 비중이 막대한 산업용, 특히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을 제어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 가정은 잘 하고 있다. 문제는 가정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심해지고 있는 혹서기와 혹한기를 반영한 가정용 누진제의 개선은 분명 검토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에어컨과 선풍기로 대표되는 난방에 대한 ‘필요’와 ‘욕망’을 구분해야 한다. 이런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생략된 채 산업용에 대한 불만이 좋은 취지의 가정용 누진제의 ‘폐지’나 ‘대폭 완화’로 이어지는 것은 퇴행일 수밖에 없다.

계층 간 재분배 효과를 유지하려면, 누진 구간과 배율 축소보다는 ‘필요 전력량’ 혹은 ‘적정 전력량’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필수재는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수준에서 누구에게나 공급되어야 한다. 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누진적인 요금이나 에너지환경세가 부과되는 것이 마땅하다.

2년마다 발간되는 ‘가전기기 보급률 및 가정용전력 소비행태 조사’의 2013년 보고서(통계청과 한국전력거래소는 더 이상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주택용 전력수요의 계절별 가격탄력성 추정을 통한 누진요금제 효과 검증 연구’(2015년)를 보면, 에어컨과 가전제품 사용실태는 주거 형태와 면적, 소득 등 여러 측면에서 계급적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에 곧잘 보도되는 사례는 대체로 평상시 전력소비량도 많고 난방기기 사용량도 많은 경우에 속한다. 현실에서는 쪽방촌과 중대형 아파트가 비극적으로 공존하고, 온열질환과 냉난병이 동시에 급증하고 있다.

전기요금 개혁과 전기세 신설

누진제 개편은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이라는 더 큰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기에너지와 여타 에너지 간의 가격 구조를 합리화하지 않고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기화’를 권장하는 사회를 만든 에너지가격체계를 함께 다루는 것이 정석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환경적 비용이 대거 누락된 채 부과되고 있는 전기요금체계의 핵심을 따지지 않은 채 제기되는 방안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이 비용들을 포함시켜 원가산정의 기준과 방식을 바꾸면, 사회 전체가 지불하는 요금은 상당히 인상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가정용 누진 수준을 일정하게 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다른 접근도 가능하다. 모든 전기요금에 에너지환경세를 신설하여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현재는 준조세에 해당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3.7%)만 부과하는데, 이를 통합하여 말 그대로 ‘전기세’로 묶을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전기용은 누진제를 대폭 완화해야 하고, 3.7%보다 높은 수준에서 사용량에 따라 차등화해 세금을 책정하는 숙제가 남는다.

정말로 세금이 되기 때문에 이 카드를 꺼내기는 정치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기요금에 소득재분배 효과를 노리는 우회적 방식보다 훨씬 타당하며, 전기요금을 비롯한 에너지가격체계 전반을 사회복지 향상과 에너지 전환 방향으로 개혁할 수 있는 유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현행 전기요금은 전기세도 아니고 누진세도 아니다. 어쩌면 ‘전기요금+전기세’가 대안일지 모른다.

기후전쟁의 서막

이제라도 방사능과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기후변화는 하나로 통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길로 말이다. 가전제품의 대기전력 차단과 효율적 사용으로 누진 구간을 낮추고, 나아가 태양광 발전으로 누진제로부터의 해방을 맛보는 경우가 미담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에너지 전환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려면 전기요금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이는 단계적으로 사회가 감내해야 할 경제적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에서 가정용 누진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폭염에 공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진짜 해결책이 무엇인지, 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빠른 방법이 무엇인지,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과 제도들을 통합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등.

마침내 폭염이 물러나고 가을이 왔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더울 때는 더 더워지고 추울 때는 더 추워진다. 이런 경향이 먼 훗날의 일이 아님을 우리는 생활 속에서 몸으로 깨닫고 있다. 폭염 대응이 폭탄제거반 활동으로 끝나게 되면, 더 파괴적인 위험이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지도 모른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회적 계약을 준비할 때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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