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가 만드는 희망의 집
[다큐 사진]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과 '두 어른' 전
    2016년 08월 29일 08: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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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오버’라는 게 있다. 장르를 초월하여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이 만나 함께 하는 예술을 말하는 것인데, 이게 단순히 예술의 차원을 넘어 문화계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떨친다.

사진가가 동양화가와 만나 각자의 작품을 양 쪽에 각각 걸고 중간 지점에 둘이 한 작품을 만든다. 사진 위에 동양화를 그려 놓는 것이다. 이런 창의적인 일은 소위 예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예술이라는 것이 좁은 의미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가 예술일 수도 있으니, 우리 삶 속에서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지면서 우리 삶은 더욱 신선해지고 활기차진다.

이런 삶 속의 크로스오버를 처절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투쟁에서 보았다. 서울의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7월 5일부터 2주일 간 연 〈두 어른〉 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붓글씨 40여 점과 문정현 신부가 서각 70여 점을 선 보였다. 만화가 박제동 화백은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 모두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었고, 사진가 노순택과 정택용은 사진을 찍고, 글을 써 SNS를 통해 널리 알리는 일을 하였고, 총괄 기획은 신유가가 맡았다.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나와 전시하고, 포장하고, 부치고, 정리하는 등 모든 일을 다 같이 함께 하였다.

[사진 1] @노순택

@노순택

백기완, 문정현 두 분은 화성 매향리, 평택 대추리, 서울 용산, 제주 강정 등 부당하게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여 일방적으로 죽거나 쫓겨나거나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그 모든 현장에 계시지 않는 법이 없었다.

두 분은 항상 그 자리에 계셨다. 길 위의 투사이고, 길 위의 성자다. 붓글씨를 쓰고, 서각을 새기는 일은 일상으로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전시는 고사하고 그것들을 작품이라는 것으로 남에게 판매한다는 일을 하기에는 본인들부터가 쑥스러워 할 수도 있다.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두 분의 사회적 명성을 빌려 작품성도 없는 것을 작품인 양 팔아 다른 목적으로 쓰려고 한다고 질타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일은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쑥스럽다고 해서 일을 벌이지 않을 수도 없고,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 일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 두 분의 작품 아닌 작품을 팔아, 단 돈 몇 푼이 될지라도 그것들을 모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를 외치기만 한다고 그 살인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망루로, 크레인으로, 광고탑으로, 첨탑으로 올라가고, 눈 덮인 땅 바닥에서, 40도 아스팔트 바닥에서, 콘크리트 천막 그 바닥에서 곡기를 끊고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발 뻗고 잠이라도 한 숨 자게 하기 위해 집을 한 칸 마련하기 위해서다.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을 마련하기 위해서, 벌이는 일이다. 예술의 크로스오버가 아닌 살기 위한 목숨 건 투쟁의 크로스오버다.

지난 1년 간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 사업은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1인 1구좌 후원의 방식으로 그 동안 3억 가까이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노동자들의 쉼터를 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우선적으로 꿀잠은 도심 한 복판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싸우기 위해 모든 걸 다 버리고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대부분 서울역, 용산역, 노량진역 등 각 지역과 이어지는 역 부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농성이 주로 도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실 관계에 있고, 도심은 그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각 지역에서 올라와 하루 종일 서서 외치고 기고 지치는 그 힘든 싸움 마치고 돌아와 한 숨만이라도 꿀잠을 잘 수 있도록 하는 곳은 서울에서도 한창 중심 중의 중심 지역이다. 서울 도심 지역 집값이 제 아무리 비싸더라도, 사람들이 한 푼 한 푼 모아 만든 돈보다 더 많을 수는 없다.

[사진 2] @정택용

@정택용

〈두 어른〉 전은 성황리에 마쳤다. 예상보다 많은 지지와 격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금을 많이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두 어른〉 전을 진행하면서 10개 언론사 20명의 노동 부문 기자들과 사진가들이 뭉쳐 일을 하나 저지르기로 한다. ‘비정규직’을 주제로 삼아 잡지를 만들어 판매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무크지이지만 상황에 따라 정기 잡지로 나올 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잡지조차도 비정규직인 셈이다.

일단 비정규직을 위한 비정규 잡지 <꿀잠>은 100쪽이 넘는 분량으로 한국 사회의 비정규 노동이 처한 현실을 누구든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다. 10개 언론사 기자 20명의 재능 기부와 몇몇 사진가, 기획자, 출판인들이 합력하여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크로스오버가 된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판매 수익금은 비정규 노동자를 위해 서울 한 도심에 세워질 쉼터 ‘꿀잠’ 건립에 기부하기로 했다. 지금 그 비정규직을 위한 비정규 잡지 <꿀잠>이 한창 제작 중에 있다. 바로 며칠 후 9월 5일에 세상에 나온다. 누군가 말했다. 이것이야 말로 한국 사회에서 저널리즘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는 시도라고…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세계 전역을 휩쓴다지만, 전 세계 어느 곳도 한국 사회같이 야만적이고 잔인하게 노동자를 거리로 내친 곳은 없다. 해고는 죽음이라고 제 아무리 소리 지르고, 외치고, 울부짖어도 권력이라는 자들이 이렇게 철저히 외면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이곳밖에 없다.

노동이 죄악인 나라라지만, 노동이 저주를 받는다지만, 더 심한 것은 비정규 노동에 있다. 같은 노동자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자는커녕 인간으로서의 대접도 받지 못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들을 개돼지로 취급하기 일쑤고, 시민들은 그들의 처지를 애써 외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다가, 컵라면 하나 먹으면서 일 하다가 지하철 안전문에 끼여 죽은 젊은 노동자도 비정규직이고, 성희롱을 넘어 성추행을 당하는 노동자도 비정규 노동자다. 법이 있어도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힘들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돌보고, 공동체가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시민들이 그들의 처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무엇이 억울하고, 사업주들은 얼마만큼 나쁜 짓을 했고, 법은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일터에서도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어렵지만, 해고를 당한 것도 억울하지만, 그것을 되돌리려고 안간 힘을 다 해보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은 그들의 처지를 시민들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 그 차디 찬 거리에서 서서 외치고, 바닥에서 기고, 밥을 굶어가며 싸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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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싸움을 하고 잠시라도 몸을 눕히고, 눈을 붙일 수 있는 곳, 내일 또 다시 또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겠지만, 잠시라도 깨끗이 몸을 씻고,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쉼터가 필요하다. 그 집의 벽돌 한 장을 위해 우리들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이 살아 있어야 사람이고, 인간이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사람 아닌가.

열 숟가락이 모여 밥 한 그릇 된다는 그 십시일반의 마음을 가져 보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고사리 손부터 시작하여 입시에 시달리는 고3 학생들, 알바 뛰느라 취업 준비 하느라 갖은 고생 다 하는 대학생들, 3포니 5포니 그 무서운 포기 시대에 처한 청년들, 신혼부부들, 이 땅의 고단한 아버지와 어머니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식들에게 당신들 시대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대를 남겨 줘 너무나 힘들어 하시는 우리의 어르신들, 모두 모두 모여 작은 쉼터 하나 만들어보자. 사람 사는 맛은 뭔가를 이루어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향해 함께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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