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
    [가재울 라듸오] 고민의 흔적들
        2016년 08월 26일 1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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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이대생들의 집회 동영상을 보다가 오랜만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들었다. 10년이 지났어도 이 곡은 더할 나위 없는 명곡이라 생각하지만 그 현장에 어울리는 노래는 당연히 민중가요나 투쟁가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 중 하나로서 새롭기도 했고, 어쩌면 이제 전세대의 운동 경험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운동의 경험이 출현하고 있다는,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 나간 듯한 생각도 들었다. 이대생들이 부르던 ‘다시 만난 세계’는 어쩌면 운동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운동의 자리에 옮겨 놓음으로서 다시 한 번 나에게 운동이란 무엇인가, 활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그래서 굳이 첫 제목으로 이것을 쓰고 싶었달까… “다만세”를 부르는 이대생들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기분을 정의 내리려고 애썼지만 잘 정리하지 못했다.

    거칠게나마 그 느낌을 이렇게 정리해보려 한다. “다만세 동영상에는 내가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향해온 일상의 언어, 일상적 형식 안에 우리가 지향하는 운동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흔들었다.” 일부 이대생들이 운동권인 나를 싫어할지 몰라도 난 어쨌든 그랬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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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는 어떤 위치에서 글을 써야하는 것일까? 조금 고민을 했다. 학부 때에는 여성주의 학생회 운동을 했었고, 그 이후에는 미디어 운동으로 현재까지 운동하며, 그와 관련된 일로 먹고 살고 있고, 그리고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활동가이다. 10년 가까이 진보정당의 당원이지만 많은 선배들이 회고하는 민주노동당의 경험은 없는 세대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나는 10년 가까이 ‘활동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어쨌든 ‘지역 활동가’라는 정체성에 맞게 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그 ‘지역’이라는 경계가 생각만큼 딱 자리매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역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경계가 애매모호 한 면이 다분히 있고, 나의 정체성은 늘 중앙 이슈와 지역 이슈의 큰 분류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 가는 데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역, 공동체…. 좋은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

    서대문구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서대문구에 이사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갈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혼을 하고서는 부모님 집 바로 옆 동네로 이사해서 살고 있다.

    30대 초반까지 제일 싫어하던 말은 공동체였고, 집에서는 뭘 하기는커녕 늘 잠만 자고 나갔는데, 뜨개질 소모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활동’을 그것도 지역의 보수적인 사람들과 무엇을 한다는 것은 정말 내 생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꾸역꾸역 어느새 4년째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물론 나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을 한 사람도 아니고, 지역 활동을 오래한 선배들만큼 내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 4년은 아는 사람이라고는 부모님과 동생밖에 없었던 동네에서 정말 좌충우돌 하면서 자리를 잡아 왔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활동가 내지는 운동권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던 오만함이나 편견이 많이 깨지기도 했고, 반대로 어떤 부분들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나에게는 지난 4년간 지역에서의 활동이 또 다른 내가 되는, 또 다른 정체성을 정립하는 다소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매일처럼 사람들 안에 있어야만 했고, 나에 대한 헛소문과 뒷담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또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면해야 했다. 그런 날들이 지루하게 반복되던 때도 있었다.

    초반에는 그래도 좀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매일 우는 게 일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 하는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애매한 긍정의 시각은 활동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깨졌다. 환상에 빠지지 말고 좀 더 냉정하게 지역을, 공동체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가재울

    가재울 라듸오 방송 모습.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필자(가재울 라듸오 페이스북)

    환상을 조금 거두고, 조금 더 솔직하게

    지역에서 <가재울 라듸오>라는 마을방송국을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 혼자 운영을 시작하던 시기에 시원하게 한 번 말아먹고 다시 정신을 차려 운영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웬만큼 일 할 줄 알고, 웬만큼 말을 알아듣고, 웬만큼 부지런하고, 웬만큼 약속을 잘 지키고, 웬만큼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그래도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지역 방송국, 그리고 어느 정도 알려진 마을 활동가가 되었다.

    부모님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탓에 부모님으로부터 동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전해 듣는 경우가 있다. “다 좋은데, 속해 있는 정당이 너무 왼쪽이고 빨갱이 같다고 하더라” 이게 활동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에게 했던 이야기는 “나 빨갱이 맞는데, 맞다고 해요. 우리 딸 빨갱이라고” (부모님은 이런 직설적인 성격을 싫어하신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까지는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데, 이때는 진짜 이 얘기 저 얘기 무차별적으로 들어올 때였고, 나의 멘탈도 그만큼 강하지는 않았던 시기였다. 사실 내가 진보정당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뒷얘기들이 나돌았고, 그 헛소문들은 실제로 우리 마을방송국의 운영을 어렵게 할 정도였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정치적인 것을 에둘러 갈 필요가 더더욱 없겠다는 것이었다. 난 그 전에는 조금 애매한 위치(?)로 내 정체성을 숨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욕을 대차게 먹고 보니 굳이 숨길 필요가 뭐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뒷담화를 하고 다니신 분들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지역에는 좋은 분들이 아주 많으시다.)

    사실 지역 활동을 하는 진보적인 활동가들 중에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숨기거나, 애매하게 물 타기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그러한 태도 역시 지역에서 만나는 지역 사람들에게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더 명확하게 자신의 정체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종종 “저는 빨갱이입니다…”라고 동네 분들과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고, 정당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기도 한다. (오늘은 메갈리아가 뭔지 오유가 뭔지도 전혀 모르고 관심이 1도 없는 동네 분들이랑 밥+낮술을 하며 장장 1시간 동안 메갈리아 논쟁에 대해서 설명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속한 정당의 일에 대해서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또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나에게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렇구나.. 라고 끄덕끄덕하게도 된다.

    앞으로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이 공간을 통해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하게 될 이야기는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가 지역 활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형태의 운동을 만들어가는 기록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서는 당연히 제일 어린(!)축이고 더구나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만만하지 않은, 정체성과 자존감의 깎임(?) 그리고 정치적 번민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기존의 사회운동의 성취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성취와 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작게는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더 크게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가려고 애쓰는 지역 활동가의 고민의 흔적에 그치게 될 수도 있고, 글을 통해 더 많은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공감과 질책 그리고 조언을 바라면서 조금은 머뭇거리게 되는 첫 발을 떼어 보려 한다.

    필자소개
    마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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