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강보험'
건강 아닌 기업의 이윤 보장하나
[민중건강과 사회] 병원과 의사 등 공급자 편향 심화
    2016년 06월 24일 05:23 오후

Print Friendly

전례 없는 수가 인상

지난 6월 1일 건강보험은 2017년에 적용할 의료서비스의 가격, 즉 수가를 2.37% 인상하기로 결정했다(1).

정확히 말하면 환산지수를 인상했는데, 수가를 결정할 때 각 의료 행위의 상대적 가치를 점수 형태로 표현하고 그 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해서 진료비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상대가치점수는 정부가 결정해서 고시하고, 환산지수는 정부가 의사협회, 병원협회, 약사회와 같은 공급자들과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이번에 결정된 환산지수 인상에 따른 추가소요 재정은 8,134억 원으로 지난 2008년 유형별 수가협상이 도입된 이후 최대다. 이전 3년간 추가소요 재정이 6,500~6,900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인상된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의약계가 ‘인건비, 임대료 등 비용 상승 및 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영 악화 등을 근거로 전년 대비 높은 인상률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7%였다. 수출이 17개월째 하락세이고 조선산업 구조조정으로 떠들썩한 시기에도 의료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정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누적흑자가 5년 연속 발생하면서 17조 이상 쌓여있기에 공급자들도 기대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누적흑자는 지속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환자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아 발생한 것이고,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써야 한다고 요구해왔던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부가 그동안 묵살해온 것을 상기해야 한다. 심지어 정부는 누적흑자를 주식 투자에 활용해 건강보험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려는 시도도 했었다.

nhic logo edit

건강보험의 공급자 편향

최근 추진되는 건강보험의 제도를 보면 보건복지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지난 6월 7일 공단은 ‘통합적 만성질환 관리수가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비대면 상담’을 포함하고 있어 사실상 원격의료 시범사업이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는 불법이며 안전성이나 비용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시범사업을 할 수는 있지만 효용성·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행위를 건강보험이 운영하면서 수가를 부여해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국은 원격의료를 할 만큼 국토가 넓은 것도 아니고, 병원이 부족하지도 않다. 물론 병원이 대도시 중심으로 몰려있는 것은 문제지만 그 해결책은 공공의료의 확충과 주치의제 도입이다. 병원 설립과 병상 확충에 대한 정부의 계획과 규제를 강화하고, 취약지에는 공공병원을 운영하면 된다. 또한 주치의를 통해 건강예방과 만성질환 관리, 적절한 의료이용을 유도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해결 방안은 수십 년째 내버려두면서, IT·전자 산업에 진출한 삼성과 같은 재벌들이 추진하는 원격의료 추진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19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막히자 정부 국세를 통한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급기야 건강보험 재정까지 시범사업에 활용하는 것은 복지 재정을 기업보조금으로 활용하는 꼴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기업보조금처럼 활용하는 것은 원격의료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16일 식약처는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바이오헬스케어 규제혁신’을 발표했다.

여기엔 의약품 허가에 있어서 임상시험 기준을 완화하는 ‘조건부 허가’를 확대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치매, 뇌경색 등 생명을 위협하거나 증상이 쉽게 호전되지 않는 질환에 사용되는 신약들을 일찍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3상 임상시험 과정에서 탈락하는 신약들이 절반이 된다. 즉 허가가 남발되면 효과가 없거나 해악적인 약을 환자가 복용하게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비용을 임상시험의 단축으로 혜택을 본 제약회사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건강보험이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 대상인 약제,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대상자의 사전 검진, 진찰 그리고 임상시험 이후 재활까지 모두 건강보험재정으로 지원하려는 시행령을 발표했다.

충분한 정보에 대한 접근과 정책 결정의 권리를 보장해야

보건산업, 정부의 이른바 ‘바이오헬스케어’가 향후 성장시켜야 할 신산업으로 주목받으면서 보건의료정책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제부처가 규제완화(투자활성화) 정책, 신산업육성 정책으로 관련 계획을 발표하면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식약처 등이 국민의 보건과 의료의 질 향상 정책으로 포장해서 세부 정책을 발표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생명과학, 의료와 같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활용해 전체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을 반대할 이는 없다. 그러한 정책은 기획재정부, 산업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경제부처가 추진하면 된다. 물론 첨단의학의 발전이 국민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보건복지부도 개입할 근거는 있다. 실제로 현대 병원은 환자에 대한 치료와 교육·연구 기능이 통합되어 있다.

문제는 정부의 보건산업 정책이 신의료기술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개발을 촉진하는 대책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혼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신은 영리병원 도입, 병원의 영리부대사업 규제완화 등 박근혜 정부가 명백히 상업성만을 고려한 의료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제자리걸음인데, 오히려 건강보험으로 공급자 수가 인상, 원격의료 시범사업, 제약회사 임상시험 지원 등의 계획만 부각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신을 만들 수밖에 없다.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보건의료 산업 고려한 건강보험 체계’를 요구하는 분명한 목소리가 있다(2). 정부가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낼 때마다 주식투자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생명공학과 의학이 인류의 복리 증진에 올바르게 기여하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규제완화만 외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통제가 오히려 필요하다. 신의료기술에 대한 평가과정, 평가 이후 건강보험 적용(급여등재)과 수가 책정과정이 보다 개방적인 체제로 바뀌어야 하고, 기업의 이해로부터 자유롭게 판단할 주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올해 초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추천 단체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민주노총을 배제했던 보건복지부의 행태를 보면 건강보험 정책 결정 구조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참고>

1. 한국에서 설립·운영되는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를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라고 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의료보험 민영화’라는 비판을 받으며 취소한 바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들(급여항목)은 그 가격이 일정한 제도적 절차를 통해 일괄적으로 정해진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형수술과 같은 비급여 행위의 가격은 병원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2. “바이오산업 육성하려면 규제·저수가 ‘대못’ 뽑아야”, (뉴스1, 2016.6.9.)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2686262&103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