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과 콜라 & 말함과 행함
    [잡식여자의 채식기] "그 풀 먹음이 담고 있는 정신을 실천하시오"^^
        2013년 02월 21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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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왼쪽깜박이 켜고 오른쪽으로 돌았다고 싫어했다. 낙타는 지성인이라면, 지식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낙타는 將驕者는 必敗하니 見機而作하라(將驕者(장교자)는 必敗(필패)하니 見機而作(견기이작)는 교만한 자는 반드시 망하리니 주변을 살피면서 일을 도모하라는 뜻)를 외며,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낙타는 채식은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실천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고, 옳은 말이고, 아름다운 말이다. 말, 말, 말일 뿐이다.

    나는 한때 나름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다. 기도생활도, 성경공부도, 헌금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타락(?)을 했다. 기도도 시큰둥, 성경은 아예 안 봐, 헌금은 왜 해? 가 되었으니, 기독교도들의 말로 믿음이 식고, 실족하고, 세속적이 된 것이었다. 쉽게 말해 타락한 거지 뭐. 핑계 없는 무덤 없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니, 나의 타락도 반드시 원인이 있을 터였다.

    그게 뭔고 하니, 바로 말함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는데 대한 환멸이었다. 나는 기도도 열심히 했고, 성경도 열심히 봤지만, 목사님의 말씀도 열심히 듣고, 봉사도 많이 하였지만, 내가 받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내 삶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다. 말함과 행함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컸다.

    주변을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공명하거나, 감화하는 삶을 사는 이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말은 넘쳤다. 모두들 혀에 금테를 둘렀는지 말만은 번지르르했다. 하지만, 삶은 없었다. 그래서 괜히 고결한 가르침을 받으며, 스스로를 고결하다고 착각하느니, 걍 꼴리는 대로 살기로 했다.

    이러니 좋은 것이, 양심의 심판이 줄어든 거였다. 거룩하지도 못한 주제에 거룩한 말을 하지 않으니, 양심이 못견뎌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삶의 기준을 주제에 맞게 하향조정해서 말함과 행함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정신적 번뇌를 줄이니, 정신적 삶의 질이 상당히 윤택해졌다. 이것이 내 정신적 여정의 히스토리이다. 나의 정신은 지금 비교적 안녕하다. 괜히 실천도 못할 유려한 말을 하지 않으니, 양심이 거리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있어, 채식하는 낙타의 가방에서 콜라 캔을 본 것은 마치 교회 목사의 가방에서 소주병을 본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콜라가 건강에 유익하지 않다는 것은 어지간히 상식이 있으면 다 아는 사실인데, 건강 운운하면서 채식을 하는 이가, 콜라를 마셔? 그뿐 만이 아니었다. 낙타는 라면도 무쟈게 먹고, 아이스크림도 엄청 먹었다.

    한번은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사러 종로에 있는 다이소에 간 적이 있는데, 낙타는 다이소 옆의 롯데리아에서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콘을 사먹자고 했다. 거기서 낙타는 그걸 다섯 개 먹었다. 앉은 자리에서. 쇼킹했다.

    몸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하기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이 유지방 덩어리를 앉은 자리에서 다섯 개나 먹는 말함과 행함의 불일치가 놀라웠다. 그리고 그 무절제함도 놀라웠다. 그렇게 한꺼번에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나 처먹더니 집에 와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헝가리안 무곡을 연주했다. 이런 꼴을 반년정도 더 봤다.

    그러다 어느 여름, 숙대 근처의 헌책방 ‘토리’에 들렀는데 거기서 ‘도살장’이라는 책을 샀다. 미국 축산업의 실상을 고발한 이 책을 읽고는 아이스크림을 끊었다. 젖소 형제들의 고통의 산물을 먹을 수 없다며… 그래도 몇 년째 아이스크림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을 보면, 학습효과라도 있어 참 다행이다.

    하지만, 콜라와 라면은 여전하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걸 왜 그리 먹느냐 물으면, 어떻게 좋지 않은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란다. 자신이 먹는 라면은 채식라면이라서 동물성이 하나도 안 들었다고 했다. 콜라도 동물성 제로이니까 채식라이프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콜라

    눈 가리고 아옹을 하지. 콜라와 라면이 건강에 해로운 것은 상식이다. 상식. 그런데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구?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니, 건강에 해롭다는 명제는 기각된다?

    유니버설, 보편적, 상식적인, 대다수의 사람이 공감하고, 널리 퍼진 지식을 내가 뭿~하러 증명을 해야 하지? 이미 자신의 논리가 그른 것을 알면서도 궁색하게 라면과 콜라는 동물성이 아니니 괜찮다며 먹는 사람한테? 라면이 백밀 가루로 만들어진 것과 콜라가 설탕농도 진한 물이라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명백한데 동물성이 아니니 괜찮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충돌이 국회의원 수준이다. 그럼 화학색소와 감미료로 맛을 낸 불량식품들도 동물성이 아니니까 애기한테 먹여도 되겠네? 동물성 아니니까?

    나는 낙타의 이런 모순과 어불성설과 말함과 행함의 불일치가 실망스러웠다. 채식은 건강 때문만이 아니라 채식이 담고 있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은 그 정신을 삶 속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실망스럽다.

    이것은 비단 콜라와 라면을 먹고 안 먹느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말이 아닌, 그의 삶 구석구석, 사소하고 작은 선택과 행동에 그가 말하는 채식의 정신이 담겨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채식에 대해 갖는 양가감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되었다. 채식이 건강에 좋은 것이라서 실천하고 싶으면서도, 말함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는 낙타의 모순을 보면 채식에게까지 짜증이 나는 것이다. 꺼뎌~ 채식! 나보고 채식이 어째 어째서 좋고, 이러 이러니 채식을 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지만,

    나는 낙타의 말함과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낙타의 행함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낙타의 말함만을 듣고, 놀라워하고, 배우려 할지 모르지만, 나는 낙타의 행함까지 본다. 그리고 그 행함이 얼마나 논리의 모순으로 가득한지, 채식의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본다.

    낙타, 내 이 지면을 빌어 당신의 꼴값하는 채식라이프에 관해 한 마디 하고자 하오. 당신의 채식은 반쪽짜리요. 당신은 풀만 먹을 줄 알지, 그 풀 먹음이 담고 있는 정신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당신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당신이 결혼해달라고 매달리고 매달려 결혼해준 내가 말하노니, 나는 당신의 채식생활의 진정성을 측정하는 잠수함토끼와 같은 존재요. 당신은 나를 미친 토끼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당신의 채식은 말함만 있을 뿐 행함은 없는 공허한 것이요.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삶 구석구석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꿰뚫어 알기 때문이요.

    혹시 노여우시오? 그렇다면 그것은 아직 낙타 그대의 심보가 將驕者(장교자) 즉, 교만한 자라는 증거이니 산 속으로 가서 쑥과 마늘을 100일 간 먹고 사람이 되어, 걍 고기먹으며 행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오.

    필자소개
    ‘홍이네’는 용산구 효창동에 사는 동네 흔한 아줌마다. 남편과 함께 15개월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직장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느라 집안은 늘 뒤죽박죽이다. 몸에 맞지 않는 자본주의식 생활양식에 맞추며 살고는 있지만, 평화로운 삶, 화해하는 사회가 언젠가 올거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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