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2006년 03월 24일 03:0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민주노동당에게 울산은 ‘아주 특별한’ 도시다. 울산은 현대 자동차와 중공업 등 대공장이 밀집해 있는 ‘노동자의 도시’고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진보정치 1번지’다.

    민주노동당은 창당전인 1998년 지방선거 때 당시 국민승리21의 이름으로 울산에서 두 명의 구청장을 당선시켰다. 2002년 울산시장 선거에서는 접전 끝에 분패했지만 역시 두 명의 구청장을 당선시켰다. 2004년 총선에서는 조승수 전 북구청장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조승수 의원이 의원자격을 상실하고 이어서 열린 보궐선거에서도 패배하면서 더 이상 울산은 민주노동당의 아성이 아니다. 다가오는 5.31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울산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합원 총투표로 시장후보선출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지난 22일 조합원총투표 방식의 후보 경선 일정을 확정했다. 형식상으로는 울산본부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에 추천할 후보를 결정하는 선거지만 민주노동당은 추천된 후보 1명에 대해 찬반투표만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후보경선인 셈이다.

    후보등록은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며 투표는 지역 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조합원을 대상으로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다. 투표 참가 조합원수는 4만5천명으로 예상되며 이는 올해 초 있었던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 때 선거권을 가졌던 당원수와 맞먹는다.

    울산본부는 지난 해 울산북구 보궐선거 후보선출을 위한 당내경선 때도 지역 조합원 총투표 방식을 제안했지만 당중심성 훼손과 당원의 선출권의 규정한 당규 위반 등을 이유로 무산 된 적이 있다.

    올해 초 울산본부가 시장 후보 선출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을 때도 같은 이유의 반대가 나왔지만 울산시당은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사실상의 예비선거인 조합원 총투표를 수용했다.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의 모습을 보면 보궐선거 패배 후 달라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김창현, 노옥희 후보 출마

    이번 조합원 총투표에는 김창현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과 노옥희 전 울산시교육위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김창현 후보는 지난 2월 27일 울산시의회에서 출마선언을 했다. 김 후보는 이날 “시장후보 경선과정에서 ‘역시 민주노동당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정치적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선거판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밝혔다.

    김창현 후보의 출마선언 이후 윤인섭 변호사와 정창윤 전 울산시당 위원장이 경선 참여를 검토했지만 노옥희 전 전교조 울산지부장 추대 움직임이 일자 여기에 참여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노옥희 후보는 현대공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86년 교육민주화선언으로 해직됐고 이후 지역노동상담소와 전교조 활동에 주력했다. 지난 2002년 교육위원에 당선됐고 이번에 경선에 참여하면서 사직했다. 울산지역 많은 노동운동가들과 사제지간이기도 하며 전교조를 넘어 지역 노동운동 전반에 교류가 두터운 편이다.

    ▲ 누가 민주노동당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을 적임자인가. 울산시장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 노옥희 후보(왼쪽)와 김창현 후보(오른쪽)
     

    이들이 중심이 되서 노 후보를 추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를 추대한 진영은 이번 울산시장 선거만이 아니라 이후 울산 지역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의 상징적인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노 후보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평등울산’을 기치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 자리에는 조승수 전 의원, 윤인섭 변호사, 정창윤 전 시당위원장이 함께 했다.

    현재로서는 제3의 후보가 등록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경선은 얼마만큼 흥행할까

    조합원총투표는 4월 19일 마무리된다. 그러나 총투표에서 1위를 한 후보가 자동적으로 울산시장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울산시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찬반투표 과정을 거쳐야한다. 이 일정은 현재 미정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울산시장후보가 공식 확정되는 것은 빨라야 4월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5월 16일부터 지방선거후보접수가 시작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민주노동당의 울산시장후보가 예비후보로 등록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한달도 채 안된다. 최대 경쟁상대인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는 현직 시장의 프리미엄을 안고 지역을 돌고 있다. 다른 정당의 후보들도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해 표밭을 다지고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로 활동을 시작해도 늦은데 앞으로 한달 가까운 시간을 조합원총투표라는 진보진영 내부의 경선에 소비해야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예비주자들은 조합원총투표를 치르면서도 과연 울산시민들의 눈길을 모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울산시당은 ‘조합원총투표가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노동자와 시민의 관심을 대폭 끌어올릴 기회’라고 답했다.

    경선을 통해 경쟁력을 만든다

    울산시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후보등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울산MBC가 4월 2일 후보토론회를 확정했다. 지역방송인 UBC도 곧 토론회 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지역에 있는 대공장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울산의 특성상 지역신문들도 경선을 둘러싼 대공장 노동조합의 흐름에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울산시당은 경선 과정에 쏟아지는 관심도 관심이지만 토론회 등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주장이 여과 없이 시민들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에 더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조합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후보들이 현장유세에 힘을 쏟는다면 민주노동당에 대해 차가워진 현장의 분위기도 반전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선거관리 책임을 맡은 울산본부의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투표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울산시당 내부 경선의 경우 투표권을 가지는 당원은 3천명정도에 불과한데 비해 조합원 총투표의 경우 4만5천명가량이 참가한다. 4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지방선거 전에 후보에 대한 정보를 얻고 예비선거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것이 울산본부의 시각이다.

    경선 후유증, 괜찮을까?

    그러나 이런 긍정적 효과는 경선이 후유증 없이 끝났을 때만 가능하다.

    울산시당은 지난 2002년 총선의 악몽을 가지고 있다. 경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부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선거에 임한 민주노동당의 최용구 울산북구 후보는 500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를 놓고 당 안팎에서는 경선 후유증으로 인해 다 잡은 선거를 놓쳤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울산시장 후보 선출 방식을 놓고 울산시당과 울산본부가 줄다리기 싸움을 했다. 당시에는 울산시당과 울산본부의 합동총회라는 형식으로 시장 후보를 선출했다.

    이번 경선도 과거와 같은 갈등과 반목이 재현되고 또 이것이 그대로 조합원과 시민들에게 노출된다면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실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민주노동당은 당내 선거를 거치면서 정파갈등이 풀리지 않은 채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다. 이번 울산시장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범자민통진영과 범좌파진영의 갈등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경선 시작 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이미 일부 지역 언론은 김창현 전총장과 노옥희 전교육위원의 대결을 ‘자주파와 평등파의 대립 구도’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응순 울산시당 정책위원장은 한마디로 “저질보도”라며 시장후보 경선을 정파간 대결로 바라보는 시각을 차단했다. 이 위원장은 “두 후보 모두 울산시정에 대한 자신의 비전과 진보정치에 대한 방향을 대중에게 제시하기 위해 출마한 것이지, 누구는 어느 파고 누구는 어디 출신이고 하는 식으로 이번 경선을 바라보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산별전환의 걸림돌?

    경선 후유증에 대한 우려는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초 울산본부가 조합원총투표 방식을 고민할 때 일부 활동가들은 경선을 통한 정파 갈등의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특히 경선후유증이 현장으로까지 확산될 경우 자칫 6월로 예정된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전환 투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조합원 총투표가 오히려 산별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다’는 박유기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의 판단으로 일단락 됐다. 후유증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경선이 조합원들의 의식을 한단계 끌어 올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경선을 후유증 없이 이끌어 갈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울산시장 선거에서 넘어야 할 첫 번째 고개다.

    누가 후보가 될까?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누가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가 될 것 인가다.

    아직 후보등록조차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한 달 뒤의 선거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누가 되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전망이다.

    현재는 김창현 후보의 우세를 점치는 시각이 많다. 일찌감치 당내경선 출마선언을 했고 무엇보다 동구청장 당선 경험과 국회의원 후보, 민주노동당 첫 직선 사무총장이라는 활동을 통해 쌓은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노옥희 후보는 80년대 초반부터 한결같이 울산지역 노동운동에 투신한 경력이 최대의 강점이다. 현재 울산지역 노동운동을 지도하는 간부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노 후보와 인연이 있다. 유세과정에서는 2002년 이후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쌓은 행정경험을 적극 홍보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최대의 변수는 조합원총투표라는 새로운 선출 방식이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여부다. 애초에 울산본부가 울산시당과 출마예상자들에게 조합원총투표 방식을 제안 했을 때 김창현 후보 측은 윤인섭 변호사와의 대결을 예상하고 이를 수용했다. 지역 명망은 높지만 현장기반이 약한 윤인섭 변호사와의 경선이라면 조합원 총투표 방식이 김창현 후보에게 불리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진보’의 수권능력을 보여줘야

    그러나 이후 노옥희 후보의 출마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김창현 후보 측이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동운동에 대한 영향력이 큰 노옥희 후보와 조합원 총투표라는 방식으로 맞붙을 경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양 후보 모두 십여개의 현장조직이 난립하는 울산 지역 대공장의 세력구도를 놓고 볼 때 조합원 총투표 방식이 어느 한쪽에만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대공장 현장조직의 조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보다 조합원 개개인의 표심을 잡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결국 조직력에 기댄 안이한 선거운동보다 조합원과 당원, 시민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수권능력을 보여주는 운동을 펼치는 후보가 경선의 내용이나 결과 모든 면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라는 게 울산 지역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