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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

흐르는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
- 송경동
흐르는 것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
어떤 이는 그를 탁류라 하고
어떤 이는 그를 한때의 격랑일 뿐이라 하며
또 어떤 이는 회오의 눈물
굴절과 비통의 소용돌이라고도 하겠...

풀따기
- 김소월(金素月)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

눈
-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

벗의 노래
- 정연복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하나의 우산 속에
다정히 밀...

별
-남경림
네가 반짝이는 것은
어둠과 함께 머무르기 때문이다
너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캄캄한 밤에 가장 빛난다
네 가슴의 별은
별 숲을 사각사각 거닐며
주운 별빛을 나누는 너의 지혜
네가 이토록 아름...

완화삼(玩花衫) - 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七百里(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얼굴
- 박인희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