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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

밤 눈
-기형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

가을날/ 문태준
아침에 단풍을 마주 보고 저녁에 낙엽을 줍네
오늘은 백옥세탁소에 들려 맡겨둔 와이셔츠를 찾아온 일 밖에 한 일이 없네
그러는 틈에 나무도 하늘도 바뀌었네
정말 단풍철은 짧은 것 같습니다...

prologue: 이 글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던 9월 초에 원고를 넘길 계획으로 쓰던 글입니다. 일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원고를 넘깁니다. 지금이 초고를 썼던 계절인 9월 초라고 여기시고 읽어 주...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김현승의 「가을」 중
시인은 자연의 숨결에 자신의 숨결을 기대고 사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 김종삼, 「비 개인 여름 아침」
이제 장마도 끝물입니다. 한두 번 장마전선이 오르내리면...

어제는 비가 매우 퍼붓더니
오늘은 비가 안 오신다
올해 장마는 지각생이다.
- 천상병의 「장마철」 중
이제 본격적으로 장마철입니다. 장마라고 비가 매일 오는 건 아니죠.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오기도 ...

옛 사람들은 단오(端午)를 여름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이니 양력으로 하면 5월 말 또는 6월 초입니다. 이 시절은 저처럼 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환호작약했던 온갖 꽃들이 지고 난...

새로 최경순씨의 「풀소리의 한시산책」 연재를 시작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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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한시 번역을 한다는 건 조금 무모한 감이 있습니다. 고전 번역 작업에 공역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