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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탄막장을 시설하고 운영하는 데는 어느 광산에서 어떠한 지질조건 아래에서 어떠한 경험을 쌓았는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기술상의 견해와 운영철학을 가지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광산은 지층의 계곡에 탄층을...
부산에 내려온 김에 며칠을 고향 동삼동에서 지내기로 하고 누님댁에 거처를 정했다. 하루는 옛 마을을 그리면서 길을 걷고 있는데 “정의 형님 아임니꺼?” 하는 굵직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내가 돌아보니까 얼굴에 살...
88올림픽을 몇 주 앞둔 한국은 자유로웠다. 어디에서나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고 작년과 같은 감시도 없었다. 올림픽이 한국에 가져다주는 제일 큰 선물의 포장지를 나는 만지는 것 같았다.
명동의 다방에서 &l...
1988년 7월 어머님의 제삿날에 나는 한국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말을 들은 코리나가 자기도 방학이니 함께 가겠다고 했다. 딸이 나와 함께 아버지의 조국에 가고 싶다고 하니 나는 기뻤다. 그러나 딸을 한국으로 데리...
1987년. 어머님이 귀국하신지 칠 년째 되는 해였다. 서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내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아마 돌아가실 것 같다고 하면서 내가 귀국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언제고 이러한 ...
박정희와 전두환
1977년 말에 민건회가 민주운동의 세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한민련에 가입할 계획을 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반독재운동을 하던 나는 민건회가 한민련에 가입해서 어떤 사상이나 특정 노선을 따르는 ...
아무리 내가 상하로부터 잘 한다는 인정을 받고 내가 맡은 직무를 상관이 만족할 정도로 처리해내어도 내가 일하는 곳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는 한국이 아니고 3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련 포로...
처음에 내가 베를린 공과대학교로 갈 때는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광산계통이나 학교에서 일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민주운동에 나서면서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정부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된 후에는 귀국할 생각을 ...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1월 21일 비상계엄령 아래에서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시행하여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을 제정한 후 민주주의를 짓밟고 무력으로서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영구집권의 야망을 노골화하는 도저히...
10월 초순에 베를린으로 갔다. 우선 혼자 가서 거기에서 집을 구하는 대로 아내와 딸이 따라오기로 결정했다. 아는 사람들의 주선으로 우선 간호원 기숙사에서 살다가 다음 달에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집을 구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