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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비아오, 바이충시의 부대를 끝까지 추격하다
린비아오에게 복수의 기회가 왔다. 절치부심한 린비아오는 담가에 누운 채 전투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린비아오의 4야전군은 우한에서 하이난까지 바이충시 부대를 따라 천리...

국군, 진먼다오 고수를 결심하다
진먼다오는 푸젠성 제2도시 샤먼과 붙어있는 섬이다. 샤먼에서 진만다오, 그리고 타이완의 중앙부에 있는 도시 타이중까지 직선상에 놓여 있다. 샤먼과 진먼다오의 거리는 10여킬로미터...

1949년 10월 1일 오후 2시, 신중국 설립을 위한 중앙 인민정부위원회 1차 회의가 열렸다. 베이징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 인민정부 성립을 결의했으며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을 정부 시정강...

펑더화이는 인민해방군 부총사령이다. 주더가 총사령이었지만 화북의 스자좡 전투를 제외하면 전투를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다. 주요한 전략과 전술은 마오쩌둥이 수립했으며 병력 배치도 사실상 마오의 몫이었다. 주더는 해방군의...

마오쩌둥, 공격부대를 재배치하다
난징과 상하이 등 국민정부 심장부를 점령한 해방군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이제 창장 이북지역에 남아 있는 국군은 서북지역의 후쫑난 집단군과 초원 지역의 마부팡, 마홍쿠이 등 회...

국공내전의 네 단계
국공내전은 처음에 국군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시작되었다. 내전의 추이를 시기별로 나누면 대체로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부터 1946년 내전 발발 시기 전까지는...

인민해방군이 도강하여 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하자 국민정부 총통 대리인 리쫑런은 4월 23일난징에서 탈출하였다. 쑤위는 여러 부대의 보고를 듣고 지시하였다. “닌징의 적이 매우 혼란할 것이다. 남은 부대도 신속히 도강하...

평화회담이 결렬되자 마오쩌둥과 주더는 즉각 도강명령을 하달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명령을 기다리던 인민해방군 100만 대군이 한꺼번에 출격했다.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해방군의 기세에 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는 국...

공산당, 공식회담과 비공식 접촉을 병행
1949년 4월 1일, 난징정부 회담대표인 장즈중(張治中), 샤오리즈(邵力子), 장스자오(章士釗), 황샤오홍(黄紹竑), 리정(李蒸), 류페이(劉斐) 일행이 베이핑으로 떠났...

시바이포의 마지막 중앙위원회
1949년 3월 5일, 공산당은 허베이성 핑산현 시바이포에서 7차 2회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3월 13일까지 계속되었는데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 34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