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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일, 국군의 각 초비사령부 지휘관들과 각 수정공서의 책임자들, 각 군의 군단장과 참모장들이 난징에 속속 도착했다. ‘감란 검토회(戡亂檢討會)’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감란’이란 반란평정을 뜻하니 ...
중원의 요충지인 상양을 잃은 뒤 국민당 정부 치하의 사회와 경제는 더욱 어지러워졌다. 1948년 7월 5일 새벽, 화북의 중심도시 베이핑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국군 소속 청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
1948년 3월 중순, 마오쩌둥은 섬북을 떠나 시바이포로 이동했다. 시바이포는 허베이성 핑산현(平山縣)에 있는 작은 마을로 지금은 스자좡시에 속해 있다. 시바이포는 스자좡시 중심에서 9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삼면이...
펑더화이가 지휘하는 서북 야전군이 이촨, 와쯔지에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후쫑난 휘하의 국군 부대들은 더욱 위축되었다. 불과 일년 전 후쫑난이 30만 대군으로 호호탕탕하게 옌안을 점령한 뒤 국군은 서북에서 패전을 ...
국민정부가 헌법에 따라 총통을 선출하는 등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자 군수물자 지원이 재개되었다. 미국은 부총통 선거에서 리쫑런을 은밀히 지원하였다. 리쫑런이 예상을 뒤엎고 장제스쪽 후보인 쑨커에게 승리한 것은 미국의 ...
뤄양은 옛날 동한의 수도이며 중국 6대 왕조의 수도이다. 삼국지의 주요 무대 중 한 곳으로 중원 지역의 전략적 요지이다. 뤄양은 황허를 끼고 있으며 동쪽에 위치한 허난성 성도 정저우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서쪽으로...
1948년 원단, 내전 3년째 첫날이 밝았다. 일년 전 국군은 린비아오의 동북 민주연군을 흑룡강 너머까지 쫓아 버리며 기세를 올렸다. 중원에서도 리센녠의 해방군을 산지사방으로 쫓아버렸고 산둥에서도 해방구 수도인 린이...
공산당이 적극 공세로 돌아선 뒤 동북과 중원에서 국민정부는 점점 수세로 몰렸다. 스자좡까지 잃게 되자 난징의 장제스는 점점 초조해졌다. 1947년 11월 18일 국민정부 행정원은 회의를 열어 ’장쑤, 저장, 안후이,...
[국공내전 ㉙] 해방군, 스자좡을 점령하다
해방군 따볘산 포위공격을 분쇄하다
화북에서 네룽전의 부대가 장자커우를 함락한데 이어 중원과 동북에서도 해방군의 공세가 이어졌다. 1947년 7월부터 10월가지 인...
국공내전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2019년 6월, 건강 문제로 중단되었던 국공내전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오랜 기간 글을 쓰지 못해 집필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만 다시 중단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