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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공격부대를 재배치하다
난징과 상하이 등 국민정부 심장부를 점령한 해방군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이제 창장 이북지역에 남아 있는 국군은 서북지역의 후쫑난 집단군과 초원 지역의 마부팡, 마홍쿠이 등 회...
국공내전의 네 단계
국공내전은 처음에 국군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시작되었다. 내전의 추이를 시기별로 나누면 대체로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부터 1946년 내전 발발 시기 전까지는...
인민해방군이 도강하여 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하자 국민정부 총통 대리인 리쫑런은 4월 23일난징에서 탈출하였다. 쑤위는 여러 부대의 보고를 듣고 지시하였다. “닌징의 적이 매우 혼란할 것이다. 남은 부대도 신속히 도강하...
평화회담이 결렬되자 마오쩌둥과 주더는 즉각 도강명령을 하달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명령을 기다리던 인민해방군 100만 대군이 한꺼번에 출격했다.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해방군의 기세에 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는 국...
공산당, 공식회담과 비공식 접촉을 병행
1949년 4월 1일, 난징정부 회담대표인 장즈중(張治中), 샤오리즈(邵力子), 장스자오(章士釗), 황샤오홍(黄紹竑), 리정(李蒸), 류페이(劉斐) 일행이 베이핑으로 떠났...
시바이포의 마지막 중앙위원회
1949년 3월 5일, 공산당은 허베이성 핑산현 시바이포에서 7차 2회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3월 13일까지 계속되었는데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 34명의...
리쫑런, 국공 간 평화회담을 제안하다
1949년 1월 21일, 핑진전역이 끝나고 베이핑이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갈 때 장제스는 국민정부 총통직을 내려 놓았다. 그의 실제 거취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어쨌든 국...
화이하이 전역과 핑진전역에서 잇따라 패배하여 장제스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양쪽 전장에서 백만명이 넘는 병력을 한꺼번에 잃은 것이다. 화이하이 전역에서는 자신의 직계 정예 병력을 거의 잃었다. 중일전쟁과 내전에서 용...
해방군, 베이핑 약법 8장을 발표하다
사람의 마음은 한번 기울면 되돌리기 힘들다. 장제스는 동북에서 웨이리황을 압박하여 선양의 주력을 진저우로 철수시키려고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베이핑에서는 푸쭤이가 장제스...
핑진전역은 베이핑과 텐진을 중심으로 화북지역에서 벌어졌다. 중국에서는 이 결전을 핑진전역이라고 하지만 타이완에서는 ‘핑진결전’이라고 부른다. 핑진이란 베이핑과 텐진을 말하므로 랴오선전역이나 화이하이전역에 비해 이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