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카테고리
| 작성자
[국공내전㉗] '쉬스유, 주먹으로 마오쩌둥을 치다' 일화의 배경은?
장제스 천청을 동북에 보내다.
1947년 8월, 장제스는 참모총장인 천청을 동북행원 주임으로 파견하였다. 천청은 장제스의 심복 중에서 첫...
[국공내전 ㉖] 전략적 반격과 토지개혁
1947년 하반기에 공산당은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서며 전쟁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천겅과 세푸즈의 집단군은 8월에 황허를 건너 룽하이 철도를 차단한데 이어 10월에...
[국공내전㉕] 섬북의 싸움, 전환점 넘다
내전이 발발한 지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일방적으로 밀리던 공산당은 어느새 전세를 만회하여 팽팽한 대치상태를 만들어 내었다. 1947년 7월이 되자 공산당은 섬북, 산...
[국공내전㉔] 해방군 중원으로 출격하다
펑더화이, 위린(榆林)을 공격하다
한편 해방군 서북야전군 사령원인 펑더화이는 3개 종대와 1개 교도여단 병력으로 섬서성 북부의 요지 위린을 공격했다. 류덩 부대에 대...
[국공내전㉓] 경천동지의 반격 계획을 모색하다
마오쩌둥이 해방군의 중원 출격을 결심할 때, 그는 후쫑난 부대의 추격에 계속 쫓기고 있었다. 저우언라이, 런비스와 함께 섬북의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내일이 없는 생...
[국공내전㉒] 동북민주연군의 하계 공세와 '상승장군' 린비아오
만주에서 린비아오가 한참 쓰핑을 공격할 때 마오쩌둥은 장제스가 놀라 자빠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오는 그때 후쫑난 휘하부대의 추격을 비해 섬북을...
[국공내전㉑] 천이와 쑤위 대군, 산둥성 멍량구 결전 승리
불운한 두위밍
동북의 전황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있었다. 국군의 동북사령관 두위밍은 쓰핑전투 승리 후 남만주 석권을 노렸으나 신카이링에서 패배하였다...
앞 회의 글 [국공내전⑳] 해방군, 반격의 기틀 마련
장링푸는 황푸군관학교 4기 졸업생이다. 그는 본래 베이징대학에 입학했다가 학비가 없어 중퇴하고 황푸에 입교했다. 장링푸는 젊어서 부인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
앞 회의 글 [국공내전⑲] 마오쩌둥, 섬북을 전전하다
장기전, 장제스의 예상을 벗어나다
내전에 폭발한 지 1년 가까이 지났다. 장제스와 국군 통수부 수뇌부는 3개월이면 비적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했지만 전...
앞 회의 글 [국공내전⑱] 국민군 후쫑난, 홍색수도 옌안 점령하다
1947년 3월 18일 저녁, 국민당군이 옌안을 공격하는 포성과 총성이 똑똑히 들려왔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는 10년 동안 살던 옌안을 한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