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지’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기획사, 연예부 기자들, 대중들...우리 모두가 선무당들
        2012년 08월 01일 0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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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디앙 독자 윤광은씨가 최근 연예뉴스의 핫 이슈인 걸그룹 티아라 사태와 관련한 평론 글을 보내왔다. 이미 한류, 걸그룹, 아이돌이라는 언어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드러내주는 우리 사회 속살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속살을 보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 그 화두를 던지는 글이다. 걸그룹에 환호하는 이들도, 무심한 이들도 생각해야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핫한 얼굴이고 속살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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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알고 있으니, 들머리는 잘라내겠다. 걸 그룹 티아라 말이다. 이 또래 여자 아이들의 내밀한 뒷담화가 공개되더니, 때 아닌 ‘의지’론이 기사 댓글과 sns를 휩쓸었다.

    굳이 리와인드를 해보자. 몇일 전 일본 단독 콘서트에서 한 멤버가 다리 부상으로 일종의 ‘태업(?)’을 했다. 이에 다른 멤버들이 일제히 트위터를 통해 ‘의지의 부족’이라며 은근슬쩍 조리돌림을 한 것.

    현장을 목격한 누리꾼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의지’라는 말을 온갖 패러디에 등장시켰다. 과거부터 벌어진 이지메의 혐의를 찾기 위해 활동 영상을 총동원하며 지분거렸다.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새 같은 연예부 기자들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음은 물론이다. 주말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의지’의 왕국이었다. 소속사의 일차적 해명. 해킹일지 모른단다. 30일엔 중대 발표까지 예고했다.

    누리꾼들이 이런 황당한 해명을 믿어줄리 없다. 그저 술상에 오름직한 씹기 좋은 건어물이었다. 이를테면 큰 건물에 난 대형화재를 소화액이 아닌 물로 진화하려 든 것이다. 과연 30일엔 어떤 중대한 발표가 있을까.

    아이돌.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를 아우르는 주체

    트위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정보와 생각의 아고라지만, 동시에 허세의 외딴 섬, 혹은 배설의 광장이기도 하다.

    트위터는 관계의 경매장이다.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과 사생활을 진열하고, 동시에 타인의 것을 관람한다. 구매와 반품. 온라인 쇼핑몰처럼 클릭 한번에 팔로우와 언팔. 쉼 없이 쓸려 내려가는 타임라인의 격류 속에 감성과 허세의 수사로 자신을 광고한다.

    이렇듯 트위터는 내밀함과 공중성이 합류하는 나들목이다. 아이돌들의 팔로워 숫자는 보통 십만을 가볍게 넘어선다. 장삼이사들이야 고작 몇 백의 팔로워에 목을 멘다지만, 거대한 발언권을 거머쥔 이 어린 스타 들은 대체 무슨 재미로 트위터를 하는 걸까. 수십만이 고개를 들이미는 유리 상자 속에서 뻘쭘히 움직여야 할 텐데. 개드립도 못 날리고, 술 취해 뻘소리도 못하고, 정치성은 드러내면 안 되고, 자칫 허세 한번 떨었다간 제2의 허세근석이 될지 모른다.

    자신이 쇼의 주인공이란 걸 알고 있는 트루먼은 그 세계를 탈출하려는 ‘의지’ 이전에 신경쇠약에 걸려 쓰러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자기를 의식하며 가면을 써야한다. 사적인 매체에 오롯한 목적의식을 투영해야 하는 것.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트위터가 인생의 낭비라지만, 사람은 누구나 식사를 하면 화장실에 가야한다. 배설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왕따라는 불우한 어휘는 연예계가 아닌 생활 세계의 언어다. 나는 이 ‘의지’의 주창자들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핏대 세워 조롱하고 싶지도 않다. 티아라 멤버들이 대중에게 공개된 곳에서 경솔하게 처신했다는 평자들의 비판도 뜨인다.

    이런 얘기는 대개 연예인의 도덕적 책무를 전제하고 있다. 따돌림과 폭력이 학원을 점거한 현실에서, 청소년들의 꿈과 사랑을 먹고 사는 아이돌이 최악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 마땅한 후속조치는 ‘해체’가 되어야 한단다. 이런 얘기는 아주 원론적인 가치판단의 빨랫줄에 걸려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나이브하고 과도한 인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대중에게 연예인들은, 특히 아이돌들은 우상이라기보다 상품이다. 그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개념돌이란 작위를 수여하지만, 한순간 밉상으로 천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걸 그룹 팬들의 감흥은 ‘꿀벅지’나 ‘폭풍 애교’, 혹은 ‘성형’여부에 있지 도타운 우애는 옵션일 뿐이다. 10대들이라고 다를까. 그건 애들을 너무 바보로 보는 거다.

    연예계가 여의도에 있다지만, 현실과 전혀 다른 이계는 아니다. 그 곳에 드리운 어두움의 종자는 대개 키 차이는 있지만 일상에도 뿌리내린 것이다. 당장 같은 반 옆자리에 왕따가 존재하는데, 걸그룹 멤버들의 트윗 몇 번으로 아이들이 삐뚤어질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이런 종류의 인식은 “술이야”를 청소년 유해가요로 선정하는 것과 엇비슷한 발상이다. 상징계의 ‘학교’내에 폭력과 따돌림이 만연한 것은 걸그룹 멤버들의 사생활이 아닌 현실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강퍅한 입시천국과 사교육비를 대기도 근근한 부모들이 맞벌이로 나서야 하는 구조를 만든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떤 학교의 어떤 학급에서도, 심지어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은따나 왕따는 근치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다. 실제 그룹 내에서 따돌림이 있어 불거졌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다. 티아라 측에서 성의 있는 해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병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왜 우리는 노래하고 춤추는 게 업인 소녀들에게 우리가 만든 난장을 수습하라 퇴출까지 요구하는가. 이것은 비례의 원칙을 넘어선 과도한 판결이다.

    2012년의 대한민국은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난삽하게 부둥켜 있는 시공이다. 가부장적인 위계질서, 합리와 정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 널 부러진 탈근대적 징후들이 한 솥에 고아져 있다.

    이런 혼종은 가장 근대적인 영역인 ‘정치’와 가장 탈근대적인 범주인 엔터테이먼트의 위상을 종종 도치시켜 버린다. 특정 정치인이나 팟 캐스트 방송의 ‘팬덤’이 정치로 진입하는 입구가 된다. 반대로 대중은 연예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가치판단하며 민중의 심판을 구현하려 든다.

    미성년자 시절 올렸던 경솔한 쪽글 하나로, 멀쩡히 활동하다 추방당한 아이돌 멤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땅, 한국. 정치는 예능이 될 때 온전히 존재감을 찾고 예능은 정치적 정의감을 호출한다. 우리는 정작 그러면서도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는 구설수에 오르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들이다.

    “안녕하세요. ㅇㅇㅇ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방송국을 메우는 아이돌들의 우렁찬 단체 인사는 근대와 탈근대가 동침하는 러브모텔에 전근대의 지붕을 씌운다. 이런 서로 다른 차원의 중첩 속에 아이돌들은 모든 시대적 가치를 체현 할 재능을 요구받는다.

    전근대적 예의범절과 상명하복, 근대적 윤리의 투철한 준수, 탈근대적 예능감과 자유분방함. 그들은 PD와 기획사 사장님이란 대타자에게 복종해야 하고, 프라이버시 위에 깔린 모범시민의 살얼음을 디뎌야 한다. 한편으론 삼촌들의 정념을 유발하기 위해 매끈한 각선미를 연마하는 것도 필수다.

    연예부 기자들은 무성한 밀림 속에 포복한 채 사진기를 겨누고 있다. 연예인들이 이 세가지 계율에서 하나라도 이탈하는 순간을 밀렵해 대중에게 삐라를 뿌려댄다. 스포츠신문 방담 코너에 등장하는 L양이니, O양이니. 어떤 여자 스타의 다리가 몇 개로 변태하는지, 사실은 인간이 아닌 꼬리달린 구미호였다든지. 좀 뜨더니 아래위도 없다느니, 누구와 누구가 싸웠고, 법규를 위반했느니. 행여나, 아랫배가 불었다 싶으면 자기관리에 소홀하다는 딱지도 발행한다.

    이들은 케이블 토크쇼에 출연해 어떤 걸그룹의 막내가 언니를 왕따시키는 무서운 아이란 괴담을 흘리며, 타인의 사생활을 거래하는 족속들이다.

    이 연예부 ‘기자’들이 대중의 돌팔매가 소용돌이치는 대목을 놓칠 리가 없다. “눈 찌르고 우산 박살, 까도 까도 나오는 집단 괴롭힘 정황들”. “티아라 보람, 급기야 화영 언팔”. 즉자적이고 반사적인 대중의 분노에 물길을 대 굶주린 조회수를 채운다.

    심지어 어떤 연예부 ‘기자’는 “어린게 영악”하다느니, “피해자 마케팅”이라느니, 자신이 보증할 수도, 입증할 수도 없는 떡밥을 sns에서 흘려댔다. 군중의 거대한 일렁임은 자극적인 표제와 교호하며 ‘의지’의 해일을 몰고 왔다.

    ‘의지’는 어떻게 공중을 장악했는가.

    사건의 사실관계로 돌아가보면, 최초의 시작은 단 몇 개의 트윗이었다. 이 짧게 조직된 낱말들로 짐작할 수 있는 건, 이번 일본 콘서트에서 멤버들 사이에 무언가 다툼이 있었다는 것. 일 대 다수의 마찰이란 건 분명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이것이 ‘현재’의 다툼이라는 거다. 그로부터 ‘과거’를 유추하려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활동영상과 상상력을 직조해야 한다.

    누리꾼들은 온갖 종류의 영상을 꿰어 시나리오를 저술하고 있다. 누구만 멀리 떨어져 있는 시퀀스라던가, 슬몃 눈을 찌르며 박해하는 인서트는 내러티브 전개를 위한 필수다. 물론 개중엔 분명 소외와 집단 가해의 잔해가 감지되는 자료들도 어느 정도 있다.

    지금 거리를 배회하는 ‘왕따’의 목격담은 분명 토대가 있긴 할 것이란 게 내 추측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분노는 타당한 측면도 있다. ‘따돌림’이란 범죄가 모두에게 노출된 연예계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정황은 개탄스러울만 하다.

    문제는 상상력이 팩트를 압도하는 경향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눈 씻고 봐도, 사태와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영상들이 마구잡이로 전시되어, 장탄식을 소환한다.

    작년 11월경 ‘아이돌 그룹의 새 멤버’라고 자칭한 이가 올린 판춘문예. 이 캡쳐의 잔상이 화영의 자기고백으로 맹렬한 확신을 얻고 있다. ‘우리 예쁜 동생 오빠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웃지 못 할 여동생 증후군도 목격된다. ‘티진요’라는 까페가 등장했단다. 한번 들어가 봤다.

    나는 이곳이 진실을 요구하는 곳인지, 증오를 착출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악플과 조롱이 스모그처럼 LCD화면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차피 대중에게 어두운 이면이 노출된 이상, 비판과 비난은 조물주라도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사건과 아무 관련 없는 과거 행적을 털어 입에서 입으로 질겅대고, 이들이 성괴임을 입증 하는 게 따돌림의 해결에 어떤 기여를 할까. 화영이란 소녀에게는 또 어떤 위로가 될까?

    내가 볼 때 이 맹렬한 공격은 일종의 ‘역투사’다. 그들은 팩션의 서사를 구성해, 만찬을 벌이고 있다. 자신만은 일상에 창궐하는 ‘왕따’란 돌림병의 숙주가 아니란 듯, 집단제의를 통해 결백함을 확인받고 있다. 급기야는 일종의 ‘화형식’까지 등장한 상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과연 진실과 따뜻한 우정일까? 정말로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게 있다면, 왕따를 악플로 되갚지 않는 상식의 유지와 선을 넘지 않는 비판일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건, 말할 것도 없이 소속사의 잘못이 근원적이다. 명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건 당사자들의 설명이다. 김광수 대표는 30일, 그러니까 어제, 예고했듯이 중대 발표를 거행했다. 결론은 ‘화영’을 탈퇴시키겠다는 것. 헌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팀 내의 불화설과 왕따설은 사실무근이고, 멤버들은 말렸지만 화영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해 무대에 올랐다는 것. 그럼 대체 왜 탈퇴를 시켜야 한다는 말인가?

    사실 이 중대발표는 맥락이 중구난방이라 파악하기도 반박하기도 힘들다. 거기다 글의 꼬리쯤 등장하는 ‘한류’란 말은 참 부적절한 삽입 같다. 이건 재벌회장들의 언어다. 결국 전진, 후진을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도는 글의 결론을 애써 추스르면, 간신히 책임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티아라의 단체생활이란 누구 하나가 잘났고 누구 하나가 돌출행동을 하면 팀의 색깔이 변하고 구성원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 두 번째로 공개한 입장발표를 봐도, 기획사측은 전체의 팀워크를 깨트린 화영에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건 없이‘ 화영을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겠다고 한다.

    내막과 표면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화영과 멤버들을 분리시키는 것 이상의 해결책을 찾기는 힘들다. 화영의 입장에서도 예민한 사안이 이만큼 불거진 이상, 멤버들과 계속해서 얼굴을 맞대는 건 힘든 일일 게다. 만약 왕따설이 사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화영이 코어에 남는다고 해도, 이후 책임지고 보호하고 배려할 것이란 보증도 없다. 하지만 티아라가 대중의 인기로 살아간다는 걸 정말 알고 있었다면 최소한 이것보다는 설득력 있고, 도의적인 부연을 내놓아야 했다.

    발표 후 화영은 ’진실 없는 사실들‘이란 트윗을 남겼다. 이 모스 부호같은 발설에 대한 김광수 대표의 응답. “진짜 ’진실‘이 공개되길 원하는가. 제발 조용히 있으라.” 그 진실이 무언지는 물론 제3자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때 보살피던 20살짜리 가수의 행적을 맞 고발 하겠다 위협하는 것이 상식적인 언동인가. 결과적으로 티아라를 위한 일도, 화영 본인을 위한 일도 당연히 될 수 없다. 대중은 더욱더 거세게 연소했다. 그 결과가 ’티진요‘ 회원수 26만명이다.

    (김광수 대표는 대중의 요동이 도화선을 잠식해가자, 화영이 ’반성‘한다면 복귀시킬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화영에게 책임이 있다는 종전의 입장에선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는 화영이 김 대표를 찾아가 사과 했다는 기사까지 떴다. 화영이 소속사측의 입장발표 이후 남겼던 트윗과 현 상황을 나란히 일별하면, 전혀 자연스러운 전개가 아니다. 여론은 코웃음 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안타깝게도 티아라가 재기할 가능성도 불분명해 보인다.)

    지금 당장 의지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사실 누리꾼들 사이에 구전됐던 ‘의지’의 골계미는 이미 예고된 참사다. 지난 4월 김광수 대표는 연예인들의 ‘나태함’을 질타하며, 동료에게 피해가 되는 멤버는 과감히 퇴출시키리라 공언했다.

    다리가 부러지고 깁스를 해도 꼬박 꼬박 ‘의지’를 발휘해 쳇바퀴를 돌라. 이런 얘기일까. 모두가 고단한 길을 바지런히 행군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누군가의 열외는 증오의 대상이 된다.

    기획사는 연식이 오래된 멤버들 사이로 젊은 피를 수혈해 그녀들을 조급하게 만든다. 대중은 그들의 불화를 관음하고, 내키는 대로 포기한다. 하지만 티아라는 그들의 인생을 포기할 수 없다. 티아라가 데뷔한 이래, 대략 4명의 멤버가 모두 5번 응급실로 후송되거나, 사고를 당했다. 잠시간 불화설에 격추된 후에는 리더만 3번쯤 교체됐다. 티아라의 살인적인 스케쥴은 팬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절연하면 된다. 그것이 번잡하고 지끈거리는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그들은 24시간 내내 숙소와 방송국과 행사장에서 업무와 프라이버시가 성긴 채 뒤엉켜야 한다. 계절 따라 헌 옷 갈아입듯, 새 멤버를 증원하고, 리더만 바꾼다고 봉합될 문제가 아니다.

    요즘 걸 그룹들은 거의 모두 10대에 데뷔하거나 연습생으로 입사한다. 이 어린 소녀들은 제대로 된 힐링도, 교육도 받을 기회가 없다. 힐링 캠프에 나가 이쁘장한 동료애를 언플한다고 내면이 치유 될까.

    과연 요즘 걸 그룹 기획자들은 소녀들에게 ‘의지’와 ‘성공’이전에 ‘배려’와 ‘이해’는 가르치고 있는 걸까. 김광수 대표가 말하는 ‘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간성은 인간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돈과 명예는 비인간적인 스케쥴과 ‘의지’를 수인할 어떤 이유도 될 수 없다.

    검색란을 점령한 이 희대의 희비극은 몇몇 아이돌들의 ‘인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티아라와 화영을 떠나서, 우리 사회, 그리고 연예계의 불 꺼진 대기실 구석에 도사린 부조리가 만든 균열의 일각일 뿐이다. 기획사는 소녀들의 ‘의지’를 경쟁시키고, 대중의 ‘감시와 처벌’은 SNS란 원형감옥에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다. 왕따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거론하며 질타하는 건, 의도와 상관없이 소리 없는 지령이 될 뿐이다. “저것들을 더욱 쳐라”. 나는 화영양도, 티아라의 나머지 멤버들도 당장의 아픔과 잘못을 딛고 모두 자신들이 꿈꿨던 스타의 길을 완주 했으면 한다. 무대에서 숙소에서 연습실에서 보낸 그 과로의 시간들을 자신들이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JYP의 음모라던가, 활동영상을 콜라주해 만든 복고풍 시나리오로는 21세기 대한민국과 연예계를 설명할 수 없다. 기획사, 연예부 기자들, 대중이란 덩어리. 이 비릿하고 들큼한 ‘의지’의 굿판에서 작두를 타는 선무당은 바로 나와 너, 우리 모두다. 이 무용하고 너저분한 ‘의지’의 굿판을 지금 당장 걷어치우자.

    필자소개
    레디앙 독자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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