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역사
[책소래] 《한국사를 지켜라 1,2》(김형민/ 푸른역사)
    2016년 06월 06일 11: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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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던 2015년 10월 19일, 교육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유관순 열사편〉이라는 제목의 국정교과서 홍보 영상을 제작, 지상파를 비롯해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방영했다.

영상에서 유관순 열사로 분한 광고 모델과 함께 등장한 자막은 이랬다. “1919년, 나는 직접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체포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동료들과 독립 만세를 부를 때마다 매질과 고문을 당했지만 대한독립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백지 교과서를 든 학생이 새로운 자막과 함께 등장했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 영상은 “2014년까지 일부 교과서에는 유관순은 없었습니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편향된 교과서’에는 유관순이 나오지 않는다, 국정교과서에서는 이런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영상은 곧 여러 비판에 직면한다. 예전 판본이 아닌 수정판에서는 모두 유관순을 언급하고 있다는 반박이 나왔고, 1974년 박정희 정권 당시 집필된 국정교과서 역시 유관순 언급이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사2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최소한의 역사는 있어야 한다

《한국사를 지켜라 1―독립운동가로 산다는 것》은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이 같은 혼란의 한복판에 서고자 한다. 28개 꼭지를 통해 오늘을 있게 한, 그러나 오늘이 잊은 여러 독립운동가의 삶을 찾아 나선다. 그러면서 각계각층의 반대 목소리를 무시한 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현 정권에 준엄하게 묻는다. “앞으로 등장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그리고 아이들이 유관순을 모른다고 통탄한 당신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1990년대 초 PC통신 〈하이텔〉에서 온라인 글쓰기를 시작해 ‘산하’라는 닉네임으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역사이야기꾼 김형민(SBS CNBC PD)은 〈이글루〉에 ‘산하의 오역’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역사’를 꾸준히 기록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국정교과서 논쟁을 지켜보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최소한의 역사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그동안 적어왔던 ‘오늘의 역사’ 가운데 독립운동가 관련 글을 고치고 덧붙여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봉창, 이육사, 유관순 등 익히 알려진 독립운동가부터 총독부를 날리려 했던 김익상, 폭정을 거부한 기독교인 주기철, 기생의 몸으로 ‘독립만세’를 외친 김향화 등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독립운동가까지 여러 독립운동가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다.

28개 꼭지에 담긴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삶

저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노천광露天鑛에 비유한다. 흙투성이가 되었을망정 씻어 보면 황금빛으로 빛나고, 돌무더기처럼 보일망정 조금 긁어 보면 은은한 은빛깔이 눈을 파고드는 노천광. 오늘을 있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오늘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목숨을 걸었던,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에게는 기억조차 되지 않는 노천광 같은 독립운동가들.

도산 안창호가 “그녀 같은 사람 열 명만 있어도 조선은 독립됐다”고 했던 김마리아,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총알 세례를 퍼부은 후 죽어가면서 “2천만 동포들아. 분투하라. 쉬지 말라”고 외치던 나석주, 1923년 경성을 뒤흔든 10일의 주인공 김상옥, 의병으로 전사한 남편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어머니’로서 독립군 수발에 나섰던 남자현 등 저자는 기억되어야 할, 그러나 잊히고 있는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다.

이 책에는 그들 독립운동가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만이라도 들춰보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그들의 영전에 보낸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죄송합니다.”

우리가 살았던 이상한 나라,
1970년대의 7년하고도 7일의 풍경

1979년 10월 27일 새벽. 라디오를 통해 아나운서의 침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다투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사된 총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서거…….”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가 대한민국 권좌에 앉아 있었던 18년 반 동안 대한민국은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다. 부정하든 긍정하든 우리 역사는 그 성과와 한계 위에서 성장해왔다. 다른 제3세계 독재자들에 비교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적 역할은 더욱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을 십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10년, 1970년대와 유신시대라 일컬어지는 7년하고도 7일의 시간은 마냥 긍정하기에는 너무 지독했다. 질끈 눈 감기에는 끔찍하도록 참혹한 채찍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후려갈기던 시간이었다.

한 사람의 공功을 기억하자면 그의 과過도 명심해야 한다. 허물에 대해 논하고 공적에 드리운 그림자를 말하는 것에 대해 ‘자학自虐’사관이니 ‘좌익 편향’이니 딱지를 붙이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며 있을 수도 없는 억지요 만용이다.

유신공화국의 그림자

《한국사를 지켜라 2―대한민국이 유신공화국이었을 때》는 저자가 국정교과서 논쟁을 지켜보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최소한의 역사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그동안 적어왔던 ‘오늘의 역사’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마지막 10년, 대한민국이 유신공화국이었던 1970년대 풍경을 담은 글들을 고치고 덧붙여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슬 퍼렇던 1970년대를 26개의 꼭지에 담는다. 법치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1970년 11월 13일)부터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유신 선포(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 앞에서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며 통곡하고 사형을 구형받은 뒤 “감사합니다”를 외치던 스물두 살 청년 김병곤(1974년), 인혁당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 선고받은 다음날 벌어진 ‘사법살인’(1974년 4월), 그리고《우상과 이성》 필화사건(1977년 11월 23일), 동일방직 똥물사건(1978년 2월 21일), 부마항쟁(1979년 10월 16일) 등 유신공화국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동과 항의의 소산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내세웠다.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 올바르지 못하다거나 편향되었다거나 심지어 ‘혼이 비정상’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2016년 2월 29일, 역사교육연대회의는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나온 근현대사 국정교과서인 초등《사회 6-1》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감추기가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3선 개헌, 10월 유신, 국민 탄압 등에 대해 모두 ‘박정희’가 아닌 ‘박정희 정부’로 표현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은 집중 부각시키면서 박정희의 공으로 돌렸다. 책의 집필 의도를 ‘2015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간 서른여섯 해 뒤에 홀연히 돌아와 우리 앞에 선 억지와 만용의 여신女神에 대한 반동과 항의의 소산’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우려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성찰과 해석의 학문이다. 성찰과 해석이 단일한 방향으로만 행해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공을 부풀리고 과는 감추는 역사교과서가 ‘올바른’ 역사교과서일 수 있을까.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이 책에 담긴 유신공화국의 민낯이 포함될 것인가. 초등《사회 6-1》 교과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지 않을 듯 보인다. 이 책이 유의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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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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