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추모] 목숨까지 차별받는 세상, 꼭 바꾸겠습니다.
        2016년 06월 06일 1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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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였던 19살 김모 씨에 대한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공동투쟁본부’의 추모글이자 성명서이다. 같은 처지에서 살아가야 하는 수리정비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안타까움과 과 잘못된 현실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 레디앙에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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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그대 죽음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더러운 시도에 맞섰습니다. 그대 어머니의 절규를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서울메트로는 입장을 완전히 바꿔 “고인의 잘못은 0.1%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다행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던 노동자 두 명의 목숨을 진정 귀하게 여겼더라면, 아까운 그대 목숨까지 바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직영에 준하는 자회사’를 고집하는 서울메트로를 그래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당신처럼 하청노동자입니다. 우리는 삼성전자 AS기사들입니다. 케이블방송사 티브로드, 딜라이브-씨앤앰, 인터넷‧통신사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설치‧수리기사들입니다. 서울메트로가 직접 책임져야 할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외주업체 은성PSD 소속이었던 당신처럼, 우리는 모두 하청노동자들입니다. 삼성, 티브로드, 딜라이브-씨앤앰,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가 우리를 외주‧하청업체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기시감이 듭니다.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없이 줄 하나에 의지해 건물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고치는 내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전봇대에 오르는 동료들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크고 작은 사고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어느 지역의 누가 떨어져 죽었다더라’, 하는 소식이라도 듣는 날엔 좀 더 긴장하고 매달렸습니다. 동료를 잃은 아픔도,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애써 지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니까요.

    사람값이 싸지면, 목숨도 그렇게 됩니다. 간접고용이 없어져야 한다고 우리가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07년 조사 결과가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하도급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1위는 ‘유해위험작업’(원청의 40.8%, 하청의 25.3% 응답), 2위는 ‘임금수준이 낮아서’(원청의 28.2%, 하청의 32.5% 응답)였습니다. 올해 초 부천‧인천지역 공단에서 70년대에나 발생했을 법한 메탄올 중독사고로 실명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삼성전자 2,3차 하청업체 파견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나흘 후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사고 사망자 4명, 부상자 10명도 모두 하청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이 할 일을 하겠습니다. 돈보다, 회사의 지시보다 스스로의 목숨을 우선시 할 용기를 얻은 것은 노동조합 덕분이었습니다. 위험한 업무는 거부하고, 다쳤을 땐 산재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매번 힘겨운 싸움입니다. 진짜 책임자인 원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하청 노동자의 산재사고를 보면서도 돈만 세고 있는 원청기업들을 처벌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나아가 위험의 외주화, 일터의 하청화를 막아내는 것이 우리가 할 입니다.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그것이 당신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임을 다짐합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배고픔도 괴로움도 없는 곳에서, 부디 영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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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의역

    ※ 아래 내용은 삼성전자서비스‧LG전자서비스‧티브로드 등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산업재해 주요 사례이다 (언론보도와 노동조합원들의 제보를 토대로 한 일부 사례임.)

    ○ 2013년 9월 27일 삼성전자서비스 칠곡센터 기사 임현우, 과다한 업무와 실적압박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과로사.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인정하지 않았으나, 지난 2016년 3월 24일 서울행정법원(제12부 재판장 장순욱) 산재 인정.

    ○ 2014년 8월 19일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서 티브로드 케이블 설치기사 ㄱ씨, 전봇대 작업 도중 추락사.고인은 영업·설치 특판점 소속으로 비정규직이었음. 비오는 날 안전모, 안전화도 없이 전봇대에 올랐다가 추락.

    특판점 대표는 고인이 개인사업자였기 때문에 산재처리가 안 된다 주장, 원청 티브로드는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사고라며 선을 그음. 희망연대노조의 요구로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실시했으나, 티브로드홀딩스에게 과태료 30만원, 지역종합유선방송사업자에게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는데 그침.

    ○ 2015년 7월 17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의 한 상가건물 4층에서 에어컨 수리 작업을 하던 LG전자서비스센터 소속 57살 임모 씨, 15미터 높이에서 추락사. 안전장비 없이 작업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언론에 실림. (경찰 조사 결과는 확인 어려움)

    ○ 그 밖의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고 유형

    – 인터넷 통신 기사 : 날카로운 함체(증폭기함, IDF함 등) 모서리에 베이는 사고. (힘줄을 다치기도 함)

    – 에어컨 수리 기사 : 용접 중 에어컨 가스 폭발로 인한 화상. 에어컨 팬에 신체가 크게 찢어지는 사고.

    – 옥상작업 중 사다리 낙하, 비오는 날 지붕작업 중 미끄러져 낙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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