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릉이의 실험과
    '크리티컬 매스'의 확보
    [에정칼럼] 도심 교통혁명의 첨병
        2016년 06월 03일 03: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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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1천원짜리 하루이용권을 사서 서울시 따릉이를 처음 타 보았다. 안드로이드폰 앱을 이용하면 대여 절차를 간단히 마칠 수 있었지만 처음 해보는 사람은 몇 번쯤 시행착오를 반복할 듯 싶었다. 자전거의 상태는 튼튼하고 좋아 보였다. 오르막길에는 기어를 넣을 수 있고 실용적으로 바구니도 달려있다.

    역시 문제는 도로 여건이다. 따릉이 대여소 즉 거치대는 광화문 일대와 신촌, 여의도 등을 거점으로 우선 설치되어 있는데, 마음 놓고 타고 다닐만한 도로는 흔치 않다.

    도로교통법상으로 자전거는 엄연히 차량이며 따라서 인도나 횡단보도를 자전거에 올라탄 채 주행하면 불법이지만, 따릉이 라이더들은 대부분 인도로 다니고 있고 이를 단속하는 경찰도 없다. 라이더나 경찰 모두 도심의 대로 위로 따릉이가 다니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 통행이 엄청나게 활성화된 코펜하겐처럼 자전거도로를 물리적으로 분리하여 조성하여 일반 차량과 자전거의 충돌을 원천적으로 예방한 도시도 있지만, 그런 공간 구조의 문제 이전에 차량 운전자와 라이더 사이의 암묵적 룰이 한국의 도시들에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자전거가 4차선 이상 도로에 나오는 것이 여전히 눈총을 받는 분위기다. 신체적 위험이나 감정적 반응을 우려하는 따릉이 라이더들이 인도로 몰리니, 보행자 친화적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오히려 인도의 보행자와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서울시 따릉이는 지난해 10월에 대여소 150곳, 자전거 2천대로 운영을 시작했는데, 지난 4월 중순까지 대여 횟수가 24만여 건, 가입 회원수가 6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일단 호응을 얻고 있다.

    사업 초기에는 대여소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거나 이용자가 적어서 예산낭비에 전시성 사업이라는 기사들도 보였지만, 서울시가 사업 규모를 의욕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보니 이제 그런 비판은 다소 수그러든 것 같다. 서울시는 7월부터 대여소를 450개로 확대하고 자전거도 5,600대로 늘리기로 했다. 기본 이용시간 2시간 요금제 도입, 입원비 외 치료비 보장보험 가입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도로 조건의 미비함은 숙제다. 그리고 따릉이가 늘어날수록 인도에서 보행자와의 충돌뿐 아니라 차도에서의 사고도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이다. 서울시도 그런 예상을 못할 리는 없었을 텐데, 그렇더라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지 않고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서울시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크게 다치는 사고는 절대 없어야 하지만, 사소한 충돌과 갈등들의 축적을 통해 따릉이는 도로의 주인과 이용의 권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할 것이고 궁극적 해답을 요구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해답이란 승용차, 버스, 택시, 영업용 트럭 등 서울시내 모든 자동차 운전자의 운전 문화와 주행 속도 및 패턴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엄청난 변화겠지만 결국은 서울시가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따릉이는 서울시 도심의 교통 혁명을 이끌 조용한 첨병이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그 성공과 실패를 예단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박원순 시장의 대선 출마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따릉이의 실험이 진행되고 성공까지 가늠해보려면 당분간은 따릉이의 이용자가 절대숫자(임계점, 임계치), 즉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표

    2012년 제작된 샌프란시스코 크리티컬 매스 20주년 기념 포스터(http://hughillustration.com/2012/07/critical-mass-poster/)

    크리티컬

    2005년 크리티컬 매스 모습(위키피디아)

    크리티컬 매스를 넘어서면 따릉이가 인도에서 차도로 빈번하게 진출하여 사고의 위험성이 더 높아질 수 있지만, 역으로 따릉이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 역시 크리티컬 매스다. 따릉이를 만나는 차량 운전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차량은 보다 조심하게 될 것이고, 자신감을 얻은 기존의 라이더들도 자신의 자전거를 도로로 끌고 나오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자전거가 도로에 많아지고 차량의 운행 속도가 느려지게 되면 자전거 주행차로의 물리적 개선이나 신호체계의 개선도 강구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1992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크리티컬 매스”(링크)라는 명칭의 운동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미리 정한 루트를 따라 집단적으로 자전거 주행을 하는 이 행사는 2003년 말에 이르러 세계 300개 이상 도시에서 벌어지는 운동이 되었다.

    크리티컬 매스를 이룬 무리는 차량 주행을 방해하는 자전거에게 날아오는 욕설과 비난을 이겨낼 수 있었고, 도로 교통에 대한 관점과 관련 제도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크리티컬 매너(Critical Manners)”라는 운동도 생겨났는데, 라이더들이 자동차 도로를 정당하게 점유하면서 빨간불에 정차하고 모든 교통신호를 준수하며 차량과 평화롭게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구호 아래 발바리(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들의 떼잔차질이 2001년부터 매월 정해진 토요일마다 서울, 수원, 부산, 춘천 등에서 열리고 있다. 예전보다 규모가 줄어든 것 같아 아쉽지만, 이들이 자연스레 따릉이 대열과 만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 전에 스스로 따릉이의 크리티컬 매스로 합류하고, 사고가 나지 않도록 그리고 매너있는 라이딩을 하도록 유의하자. 1년 이용권은 3만원이니 커피 예닐곱잔 값을 아끼면 될 것이고, 음주 라이딩과 스마트폰 통화 중 라이딩은 절대 자제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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