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도 권력일까?
    [왼쪽에서 본 F1] 10대 최연소 우승자 베르스타펜
        2016년 05월 30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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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5일 F1의 역사가 다시 쓰였습니다.

    지난 칼럼(링크)에서 다뤘던 네덜란드 출신의 무서운 10대 ‘막스 베르스타펜’이 레드불로 이적 후 첫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8세 228일 만에 우승을 차지한 베르스타펜은 이전까지 20대에 머물던 F1 그랑프리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현역 최다 챔피언 타이틀 보유자인 독일의 세바스찬 베텔이 가지고 있던 최연소 기록들은 베르스타펜에 의해 대부분 경신됐습니다.

    베르스타펜의 이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2015시즌 종반부터 메르세데스가 압도적인 전력으로 연승 기록을 이어가던 중, 올 시즌 충분한 경쟁력이 없다고 평가됐던 레드불에 갓 이적한 드라이버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부터 충격적이었습니다.

    현역 최고령 드라이버 키미 라이코넨이 뒤에 바짝 따라붙어 한 시간 가까이 압박을 계속했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선두를 지켜낸 의외의 노련함도 놀랄만했습니다. 이전까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던 F1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경기 후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라이코넨은 베르스타펜의 아버지와도 F1에서 경쟁했었다는 한마디로 엄청난 세대 차이를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이미 20대 초반의 드라이버가 많이 늘어난 F1이라지만, 10대 드라이버의 활약은 라이코넨뿐 아니라 모든 F1 관계자들이 3~4년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입니다.

    30대에 데뷔해 50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던 과거의 F1과 비교하면, 30대 중반에 최고령 드라이버가 되고 10대와 20대 초반 드라이버들이 활약하는 현재의 F1은 마치 다른 스포츠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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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의 나이로 F1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막스 베르스타펜

    이처럼 떠오르는 10대의 활약과 세대교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일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면 기량이 떨어지고, 젊은 나이에 선배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젊은, 혹은 어린 신예들의 활약을 달갑게 보지 않는 사람도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좋게 말하면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다거나, 낭만적이었던 ‘나이 든’ 드라이버들을 선호한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의 사람들은 그저 어린 신예의 대활약이 탐탁지 않은 것일지 모릅니다.

    베르스타펜이 여러 사람에게 너무 철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거침없는 언행과 선배 드라이버들의 연륜과 경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듯한 인터뷰가 많았던 것도 그런 올드 팬들과 ‘나이 많은’ 관계자들을 자극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버릇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따돌림의 표적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나이가 어린’ 까마득한 선배가 ‘버릇없는’ 행동을 하고 선배들의 눈 밖에 나는 사례가 적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유독 선후배 사이의 위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곤 하는 우리나라라면 일이 더 심각해질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그 후배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더욱 심한 견제가 이뤄집니다.

    때로는 ‘나이가 권력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이 든 대선배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핍박을 가하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버릇없는 후배를 ‘모난 돌’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의 정치 결사, 커뮤니티 속에서도 젊은 인재를 ‘길들이려는’ 시도는 어렵지 않게 목격됩니다. 예의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는 실용적인 그룹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틈엔가 먼저 태어나서 먼저 경험한 것들이 ‘존중받지 않으면 안 될’ 유사 권력으로 작용하는 느낌입니다.

    저 역시 이런 권력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드러내고 말하지 않도록 참고 있을 뿐이지, ‘내가 알고 있던 과거의 세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을 인식했을 때 막연한 반감과 억압하고 싶은 본능이 발동하곤 합니다. 베르스타펜의 경우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F1을 지배하고 있는 85세의 버니 에클스톤

    F1을 지배하고 있는 85세의 버니 에클스톤

    물론 F1은 상당히 고리타분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중심이 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산업입니다. F1 관련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도 상당히 높고,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대부분 ‘할아버지’들입니다.

    F1의 실질적 지배자인 버니 에클스톤은 1930년생으로 이미 85세를 넘기고 있습니다. 40년 전에는 나름 ‘젊은 생각’과 진취적인 태도로 주목받던 버니 에클스톤에 대해, 지금의 젊은 팬들은 엄청난 반감을 드러내며 ‘구세대의 아이콘’으로 취급합니다.

    그런 ‘할아버지’들이 모든 것을 이끌고 있기 때문인지, F1은 변화에 취약합니다. 매년 새로운 규정과 시스템을 준비해야 하는 F1이, 항상 첨단 기술의 극한을 탐구해야 하는 F1이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어쨌든 F1의 상당 부분은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의사 결정 구조 자체가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기능을 합니다.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입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얘기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덕분인지, 필자 역시 요즘 젊은이들이 정말 버릇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버니 에클스톤이 나이를 먹으면서 ‘심하게’ 변해갔듯이 저 역시 이미 변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아직 아주 나쁘게 변한 상황까지는 아니라면, 더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항상 경계해야겠습니다.

    베르스타펜의 F1 그랑프리 우승은 세대교체의 상징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화할 수 있고, 그 변화를 이끄는 것은 어쩌면 ‘버릇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일지 모릅니다. 반대로 나이 든 사람이, 구시대의 사람이 변화를 이끄는 상황이 더 비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소 기분 나쁘더라도, 어떨 때는 정말 많은 불만을 느끼더라도, 갑자기 등장한 젊은 인재가 이끌어갈 미래를 부정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나이라는 권력에 심취한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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