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 보여주는 여자들
    [텍사스 일기] 마디그라 축제 ②
        2016년 05월 26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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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멕시코만에 접해있는 남쪽 도시의 3월이니 따뜻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날씨가 장난 아니게 춥다. 이상한파라고 한다. 우산 아래로 빗겨드는 빗방울에 으스스 이빨이 부딪힐 정도다.

    100만 명이 몰려드는 축제다. 하지만 오늘이 행사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호텔 방이 텅텅 비었다. 어제 밤에는 콧방귀를 뀌던 힐튼호텔이 반값도 안 되는 가격이다. 얼른 1박 예약을 했다.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니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벌써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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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디그라(Mardi Gras)는 프랑스말이다. 영어로는 팻 튜스데이(Fat Tuesday)로 번역된다(화요일에 행사가 끝난다는 뜻). 이 축제의 기원은 프랑스가 루이지애나를 통치하던 17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이 14세의 명령을 받은 르모인 형제가 1699년 3월 3일 미시시피 강 어귀에 도착하여 이곳을 마디그라 포인트라 명명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사람들이 가면과 분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시작한 것은 1838년.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술에 만취한 참가자들이 하도 빈번하게 폭력사태를 일으켜 한때는 폐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한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서 마디그라는 오늘날도 여전히 음주가무가 만발한 축제다.

    미시시피강이 반월형으로 휘돌아나가는 도시 중심 구역이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 술과 음악이 가득한 유흥가다. 그 초입의 가로등에 이런 안내판이 붙어있다. “여기서부터는 유리병이나 글라스를 들고 다니면 안된다”고. 플라스틱 병에만 액체를 넣을 수 있다는 게다. 술 마시고 난 후 병이나 잔을 깰까봐 그런 것이다. 현재도 만취로 인한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뜻이다(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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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축제가 그러하듯 마디그라도 가장행렬이 클라이스막스다. 이 퍼레이드는 뉴올리언스 시민으로 구성된 클럽들이 이끈다. 행사에 참여하는 각 단위 클럽은 크루(Krewe)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불린다. 영어 crew와 발음이 같다. 1856년 마디그라 퍼레이드를 위해 미스틱 크루 오브 코무스(The Mistick Krewe of Comus)라는 사설 클럽이 창설되었는데, 이 클럽이 유명세를 타서 이후 가장행렬에 참여하는 모든 클럽들을 크루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70개 정도 크루가 참여한다. 대표적인 크루 명칭은 줄루(Krewe of Zulu), 인디안(Mardi Gras Indians), 바카스(Krewe of Bacchus) 등이다. 그 밖에도 클레오파트라(Krewe of Cleopatra), 나폴레옹(Corps de Napoleon) 등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각 크루는 명칭에 걸맞도록 기기묘묘하게 장식한 차량들을 몰고 퍼레이드에 참가한다(사진 3, 4, 5). 차에 올라타거나 도보로 뒤따르는 사람들 역시 가지각색 화려한 분장을 한다(사진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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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여분쯤 기다렸을까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소년소녀 취주악대를 선두로 행렬이 모습을 드러낸다(사진 8). 퍼레이드가 통과하는 도심에 높다랗게 유료 관람석을 지어놓았다. 하지만 연도에서 구경해도 별 불편은 없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열광적으로 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이에 화답하여 차에 탄 클럽 회원들은 형형색색의 구슬목걸이(싸구려이기는 하지만)와 컵, 모조 동전, 소형 봉제인형 등을 군중들에게 던져준다(가지 수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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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디그라 축제의 가장 큰 재미는 이런 공짜 목걸이나 장식품을 수집하는 것이다. 이런 물건을 던지고 모으는 관습은 187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축제기간에 목걸이만 해도 수십만 개가 도심 곳곳에 뿌려진다. 저녁이면 길바닥 위에 버려진 목걸이가 마구 발길에 차일 정도다(사진 9). 필자도 열심히 모았다. 이틀 동안 모은 개수가 수 십 개를 넘었다(사진 10). 이쯤 되면 아랍 부호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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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간 후 잠시 호텔에 들어와 몸을 녹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프렌치쿼터 탐험에 나선다. 뉴올리언스는 크리올(Creole) 요리와 케이준(Cajun) 요리의 본산지다.

    크리올 요리는 뉴올리언스에 정착한 프랑스와 스페인 상류층 후손들이 먹던 음식이다. 어패류를 베이스로 향신료와 허브, 독특한 소스를 곁들이는데 맛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반면에 케이준 요리는 캐나다에 살던 프랑스인들이 루이지애나로 강제 이주된 후 만들어 먹던 서민 음식이다. 재료가 풍부하지 못했기에 조류고기, 물고기 등을 돼지기름에 볶은 다음 마늘, 양파, 칠리, 후추, 겨자 등의 매운 양념을 듬뿍 넣는 특징이 있다. 뉴올리언스 곳곳에 이런 전문요리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굴, 가재, 새우 등 미시시피강과 멕시코만에서 잡히는 싱싱한 해산물 요리. 멀리서 온 김에 이왕이면 제일 유명한 굴요리집을 찾았다. 이름하여 펠릭스 굴요리 레스토랑(사진 11). 대기 행렬이 수십 미터는 늘어섰다. 유명 관광지 아니랄까봐 웨이트리스들이 매우 불친절하다. 왔다가 그냥 가는 뜨내기손님이라 생각해서겠지. 맥주 한잔 휙 던져주고는 종내 무소식이다. 하지만 30분을 기다려 먹은 굴튀김은 그야말로 별미였다(사진 12). 음식 값이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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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를 넘기면서 프렌치쿼터는 본격 축제분위기로 달아오른다. 거리가 온통 화려한 칼라의 향연이다. 사람들이 온갖 가면을 쓰고 분장을 했다. 단순한 코스프레가 아니다. 오랫동안 정교하게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사진 13,14,). 핫도그 리어카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오고(사진 15), 재즈바에서 넘쳐흐르는 연주음악이 나비처럼 허공을 날아다닌다. 우리도 서슴없이 사람들 속에 파묻힌다. 맥주를 마시고 등을 두들기고 서로를 향해 즐겁게 웃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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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퉁이마다 즉석 공연이 펼쳐진다(사진 16). 손에손에 맥주 컵을 들고 얼큰히 취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준다. 프라이버시에 유난히 민감한 미국인들이 오늘은 전혀 다르다. 잔뜩 해방감에 들떠 키스를 하라면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해달라면 포옹을 해준다. 다들 행복하다(사진 17, 18, 19, 20, 21). 심지어 군데군데 서 있는 경찰들의 얼굴 근육까지 다 풀어져있다(사진 22). 미국 와서 경찰들의 이렇게 느슨한 모습 보는 것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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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디그라는 평범한 여성들이 술기운과 저녁 어스름을 빌려 상의를 벗고 젖가슴 보여주는 일탈행위로 유명하다. 직접 보기 전에는 설마 그러랴 싶었다. 근데 사실이었다. 예로부터 스트립쇼가 성행한 프렌치쿼터 내의 버본 스트리트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이 거리에는 관광객 상대의 재즈바, 음악클럽, 기념품점들이 가득한데 대부분 나지막한 3, 4층 건물이다. 그 건물들의 베란다에서 사람들(주로 남자)이 길을 향해 싸구려 구슬목걸이와 장식품을 던지는 것이다(사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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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구잡이로 던져주지는 않는다. 밑에서 환호를 지르고 춤을 추면 확률이 높다. 휙휙 휘파람 불며 청년들이 여성들을 향해 짓궂은 요구를 한다. 가슴을 보여 달라는 게다. 평소 같으면 풍기문란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하지만 축제 아닌가. 날씨가 추워 옷들이 두껍다. 하지만 그 두꺼운 윗옷을 벗고 말만한 처녀와 아줌마들이 훌렁훌렁 젖가슴을 보여준다(사진 24, 25). 길거리에서는 이런 모습 그리 많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음악 클럽 같은 곳에서는 웃통을 완전히 벗어던진 젊은 여성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여대생이나 관광객들).

    워낙 이 관습이 소문이 나서 도시 아무데서나 이런 행동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축제기간이라 해도 대낮에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도심에서 이러다가는 경찰이 체포를 할 수도 있으니, 혹시 일탈하고 싶은 마음 있으신 분들은 조심.^^

    그렇게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미시시피 강을 만나러 나가본다. 호텔 바로 옆에 강변으로 향하는 트램(tram) 정류장이 있다(사진 26). 강 한복판으로 구식 스팀보트(steam boat)가 떠다니고, 제방 위에는 황금빛 갑옷 입은 잔 다르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사진 27, 28). 뉴올리언스 이름의 바탕이 된 자매도시 프랑스 오를레앙시에서 기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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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한 안쪽 프렌치쿼터 구역에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카톨릭 성당인 세인트 루이스 대성당(Saint Louis Cathedral)이 아름다운 첨탑을 자랑한다(사진 29). 그리고 그 옆 광장에서는 구두닦이 아저씨와 점쟁이 여인들이 열심히 영업을 하고 있다(사진 30). 잊지 못할 장면은 흑인 청소년들의 즉석 연주였다(사진 31).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세련되고 정교한 음악이다. 달리 이 도시를 재즈의 고향이라 부르는 게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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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야기 하나)

    3월 5일 늦은 오후, 텍사스로 돌아가기 위한 차의 시동을 켠다. 한밤중에 도착하느라 몰랐는데 뉴올리언스는 거대한 호수와 습지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넓이가 무려 1,6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폰차트레인호(Lake Pontchartrain)를 비롯한 광활한 습지 위로 고속도로가 나있다. 그렇게 물위를 달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길을 닦았는데 이름들이 매우 합리적이다. 도로명의 기준은 이렇다. 먼저 대륙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도로는 홀수 번호를 매긴다. 예를 들어 북부 미네소타에서 남부 텍사스를 관통하는(오스틴 시내를 지난다) 총 연장 2,524킬로미터의 남북 간 고속도로 이름은 35번( Interstate 35, 약칭 I-35). 반면에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에는 짝수번호를 매긴다. 텍사스에서 루이지애나를 오가는 최남단 고속도로는 10번이다.

    그렇게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다가 잠시 차를 멈춘 시골 마을. 그곳에서 만난 아가씨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텍사스 접경지역이 나오기 직전에 빈턴(Vinton)이란 마을이 나온다. 오후 5시부터 4시간을 내처 달려왔으니 배가 출출하다. 고속도로 출구 표지판에 식당 심볼마크가 보여 길을 벗어났다. 안쪽으로 쭉 들어갔더니 레스토랑은 언감생심 버거킹 햄버거 가게 하나가 홀로 불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납작 엎드린 1달라 샵(사진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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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버거를 먹은 후, 졸음 쫓는 용도의 음료수와 사탕을 사기 위해 가게의 문을 밀었다. 그랬더니 계산대에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루이지애나 아가씨.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앞치마, 150센티나 될까 자그마한 키에 갈색 생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다. 주근깨 얼굴에 순박한 미소가 정겹다. 가게를 둘러보니 의의로 쓸만한 물건이 많다. 원래 사려던 주전부리에 더하여 1.5달러짜리 중국제 “뻰찌”와 자동차용 싸구려 충전기까지 샀다.

    계산하기 전에 화장실을 쓰려고 문을 밀었다. 자물쇠가 걸렸는지 꼼짝을 안 한다. 카운터로 가서 문 좀 열어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 열쇠를 건네주는 줄 알았는데 “오케이” 씩씩한 대답과 함께 자기랑 남자 화장실로 같이 가자는 게다. 엥, 이게 대체 뭔 말?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척척 앞장서서 가게 맨 안쪽 으슥한 남자화장실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잠시 심호흡. 어깨를 뒤로 한껏 젖히더니 온몸을 던져 문을 부딪히는 게 아닌가! 마치 WWE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쾅!” 요지부동이던 화장실 문이 지진 일어나는 굉음을 내며 덜컥 열린다. 화들짝 놀라 얼굴을 쳐다봤더니 “문이 굉장히 뻑뻑해서…”라고 낯이 빨개지며 수줍게 대꾸한다. 그리고는 다시 기운차게 카운터로 걸어가는 것이다. 우와, 이렇게 멋질 수가!

    계산을 마치고 카드 영수증에 사인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이대로 그냥 가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는.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했다.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고. 0.5초 정도 망설이는 듯하다가 환하게 웃으며 “sure!”라고 답한다(그 백만불 짜리 미소라니).

    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루이지애나의 조용한 시골마을. 멀리서 밤기차가 덜컹덜컹 지나가는 소리. 그렇게 씩씩하고 순박한 미국 처녀의 모습이 내 아이폰의 메모리에 담겼다(사진 33). 헤어지며 “다시 봐요”라는 의례적 인사를 남겼지만 내 평생 언제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또 미국의 한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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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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