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반핵운동의 현황
    아시아, 핵발전 신규 건설과 계획 건수 세계 최고
        2016년 05월 25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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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발행하는<에너진 포커스 70호>에 실린 글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행과 원폭 피해자 등에 대한 추모 입장을 밝히는 상황과 관련하여 아시아의 핵발전 및 반핵운동의 현황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에너진 포커스> 편집진과 필자의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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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반핵운동은 유사한 경제 구조와 정치 체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각국의 역사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 새로이 반핵운동이 고조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억압적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민중들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나라들도 많다. 핵발전 수출을 위한 국제적 로비와 폐기물 처분 문제는 아시아 반핵운동의 연대 필요성을 더욱 높인다. 지난 2016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현과 도쿄에서 열린 제 17차 반핵아시아포럼과 첫 반핵세계사회포럼에서 전해진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반핵운동 현황을 요약하고 시사점을 알아본다. 참고로 반핵아시아포럼과 반핵세계사회포럼에 관한 정보를 뒤에 수록한다. <에너진 포커스 편집자주>

    아시아 반핵운동의 배경

    아시아에는 현재 총 128기의 핵발전소(원자로)가 가동 중이며, 40기가 건설 중이고 89기가 계획 중이다. 세계 전체로 볼 때 신규 건설과 계획 건수가 가장 높은 대륙이고, 특히 중국(24기 건설 중, 40기 계획 중)과 인도(6기 건설 중, 22기 계획 중)에 몰려 있어서 급속한 경제 성장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핵발전을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자원과 에너지 집약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수출주도형 경제인 경우가 많다. 정치적으로는 일본, 한국, 대만처럼 발전주의 국가가 다수이며 권위주의 또는 독재 정권 체제와 결부되어 핵발전이 진행되는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필리핀, 대만, 인도 등에서 보듯 반독재 투쟁과 반핵투쟁이 결합되어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국제 핵발전 산업 측면에서 보면 이들 국가들은 대체로 2세대 또는 3세대의 지위에 해당한다. 즉 미국,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등 1950년대에 핵발전을 처음 시작하고 국제적 확산을 주도한 나라들이 1세대라면, 이들 나라들의 기술과 자금 지원으로 핵발전을 시작한 일본과 한국 등은 2세대에 해당하고, 최근 2세대 나라들이 핵발전 수출을 본격적으로 도모하면서 3세대의 핵발전 국가들이 형성되고 있다.

    경제 개발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위해 핵발전을 추진하는 남아시아 국가 유형, 석유자원 이후를 대비하는 중동국가 유형, 핵무기 개발과 깊은 연관을 갖고 핵발전을 추진한 유형(파키스탄, 인도, 북한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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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업 곤란에 빠진 국제 핵산업계의 입장에서도 이 지역들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활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기후변화 협약과의 관련 속에서 핵발전 로비가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프랑스, 한국, 일본 등이 앞 다투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핵발전 관련 MOU를 맺고 있고, 따라서 핵발전 수출이 중요한 갈등 지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규 핵발전소 입지 갈등과 폐기물 처리는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그 인근에는 현재 8천 명 가량의 노동자들이 수습과 제염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종사노동자들 중에는 백혈병과 심근경색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제1핵발전소 수습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오염수 처리다. 현재 탱크에 보관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으며, 빙벽을 설치하여 차단하는 것도 계속 실패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 간 나오토 민주당 총리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밝혔던 방침인 “2030년까지 단계적 폐쇄”를 철회하고 2015년 8월에 센다이 핵발전소부터 재가동을 시작하여 핵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만들어진 새로운 규제기준을 적용해도 활성단층 존재 등 이유로 합격이 어려운 핵발전소가 다수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정부의 피난구역 해제를 둘러싼 것이다. 일본 정부가 거주제한구역으로 설정하는 기준은 연간 피폭선량 20mSv 이상인데, 정부 방침에 따르면 2017년까지 50mSv까지 완화할 것이라 한다. 현재 가설주택 등에서 살고 있는 피난민들은 피난구역이 해제되면 어쩔 수 없이 위험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JR선 재개통을 목표로 하고, 후쿠시마에 친환경센터를 건립하는 등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후쿠시마를 홍보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와 이를 비판하며 안전을 우선시하는 반핵운동 진영 사이에 대립이 높아지고 있다.

    제염의 효과가 불확실할 뿐 아니라, 제염 폐기물의 처리도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들판 등 여러 곳에 적재하여 보관되고 있는 후레콘백(flexible container bag)을 더 이상 둘 곳이 부족할 뿐 아니라 파손되어 누출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정부는 방사선량이 1g당 800Bq 이하인 폐기물까지는 소각을 허용하고자 하여 피난해제 예정구역에 소각장을 건설 중인데 이 역시 안전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주민도 지금은 현 내 10기 핵발전소는 모두 폐로하자는 여론이다. 그러나 피폭과 피난 관련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적 반감도 있고, 그런 상태를 핵마피아가 이용하여 후쿠시마의 핵발전소와 함께 지역을 지켜야 한다는 상생공존 논리로 활용하는 것이다. 반핵운동은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의 자활과 지원 활동도 적극 벌이고 있지만, 후쿠시마의 재생과 재건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이한 입장이 나타나고 있다. 후쿠시마 출신 주민의 ‘풍문피해’도 큰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편 이와키 시민들이 돈을 모아 만든 NPO인 방사능시민측정실은 감마선뿐 아니라 베타선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저렴한 비용으로 어린이 갑상선암 진단 서비스를 하는 등 지역 사회에 밀착하는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법적으로는 피해자 직접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진보적 반핵운동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180명의 핵발전소 사고 피해자들이 2011년 3월 16일, 이와키 노동자복지회관에서 소송단을 결성했고, 이후 원고는 16,000명으로 증가했다.

    처음에는 후쿠시마 지검에 고소장 제출했으나 국책사업이므로 책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검찰심사회(1)에 제소하기로 전략을 설정했다. 도쿄지검은 불기소를 결정했으나 검찰심사회는 재검토 끝에 2016년 2월 29일에 도쿄전력 회장과 부사장 등에 대한 강제 기소를 결정했다.

    일본 전체로 보면 대중적 반핵운동은 2012년에 최정점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장기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핵발전소 재가동 반대를 이슈로 하여 2012년 여름 매주 금요일마다 총리 관저 앞에서 수 만 명이 모여들었고 농성 천막촌이 만들어졌다.

    6월 29일의 참석 인원은 주최 측 추산 20만 명에 달할 정도였지만, 결국 7월 1일 21시를 기해 오이 핵발전소 3호기가 재가동을 시작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항의 행동은 여름 내내 이어져서 7월 29일의 국회 포위집회에는 다시 20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젊은 사람들의 참여도 두드러져서 1960년대 안보투쟁 이후 일본 사회운동의 갱신으로 평가되었다.

    올해 3월 26일 도쿄의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탈핵의 날(No Nukes Day) 집회에는 3만5000명의 일본 시민과 사회단체, 반핵 운동가들이 함께 했다. 그럼에도 반핵운동의 열기가 어느 정도 수그러든 것은 2년간의 ‘핵발전소 제로 상태’ 이후 지난해 8월에 이미 규슈의 센다이 1, 2호기가 재가동을 시작한 탓에 구체적인 정치 초점이 흐려진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4월 14일과 16일 일어난 구마모토 현의 강진을 계기로 핵발전소 재가동 반대와 폐쇄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는 조짐이다.

    인도

    인도는 미국-인도 원자력 협정 이후 핵발전소 계획을 더욱 확대하고 있고, 48개 지역이 핵발전소 후보지로 하여 계획이 추진 중이다. 정부는 정보법을 이용하여 관련 정보 접근을 차단하고, 반핵운동을 외국 NGO들의 불순한 개입으로 간주하고 탄압하고 있다. 인도 발전량의 65%는 화력발전소, 19%는 수력발전소가 생산하고 원전 발전량은 2% 정도다.

    쿠단쿨람 핵발전소(Koodankulam NPP, KKNPP)는 1988년 인도 정부가 구소련과 합의해서 시작되었다.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백지화되었다가 2001년부터 계획이 재개되었다. 1,000MW급 가압경수로 노형 VVER 타입으로 타밀 나두의 주도인 첸나이로부터 약 650km 떨어진 티루넬벨리 지역의 작은 어촌 쿠단쿨람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미 2기가 설치되어 있다. 어민들의 저항으로 건설이 몇 차례나 지연되면서, 첫 원자로가 2013년 8월에 전력 공급을 시작했고 2016년 2월에 3호기와 4호기 기공식이 열렸다.

    인도 정부는 전력 부족으로 인해 공장이 잦은 생산 차질을 빚고 있고 정전 사태도 자주 발생한다는 이유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타밀 나두 주는 현대, 포드, BMW, 니산, 르노 등 국제적 자동차 기업들이 밀집하여 전력난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은 예정 부지가 2004년에 쓰나미가 발생해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고 사고 시 피난 방법이 없다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큰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 운동을 벌여왔다. 특히 2012년 9월 10일에 수천 명이 참여한 시위를 경찰은 최루탄을 동원해 해산했고,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1명이 숨졌다. 10월 29일에는 첸나이에서 시위대 2천여 명이 주 의회를 봉쇄하기 위해 행진하다가 수백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특히 여성과 종교 단체의 투쟁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금까지 22만 7,000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선동이나 내란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하지만 맘모한 싱 인도 총리는 정부조사단이 이미 안전 검증을 마쳤다며 핵발전소 추진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NGO단체가 시위대를 배후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인도 환경운동단체 등은 쿠단쿨람 외에도 프랑스 아레바가 추진하는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 자이타푸르 등지에서도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필리핀

    필리핀 사회는 에너지-투자-성장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어, 필리핀 정부는 이를 빌미로 핵발전소 추진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러나 가동되지 않고 있는 바탄핵발전소(BNPP)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슈다. 바탄에서는 1985년에 BNPP 가동 반대 운동이 벌어졌는데, 바탄은 지진대와 가깝고 마닐라와 3시간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웨스팅하우스의 경수로 원자로를 장착한 BNPP 건설은 1976년에 시작되었으나 1979년의 스리마일 사고 이후 중단되었고 안전 점검 결과 4천여 개의 결함이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 중에는 단층대 근처라는 것과 피나투보 휴화산에 가깝다는 것도 있었다.

    완공을 눈앞에 둔 1986년, 체르노빌 사고에 뒤이은 피플파워 혁명으로 마르코스가 실각하자 새로 집권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BNPP를 가동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바탄 주민과 필리핀 시민들의 반대와 더불어 부패정권 하에서 건설이 제대로 되었는지 우려되었던 것도 작용했다.

    그 다음 정부들은 BNPP를 석유, 석탄, 가스 발전소등으로 개조할 방법을 검토했으나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는 핵발전소로 재가동하기 위한 한전(KEPCO)의 예산 계획을 검토했는데, 10억 달러 정도 들 것으로 평가되었다. 필리핀 정부는 그동안에도 웨스팅하우스에 부채와 유지비를 지불했다. 의회에서 재가동 타당성을 조사하기로 했다가 후쿠시마 사고로 동결되었다. 결국 2011년 5월에 필리핀 정부는 BNPP를 관광코스로 개방할 것을 발표했다.

    필리핀에는 BNPP 외에도 핵발전소 검토 후보지가 13개 지역에 이르며, 한전 등 국내외 회사들이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6년 5월의 선거가 핵발전 정책의 분수령이 될 것이나, 명시적 반핵 후보는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대만

    대만은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관심과 함께 반독재투쟁의 일환으로 반핵운동이 시작되었고, 따라서 초기부터 야당과 연합한 당파성을 띠었다. 20년간의 반핵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끝에 2016년 민진당의 재집권과 함께 사실상 탈핵 경로로 접어들었다.(2)

    대만의 핵발전은 전력 설비의 10.5%, 발전량의 16.1%를 차지하고 있고, 진산 제1핵발전소, 귀셩 제2핵발전소, 마안산 제3핵발전소에 각각 2기씩 총 6기가 있고, 대만 북부 해안지역의 어촌 공랴오 현 롱먼에 제4핵발전소가 건설 중이었다. 이 지역은 인구가 1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어촌이지만 1988년에 자조집단을 만들어 반대운동을 시작했고, 1994년에는 지역 주민투표를 통해 96%가 건설 반대 의견을 밝혔다.

    제4핵발전소는 원래는 일본이 최초로 해외로 수출하는 원자로였고 ABWR(개량형 비등형 경수로) 타입이다.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2014년에 공정률 98%와 92% 상태에서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롱먼은 타이베이 도심에서 30km 이내의 지역이어서 사고 시 피난 문제가 있었고, 후쿠시마 제1원전과 같은 타입이라는 점, 건설 중단을 여러 번 겪으면서 부품이 심하게 부식된 점 등도 우려 요인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 초반에 대만 내에서 기존 핵발전소의 사고가 빈발하고 사회적 논쟁이 일어나면서 1985년에 제4핵발전소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당시의 유 궈후아 총리(행정원장)은 국민의 우려가 사라질 때까지 제4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잠정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1986년 창당한 민진당(민주진보당)은 당 헌장에 반핵 조항을 담았고, 1987년에 출범한 환경보호연맹이 민진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대만 반핵운동은 야당의 지지를 기초로 정부에 저항하는 양상을 보였고, “반핵은 반독재”가 가장 유명한 구호가 되었다.

    민진당은 타이베이 현의 지사를 배출했고, 1987년에는 란위섬 원주민들이 핵폐기물 투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1988년에는 공랴오 주민들이 제4핵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반핵운동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1989년에 핵발전소 재추진 의사를 밝혔고, 환경보호연맹은 1991년 5월 5일에 2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가두시위를 개최하며 입법원을 상대로 투쟁 수위를 높였고, 10월 3일에는 경찰의 시위대 해산 과정에서 수십 명이 부상하고 경찰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공랴오 주민 17명이 기소되어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한 명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연맹은 가두시위를 더 강화하는 동시에 핵발전소 예산을 통과시킨 입법의원 소환 운동2)과 제4핵발전소 건설 국민투표 실시 운동을 추진했다. 1994년에 공랴오 지방행정기관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이후에도 단체장이 민진당 소속이던 타이베이 현, 타이베이 시, 이란 현에서 주민투표가 치러져서 압도적인 반대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발전소 건설을 저지할 법적 수단이 부재해졌고, 1999년 3월 28일 스리마일 사고 20주기 시위, 9월 21일의 대만 지진과 9월 30일의 일본 도카이무라 핵연료공장 폭발사고에도 불구하고 국민당 정부는 2000년에 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2000년 3월 18일 총통선거에서 민진당의 천수이벤이 당선되어 그해 5월 민진당 지도자들은 제4핵발전소 종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선언의 절차상 미비 문제와 반대파의 압력에 직면한 천수이벤 총통은 다시 건설 재개에 합의하고 3개월만에 건설을 재개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반핵운동은 큰 좌절을 겪고 ‘잃어버린 10년’의 침체기를 보내게 된다.

    천 총통은 국민투표를 약속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고, 2004년 재집권한 민진당 정부는 제4핵발전소 건설 완료를 위한 예산을 차례로 승인했고 2008년에는 다시 핵발전을 지지하는 국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이 시기 동안 반핵운동은 반핵 역량을 기르기 위해 예비교사(핵폐기 씨앗교사)를 양성하고 지역 풀뿌리 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고, 반핵운동의 열기도 되살아났다(버전 2.0 반핵운동의 시작).

    2011년 3월에 반핵대행진, 2012년 3월에는 고별핵전대행진이 진행되었고, 국회 앞 연좌와 반핵활동가 린이슝 선생의 단식이 투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민진당과 긴밀했던 환경보호연맹 외에도, 진영논리를 넘어 창의적인 캠페인을 벌인 “녹색공민행동”과 “대만을 사랑하는 엄마들 모임(Mom Loves Taiwan)”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2014년에는 반핵대행진, 해바라기 무브먼트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반핵 분위기에 맞닥뜨린 마잉주 전 총통은 2014년 4월에 롱먼 제4핵발전소 건설의 잠정 중단과 함께 추후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가동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2016년 1월 16일의 총통 선거에서 다시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당선되고 2025년까지 핵 없는 대만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제4핵발전소 공사는 정치적으로 중단된 것이지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며,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문제도 남아있다.

    터키

    터키는 아직 가동을 시작한 핵발전소가 없으나, 건설 계획 단계에서 활발한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시놉(Sinop)은 터키 북부 흑해 연안의 도시로, 남부 지중해 연안의 악쿠유(Akkuyu) 이후 두 번째로 핵발전소 건설이 추진 중인 곳이다. 터키 총리와 일본의 아베 수상 사이에 2013년에 BOT 방식으로 프로젝트가 합의되었고, 미쓰비시 중공업과 아레바의 합작 컨소시엄인 Atmea가 담당할 예정이다. 터키는 지진 위험성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일본 지진전문가의 최고 수준 안전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시놉 핵발전소 계획은 2015년 현재 타당성 조사 단계이며, 4기의 원자로가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순차 가동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악쿠유 핵발전소는 2011년에 부지 조사 작업을 시작했고 첫 원자로 건설은 2016년에 시작될 예정이며, 2022년부터 2025년 사이 가동이 목표다.

    이에 대응하여 아름다운 경관이 사라지고 지역이 황폐화될 것을 우려하는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시놉은 인구가 밀집 반도와 핵발전소 예정부지가 불과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탓에 피난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2013년 4월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터키 시민의 63.4%가 핵에너지 이용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대통령은 핵발전에 찬성하나 지자체들 다수가 반대한다.

    최초의 반핵운동은 1970년대에 악쿠유와 예정부지로 선정될 때부터 시작되었고, 2000년에 자금 부족으로 정부가 계획을 취소할 때까지 이어졌다.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핵발전 계획을 재개하자 반핵운동도 다시 일어났고, 지역뿐 아니라 이스탄불과 앙카라 같은 도시로도 확산되었다. 현재 터키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반핵 시위와 대중 강좌가 열리고 있다.

    2011년 4월 17일에는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인간사슬이 메르신(Mersin)부터 악쿠유까지 고속도로를 따라 30개 지역에서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참가자가 예상보다 많아져서 사슬 중 몇 개는 서로 합쳐지며 20km에 이르렀다. 2015년 4월 25일에는 체르노빌 사고 29주년을 기리는 반핵 시위가 4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시놉에서 벌어졌다.

    시사점과 대응 방향

    앞에서 살펴본 나라들 외에도 핵발전을 추진하는 여러 아시아 나라들에서 갈등과 반대투쟁의 요인들이 잠복해 있다. 중국은 이미 30기가 가동 중이고 21기가 건설 중이며, 136기(153GW)를 추가 검토 중인 만큼 그 규모와 영향이 가장 큰 곳이지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중국 본토의 환경단체는 물론 홍콩의 사회운동도 중국의 핵발전소 상황을 알기 어렵고 대중적 반핵운동은 존재하지 않는 형편이다.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에서도 소형 실험로 건설을 계획 중이거나 핵발전소 수입 협상을 시도하고 있어서 국제 핵산업과 자국의 반핵운동 모두 주목하고 있는 지역이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종교와 정치 갈등이 핵발전 경쟁과 얽혀있는 복잡한 맥락이다.

    각국의 상황이 매우 다양함에도 아시아 범위와 수준에서 반핵 정세를 공유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할 것이다. 우선 핵발전소 사고 시의 영향과 예상 피해를 파악하고 공동 대응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중국 동쪽 해안에 밀집한 핵발전소들에 대하여 한국, 대만, 일본의 사회운동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다음으로, 핵발전 설비와 기술의 수출과 수입이 아시아 주요국들 사이에 빈번히 논의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잠재적 수출국과 수입국의 반핵운동들이 국제 로비에 대한 모니터링과 개입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특히 사회운동 역량 자체가 취약하고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에 처해 있는 지역의 반핵운동에 적잖은 힘이 될 수 있다.

    또한, 사안별 지역별로 분산된 반핵운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아시아 에너지 전환의 구상으로 연결되는 청사진을 만들고 이를 위한 지원과 연대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핵발전을 개시하지 않았거나 아직 에너지원에서 비중이 작은 나라들의 경우, 핵발전 확대보다 지역분산형 재생에너지 확충이 더욱 용이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되면 기존 핵발전 국가들의 핵발전 수출의 가능성도 더 낮아질 것이며, 아시아와 세계의 탈핵도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반핵아시아포럼과 반핵세계사회포럼 소개

    ‘반핵아시아포럼(No Nukes Asia Forum, NNAF)’은 1992년에 반핵운동의 한일연대와 아시아연대의 성과를 계승하고자 고(故) 김원식 선생이 제안하여 만들어진 행사로, 일본과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10여개 국 활동가들이 매년 1회 모여서 각국의 반핵운동 성과를 공유하고 쟁점과 운동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 행사는 17차에 해당한다.

    반핵세계사회포럼(No Nukes WSF)은 이번이 처음으로, 2015년 3월 튀니지아의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활동가들이 반핵운동을 주제로 세계 대회를 따로 열어보자고 논의를 시작하여 연말의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5주기와 체르노빌 사고 30주기를 맞아 올해 3월 일본에서 반핵아시아포럼과 결합하여 개최하기로 정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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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사흘은 후쿠시마 현의 이와키 시에서 세미나, 쓰나미 사고 현장 방문, 교류 행사 등 반핵아시아포럼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나머지 사흘은 도쿄의 한국YMCA 건물에서 반핵세계사회포럼의 일정이 이어졌다. 두 행사에는 일본과 한국은 물론, 인도, 터키, 대만, 필리핀, 홍콩, 프랑스, 우크라이나, 캐나다, 브라질 등에서 200명이 넘는 반핵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참고>

    1) 일본은 검찰의 기소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 제도를 두고 있으며, 검찰이 불기소를 결정해도 검찰심사회가 같은 결정을 두 번 내리면 강제 기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2) 대만의 사례는 윤순진, 「대만 반핵운동의 역사와 특성」(ECO 2015년 제19권 2호)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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