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적 가치와 관점에서
'국방안보' 의제의 재구성 필요
[인터뷰] 김종대 정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2016년 05월 16일 1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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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20대 국회의원인 김종대 당선자를 만났다. 진보정당의 국방안보 전문가라는 희소성과 특이함 때문에 여론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이다. 군과 군수산업의 기득권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20대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한다. 레디앙은 ‘국방개혁’이라는 의제에 국한하지 않고, 남북문제, 한미동맹, 안보외교라는 포괄적인 측면에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전문가로서의 역량만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의원으로서의 철학과 관점도 확인하고 싶었다. 김종대라는 20대 국회의 기대주가 국방, 남북관계, 외교안보의 진보적 개척자로 서기를 기대한다. 인터뷰는 12일 목요일 정의당 당사에서 진행했으며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다소 길지만 한번에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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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권 <레디앙> 편집장 : 정의당이라는 소수정당, 진보정당의 국방·안보 전문가로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당선자의 포부나 생각이 궁금하다.

김종대 정의당 당선자 : 군사전문가로서 저에겐 ‘진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국사회에서 매우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국방안보라는 시민공동체, 국가공동체의 가치를 진보적 언어로 재구성해내겠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 사명이다.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진보는 자기 언어를 갖지 못했다. 오로지 보수가 떠드는 데에 대한 소극적 대응 외에는 진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국방안보 분야에서 진보의 사고 체계와 언어가 완전히 공백으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고 결국은 보수의 전유물로, 하나의 권력화된 안보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이 국방안보 분야에서 대립항으로서의 평화만 강조하는 것에서 진보의 사고체계는 작동을 멈췄다. 그래서는 진보정당이 대안 정책정당으로 거듭날 수 없다. 진보적 관점에서 국방안보의 모든 개념과 언어를 재구성하고 군대가 아니라 국민, 시민의 관점에서 국방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대 국회에는 여야 통틀어 국방위원회 지원자가 저를 포함해서 3명뿐이라는 현실에서 드러나듯이 외교안보 전문가 집단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완전히 해체됐다. 저는 범야권의 국방 브레인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가오는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이 유일한 진보적 안보정당으로, 대선에서 충분한 역할도 보장받아 수권 내지는 대안세력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당원들이 가질 수 있도록 활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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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안보와 안보의 진보적 재구성

정종권 : 국가공동체 가치로서 국방안보 문제를 진보적으로 재구성하겠다고 했는데, 이전에 한 매체와 인터뷰에선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더민주의 안보 무능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그런데 ‘유능한’ 안보와 안보의 ‘진보적’ 재구성은 약간 결이 다른 것 같다. ‘안보문제의 진보적 재구성’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김종대 : 진보적 재구성은 시민적 관점에서 국방안보의 재구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 기존의 보수적 가치에 의한 안보는 원래 보수의 의미로부터 일탈해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안보로 구성돼 있다. 애국‧보수‧안보 이런 것들이 그렇다. 이것은 전혀 ‘국민의 얼굴을 닮은 안보세력’이 아니다. 군대는 모름지기 국민을 닮아야 하고, 시민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 이것을 서방에선 문민통제(civil control)라는 개념으로 발전돼 있다.

원래 국방부라는 조직은 국민을 대리해서 군을 통제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국방부는 군을 대리해서 국민을 통제하는 조직이 돼버렸다. 즉 안보에 관한 시민공동체의 필요성이 제기가 되면 어떤 전문가 집단이 그 시민의 안보를 위해 대리인으로, 에이전트로서 전문가집단이 구성되고 그것을 군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군대는 파워, 권력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군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 가치가 이데올로기적 가치로, 시민을 통제하는 가치로 왜곡이 됐던 것이다. 진보적이라는 건 시민적이라는 말인데, 시민이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놓은 하나의 전문가집단이 군대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을 대리해 군을 통제하는 조직으로 기능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안보의 진보적 재구성이라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복무하며 시민의 통제를 받는 군으로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군이 민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 3가지 사례만 들어보겠다. 우선 국방비는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다. 즉 중기국방개혁이라는 5개년 국방개혁이 국가재정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결국은 군이 자의적으로 무기 도입을 비롯한 국방사업을 할 수 있게 되며, 정부의 예산 통제가 안 된다. 두 번째는 조직 통제가 안 된다. 모든 공무원들의 증원 등 조직개편은 행정안전부와 국무회의에서 결정해줘야 증원할 수 있는데 국군의 정원은 장관이 대통령 승인만 받으면 끝난다. 장교와 사병에 다 망라되지만 이 문란함은 장교 정원에서 많이 벌어진다. 세 번째는 국민 안전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군사계획마저도 군 자체에서 완결된다. 노무현 대통령 때 ‘작전계획 0529’라고 하는 북한급변사태 계획에 대한 대통령 승인 여부로 논란이 있었다. 이때 군은 작전계획을 왜 청와대에 보고해야 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했었다.

군대와 관련한 이 3가지가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이런 사각지대 하에서 군이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성해냈고 그 결과가 ‘군의 권력화’다. 자신의 재량권이 이처럼 크다 보니 결국 에이전트(대리인)로 만족하지 못하고 통제 받아야 할 집단이 거꾸로 권력이 됐다. 여기서 민과 군 간의 불화는 끊임없이 조성됐고 민주주의 가치와 안보의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 이르렀다. 한쪽은 안보를 필두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려 하고 시민은 민주주의 관점으로 이걸 견제하려 하는 가운데 민주주의 가치와 안보 가치가 극단적으로 분열했다. 그런데 현대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중요하냐, 안보가 더 중요하냐 라는 것은 아주 의미 없는 질문임에도 한국의 현실 정치에선 통했다. 그것은 이 두 가치를 극단적으로 분열시켰기 때문이고 그 분열은 권력화 현상이었다. 이 부분이 진보와 시민적인 관점에서 국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고 바꿔 나가야 할 과제다.

정종권 : 한국처럼 예산, 조직, 군사계획 등의 요소가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경우가 외국에는 있나?

김종대 : 군국주의 빼놓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군대는 국방부의 기능 왜곡에서 시작됐고, 또 중요한 사실 하나는 군 출신이 바로 군복을 벗고 국방부 장관이 되는 경우인데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미국의 <골드워터 니콜스법>은 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으로 오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콜린 파웰(걸프전쟁을 지휘한 미국의 전 합참의장)이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이 아닌 국무장관이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정종권 : 한국의 군대 시스템의 롤모델이 있나. 한국 헌법 등이 일본과 독일 헌법을 참조했다는 말을 하기도 하던데, 한국의 이 같은 군사 시스템도 어떤 롤모델이 있는지, 또는 그 롤모델에서 일부 요소가 변형된 된 것인지?

김종대 : 정치학에서 군국주의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정부 위에 군대가 있는 경우를 군국주의라고 하고 정부 아래 또는 정부 속에 군대가 있으면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나. 우리 군대는 어떤 경우엔 정부 위에서, 정부에 속하지 않고 기능한다. 이건 군국주의 모델이다. 한국은 군국주의 유사 절반, 민주주의 규범 절반으로 민주주의와 군국주의 사이에서 운영되는 일종의 변형된 군사주의 제도를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한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단지 예전에 사라진 국가들, 일본의 군국주의, 독일 파시스트 체제에서 그 유사성만 발견된다. 지금 북한이나 옛날 쿠바 등의 국가 등 우리와 체제가 다른 나라를 보면 지도자가 자주 군복을 입는데 군대가 정부통제를 받지 않는 군국주의 국가들이 그렇게 한다. 그런 나라들에서의 군대의 위상이 한국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종권 : 14대부터 16대까지 의회 국방위원회 보좌진에서 일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관련 분야에서 일했는데, 정치, 문화 등에선 나름 개혁적인 접근을 했다는 노무현 정권에서도 왜 이런 문제(국방문제의 왜곡과 일탈)를 건들이지 못했나?

김종대 :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상설화하고 대통령이 군을 통제할 수 있는 NSC 사무처를 강화한 것이 군 통제 기능의 출발이었다. 그런데 이게 군과 엄청난 불화를 일으켰다. 정말 바람 잘 날 없이 NSC와 군이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고 ‘작전계획 5029’ 파동도 그 일환이었다. 대통령에 의한 국방 통제는 3가지였다. 정보관리, 정책조정, 위기관리다. 이걸 특정 부처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전단계부터 청와대 주도로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외교안보부처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지만 그 중에도 군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군의 위기로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에서 출범 후 2~3년 동안 정권이 엄청난 혼란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하고자 했던 것이 민간인 출신이 국방부 장관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방부를 군을 통제하는 집단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소위 국방부의 문민화를 표방했다. 이 역시도 극심한 반발 불러일으키다가 참여정부 마지막 국방부 장관은 민간인으로 임명하겠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음에도 2010년 10월에 북한 핵실험, 한미 갈등 고조로 인해 결국 대통령의 의지가 꺾였다. 역시 이 문제도 상당 부분은 법적·제도적인 개선만 하면 바로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치적 갈등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높은 비용을 치렀어야 했고 미흡한 점이었다고 본다.

다음 정권에선 이 문제만큼은 매우 치밀하게 준비하고 전광석화처럼 개혁을 결행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집단을 잘 만들어야 한다. 뜻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개혁은 주체 세력과 섬세한 기획, 정치적 효과까지 고려하며 가급적 비용을 줄이고 계획이 잘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가 집단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당시에 얻은 교훈이다.

정종권 : 그런 국방과 안보 분야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 세력이 있나.

김종대 : 제일 미스테리한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외교안보, 특히 국방영역에서 오히려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개혁 진보세력들이 왜 이런 것(주체의 형성)들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87년 6월 항쟁을 군에서 겪었다. 아무리 민주화운동하고 사회에서 저항운동이 있다 할지라도, 광주 민주화운동처럼 정권의 물리력이 동원되면 말짱 도루묵이다. 내가 군사전문가를 생각하고 고민한 것 또한 진보진영에서 왜, 이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지 않는지에 대한 의구심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그 당시 계엄이 선포되는 줄 알았다. 수도권 인근 부대라서 (계엄령 선포가) 100%라고 믿었다. 그런 두려움 속에서 군 생활을 하다 보니 매우 절박했다. 그 이 후로 제일 황당한 것이 왜 운동을 한다는 분들이 광주와 같은 엄청난 비극을 치를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느냐, 왜 이 문제에 대해 더 연구하고 대비하지 않는 것인가 였다. 군에서 나와 군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온 이유도, 국방안보 영역에서 떠날 수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외국의 진보를 보면 군사전문가가 굉장히 많다. 80년대 독일의 평화운동이 군사전문가 없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많은 군 출신들이 반핵 운동에 가담하면서 전문성을 갖고 전위를 구성했고, 미국의 월남전 이래로 각종 전문가 집단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미국 사회에서 시민운동의 축을 구성하는 등 외국의 경우 군사안보 분야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 집단이 끊임없이 성과를 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 오면 이 문제가 절박한데도 금기시되는지 알 수가 없다.

정종권 : 진보진영에서는 과거 안기부와 같은 기구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반민주적인 국가기구로서 폐지의 대상이었듯이 광주항쟁과 군부독재를 경험하면서 군대를 그렇게 반민주적인 권력기구로 생각하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사고를 좁혀가게 한 듯싶다.

김종대 : 그건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좁힌 것은 분명 우리의 실수다. 군사 전문지를 8년 하면서 <한겨레>와 온라인 웹진을 할 때도 어려움을 겪은 게, 한겨레에서 조금만 더 지원하면 더 확장성 있고 전문성이 있는 내용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게 한겨레 이사회에 올라가면 ‘한겨레가 왜 군사 사이트? 안보?’ 이런 반응이니까 추가 설명도 못했다. 일단 덮어놓고 반발하고 부정적 인식들이 난무했다. 이런 상황에선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고 굉장히 좌절감을 느꼈다. 국방안보 문제는 조선일보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들을 잘 다루면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거대한 인식의 장벽은 비단 보수뿐 아니라 진보진영 내에서도 같은 수준으로 느껴왔다.

정종권 : (과거 진보진영은 군사안보문제에 대해) 가령 주한미군 기지 문제 등과 같은 이슈들, 그리고 그런 군사기구들과 지역주민들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 활발한 활동과 문제의식을 가져 왔던 거 같다. 그런데 김종대 당선자는 국방안보 개혁 문제를 진보진영에서는 평화 문제로 소극적으로 대처한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종대 : (주한미군기지와 주민들과의 관계와 같은 문제는) 결국 다 2차적 의제다. 국방의 정책이 집행되고 나서 그것이 군대 밖으로 영향을 끼칠 때 제기되는 의제이지 군대 내에서의 1차적 의제가 아니다. 나는 국방 그 자체의 1차적 의제를 얘기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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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개혁과 평화군축

정종권 : 국방이나 안보문제에 대한 진보적 접근에는 어떤 딜레마가 있는 거 같다. 군방과 안보 분야의 기본틀은 유지한 상태에서 그 내부에서의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하고 개혁한다는 점 또는 ‘자주국방’이라는 접근법과 ‘평화와 군축’, ‘남북 화해와 군사적 갈등의 해체와 군사력 과잉의 해소’라는 흐름에서 국방과 안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 상호 충돌하거나 선택의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봐야 하나? 과도한 군대 규모와 예산 등의 정당화 근거인 남북 대치 상황을 해체 해소하기 위해 평화와 군축 문제를 우선적으로 제기하는 것과 그런 구조적 조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군대와 국방 내부에서의 개혁을 먼저 고민하는 것은 어느 정도 딜레마적인 것 아닌가. 예를 들어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의미와 우선순위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거 같다.

김종대 :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어떠한 정책 의제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양하게 규정하는 상이한 레벨(수준)들이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관점보단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아무리 평화를 얘기해도 군 내부에선 방어 논리가 준비돼 있다. 예를 들면 평화에 대해서, 보수 쪽은 얼마든지 북한의 현존하는 위협을 부각할 수 있고 그걸로 인해서 우리가 처하게 될 다양한 위협이라든가, 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공포의 노예로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방어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평화 얘기만으론 부족하다. 군에서 방어 논리로 가지고 있는 그 논리가 맞느냐하는 것인지 검증해봐야 하는데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평가, 정보 판단에 대한 근거, 그 정보가 독립적이냐, 정치적이냐 등 이런 것들은 군 내부에서조차도 상당한 논쟁이 있다.

군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면 평화 얘기밖에 할 게 없지만 속살을 한 겹만 벗겨서 내부로 들어가 보면 우리가 반드시 참고하고 개입하거나 주목해야 할 요인이 다수 발견이 된다. 1차적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밖에서의 평화 논의는 안에서의 방어 논리가 준비돼 있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구호성 운동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 더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개입했을 때 성과가 얻어질 수 있다. 일단 정보 관리하는 것이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한다면 개입할 명분이 있다. 납세자로서 공정성은 당연히 요구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평화를 얘기하지 않아도 사실상 평화를 말하는 것과 같다. 진보가 그런 전문성과 유능함을 가지고 거기서 얻어지는 정치적 성과, 효과를 자각하기만 하면 그런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정종권 : 국방문제나 군사문제 관련해 진보적 전문가들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비교를 하자면 검찰과 법원의 문제도 그런 기득권 구조에서는 유사한데, 그래도 그 분야에서는 민변이나 개혁적인 법률가 그룹들이 어느 정도는 존재하는 거 같다. 그런데 국방문제에서는 그런 진보적 전문가 그룹, 주제들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다고 보나? 그런 맥락에서 군대의 장교들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도 필요한 것 아닌가. 민간의 전문가 그룹과는 별개로 군사문제의 직접적 당사자이자 주체인 현역 군인집단에서 그런 개혁적 진보적인 주체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민간의 소수 전문가 집단의 문제제기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김종대 : 선거가 끝나고 뜻밖에 받았던 SNS 메시지가 군 대위, 소령급 청년 장교들의 응원과 기대의 메시지였다. 군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징표라고 본다. 또 군대의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인데, 1937년 일본 군대에서 문민통제가 붕괴된 것에는 일본 육군대학의 문제도 상당히 있었다. 독일에서 유학했던 일본군 장교들이 육군대학을 만들었는데 일본군 수뇌부 거의 전부가 육군대학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선민의식과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편향된 집단으로 기울어졌고 그것이 2차 대전 말기에 침략적인, 광기에 가까운 집단 사고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일본 육군대학은 군사전략에 치우친 나머지 국가 차원의 안보전략을 가르치지 않았다. 큰 틀의 전쟁이라는 것을 통찰하지 못하고 군사 실무자만 양성하는 교육을 했다. 한국군의 교육이 딱 그렇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장교들의 시야를 넓힐 수 있고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 군 내에도 문제의식은 있다. 군 내에서 교육을 받는 육사 출신들조차도 겉에서 보면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동질화된 집단 같지만 상당히 다양한 의식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고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초급 간부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진보도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대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분명히 진정성을 갖고 얘기할 가치는 존재한다. 너무 하나의 이데올로기 집단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미동맹, 전쟁동맹인가 평화의 담보자인가

정종권 : 좀 다른 각도에서, 한미동맹에 관한 질문을 하겠다. 김 당선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그것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물론 전체 맥락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좀 의아했다. 한국의 국방 문제는 곧 남북문제이고 미국, 일본, 중국 등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대외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기본축이 ‘한미동맹’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을 ‘전쟁동맹’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미동맹에 대한 강조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등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미동맹의 기본 틀과 구조는 결국 북한과 중국 등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고, 당연히 미국의 세계전략이나 일본의 재무장화에 대한 수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그 대표적 징표 아닌가 싶다. 한미동맹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김종대 : 그 부분도 역시, 우리가 시대적으로 나눠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80년대까지는 급진주의적 사고가 있었고 그 사고가 운동권의 한 축을 이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여전히 그 유산은 이어져 내려온다. 2000년대 내려와 변화된 인식 보면 우선 6.15와 10.4 선언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조차도 중국이 패권적 행태를 보이는 것을 지적하며 통일 이후에 주한미군 주둔을 수용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냉전시대의 한미동맹은 분명히 전쟁동맹의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게 맞다. 하지만 탈냉전 시대의 흐름을 살펴보고 또 북한의 발언 등을 보면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도 미국이 균형자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면 수용하겠다는 기류가 확인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낸 연구물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사고는, 남북 화해협력 이루고 동시에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유지군으로 변모하는 일종의 평화유지 지역동맹의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거의 전쟁동맹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량 개조해서 써먹자는 것이다. 군사동맹은 그동안에 냉전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수단이었던 시대와 앞으로 평화공존의 새로운 역사에서의 의미는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지역 안정자, 균형 유지,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평화를 유지하는 존재로서의 지속성의 그 효과 정도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부분은 호혜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바꾸고, 그러면서도 가급적이면 한반도 지정학 위기를 고조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을 도모하는 쪽으로 동맹의 기능이 변해야 한다.

예컨대 한미일 삼각안보동맹, 미사일방어 등은 그런 바람에 역행하는 거라고 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이 6자회담의 당사자가 돼서 다자 안보에 기여한다든지 또는 주한미군도 냉전형 붙박이 군대에서 평화유지 역할까지 하는 양상으로 바뀐다면 마다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할 부분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를 감소시키는 방향이라면 그 동맹은 유의미한 점이 있고 지속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써먹느냐 문제지, 동맹 자체를 급진적으로 폐기하거나 단절하자는 주장은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정종권 : 그 논리대로라면 탈냉전 시대에 한미동맹을 고쳐 쓴다는 접근보다는 한미동맹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의 각 국가들이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 아닌가.

김종대 : (한미동맹은) 양자동맹이기 때문에 다자협력체제와 바로 연결되진 않는다. 다만 우리가 미국의 동맹국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6자회담 당사자들도 알고 있고 결국은 중국도 그런 점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 그런 것들이 정치적 의미는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은 동맹 그 자체에 대한 논의가 급한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우리 국가의 취약성 극복 문제가 우선이다.

제가 보기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거다. 두 번째 전시작전권이 없다. 이 두 가지가 누락이 되면 동맹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한반도 안정의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동맹이라면 의존적이 되는 것이고 생사여탈권도 동맹의 선의에 기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동맹이 우리에게 짐이 되고 있다. 동맹의 존폐 논란에 앞서 마땅히 우리가 한반도 안정을 관리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그게 바로 취약성의 극복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함께 아울러서 봐야지, 한 가지 주제만을 고립시켜서 동맹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다.

현재 평화협정 논의해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1953년도에 정전 협정을 맺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반대했다. 맥아더 장군은 북한 김일성보다도 이승만이 더 위험한 존재라고 하고 여차하면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이승만을 제거하는 비밀계획까지 수립했다. 결국 이승만이 끝까지 반대하니까 한국을 빼놓고 정전협정을 한 거다.

미세하지만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얼마 전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한국에 왔을 당시, 우리는 북한의 5차 핵실험 논의를 하려는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를 보니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알고 싶어서 온 거였다. 박근혜 정부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이게 정전협정 시즌2가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가치중립적이고 정상적인 얘기다. 가능 여부 조건도 따져보고 할 수 있는 거다. 그 논의 자체를 한국 정부는 반대 했다. 1953년도에 (이승만 정권이) 했던 바로 그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주변국이 평화협정에 관심을 갖게 되면 우리 정부는 (또다시 논의에서 배제되는)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안보 당사자로서 주변 정세를 주도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고 이런 식이라면 한반도 통일도 한국 주도로 할 수 없다. 우리가 주도하지 않으면 주도를 당하게 된다. 동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지금의 한미동맹은 목적이 된 동맹인데 이건 잘못됐다. 분명한 목적은 우리가 우리 운명의 주인이고 생존 문제는 우리가 개척해야 한다는 거다. 이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있어서 동맹은 긍정적 요인이 있는지 따져보고 그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종권 : 박근혜 정부가 평화협정에 소극적인데, 그 배경에 평화협정에 대한 한국 군의 입장이 소극적인 게 깔려 있는 것인가.

김종대 : 이미 한국의 군 지도부는 평화협정은 주한미군 철수하고 연방제로 남북이 통일하기 위한 (북한의) 의도라고 이미 진단 내린 상황이다. 아주 부정적인 입장인 것이다.

원래 미국의 계획은 노무현 정권 때 전작권 전환에 대한 한미 합의가 있고 나서 이제 곧 전작권은 전환이 된다고 봤다. 그 다음에 한반도 위기관리의 틀이 뭔지를 굉장히 고심했는데 부시, 오마바 정부는 평화체제가 대안일 수 있다고 봤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유엔사령부가 남아 위기관리부가 되고 미국은 유엔사령관의 자격으로 평화협정에 서명을 하겠다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은 평화협정도 미국이 얘기하느냐, 북한이 얘기하느냐에 따라 뉘앙스 차이가 있고 각 국가의 외교적 전략이 들어가 있다. 우리 입장에선 이런 입장을 다 고려해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우리의 구상을 내놔야 한다. 물론 평화협정이 한반도 평화의 입구냐, 출구냐를 두고는 학계에서도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논쟁과는 별개로 우리가 안보의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결단은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고 동맹은 부수적인 것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종권 : 전작권 문제나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이라는 보수정당의 부정적 태도도 있지만, 그런 부정적 여론과 입장을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집단이 군대라고 봐야 한다는 건가.

김종대 : 군대가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저수지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보수집권세력에게 안보 이데올로기를 공급하는 일종의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헌데 군대가 ‘보수적’이라는 것은 바꿀 수가 없다. 노조가 진보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다. 군대의 기본적 속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동서고금 어딜 가도 똑같다. 그런데 군대의 이러한 보수성에 대해서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숙명적으로 외교안보전략은 진보와 보수의 타협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보면 국가는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보이기 때문에 외교안보가 분열이 돼있으면 강대국은 약한 나라에 굉장히 공격적으로 대한다. 만약에 진보가 정권을 잡아도 외교안보정책의 전환을 도모한다면 보수층을 설득해서 전환을 수용하도록 압박과 설득을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진보를 설득하지 않았고 결국은 독주하고 폭주해버렸다.

3

북한, 적대국인가 평화의 동반자인가… “공포의 총량은 불변”

정종권 :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적대국인가, 통일의 동반자인가? 북한 김정은 정권과 이번 북한 7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재확인된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를 듣고 싶다. 북핵을 둘러싼 해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김종대 : (북한 문제가) 우리 사회 내부에서 편을 가르는 중심적 의제 아닌가. 남북관계는 통일을 향한 특수 관계이고 국가 대 국가이지만 그 이상의 관계라고 본다. 또 상당히 많은 무기들이 남측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공격 무기이고 공격적 부대 편성을 하고 있는 등 북한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적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고 본다. 그러나 군대가 곧 국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가에는 국민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 따르는 문화와 정치적인 자기 주권이 있는 거다. 이런 것까지 봤을 때 북한이라는 존재는 근대국가의 형성기에 가졌던 근대국가로서의 과제, 즉 하나의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점에서 통일의 동반자이자 민족 구성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 군사적으론 북한의 상당수 군사력이 언제든 우리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적대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북한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기 때문에 그 지점에선 현실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

정종권 : 핵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의 자체 핵무장 주장도 나오고 있고, 한편에서는 북핵이 일정 정도 자위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 나아가서 결국 남북이 통일되면 핵이 우리 민족의 것이 되는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NPT 제체의 이중성(기존 핵 보유국의 기득권 인정)도 지적되고. 어떻게 봐야 하나.

김종대 : 북핵은 그야말로 세계의 골칫덩어리이자 국제 사회가 제재을 가하는 대표적 사례가 돼버렸다. 강대국 질서라는 것은 핵질서이고, 세계의 그레이트 파워 게임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거다.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인도 핵무장도 묵인됐고 인도에 대응에서 파키스탄의 핵무장도 묵인했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 이거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의 한계 때문에 체제가 생존하기 위해선 핵 억제력에 의존하는 것 말곤 다른 길이 없다는 걸 북한 헌법에서까지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의지는 명확히 드러났다. 결과로선 핵보유국을 지향한다는 게 국시가 돼버렸기 때문에 당분간 이걸 바꾸지 않을 것이다.

20년 동안 진보진영에는 북핵에 대한 진보적 낙관주의가 있다. ‘북한은 핵무장이 목적이 아니다. 대화와 설득을 하고 관계만 맺으면 핵은 해결될 거다’라고 생각해왔다. 문제는 이제 이런 진보적 낙관주의가 설 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다.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북한을 상대해야 하느냐 이 문제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또 앞으로 우리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를 요구하는 외부의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이때 우물쭈물했다간 그대로 색깔론에 말려드는 어려운 국면이 될 것이다.

진보적 낙관주의가 무엇이 문제인지 봐야한다. 물론 우리도(진보진영) 핑계 댈 것은 많다. 한미 보수정권의 북한에 대한 압박이 핵무기 개발을 부추겼다는 등 원인 진단으론 싸울 순 있겠지만 결과로서의 이 상황을 설명하기엔 적절한 답변은 아니다.

나는 우선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핵을 보유한 북한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면 그건 파멸이다. 지구상에서 북한이라는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런 만큼 북핵 혹은 북한에 대해 종말론적인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 두 번째는 우선 핵을 더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핵동결 협상이라도 해야 한다. 핵 폐기가 단기간에 되겠나. 핵동결이라는 예방외교적 관점에서의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이게 실패한다면 북핵에 대한 관리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핵의 사용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여나가면서 유사시에는 핵에 대해 국제적 통제나 감시, 이 부분에 대한 협상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그때는 더 엄청난 외교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고 군사적으로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이런 점들이 우리 사회의 큰 숙제로 남겨져 있다.

정종권 : 북한이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의 가장 큰 대항 담론이 미국의 핵우산 강화, 자체 핵무장 추진 등 북한과 대화를 하든 견제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무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종대 : 최근 사드 논쟁만 보더라도, 사드가 얼마나 실체가 없는 유령 논쟁인지는 전문가들은 양심으로서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핵 무장론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흐름들이 핵무기가 주는 치명적인 영향이다.

생각을 뒤집어 보자. 그러면 북한에 핵이 없었을 땐 두렵지 않았나. 우리가 70년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북한의 전차였다. 우리 육군에 전차가 많은 것도 6.25 전쟁의 경험 때문이다. 또 80년대엔 북한의 특수부대가 무섭다고 했다. 90년대는 북한 장사정포가 대책이 없다면서, 북한 불바다 발언이 나오고 전쟁위기까지 간 거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엔 생화학무기가 북 위협론의 주제였다. 이런 것들이 다 흘러가니까 재미가 없게 됐고 그러다가 나온 게 핵이다. 역설적으로 핵 때문에 남북관계 모든 게 안 된다, 이렇게 하지만, 과거엔 다른 것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공포의 총량’ 자체는 핵이 있든 없든 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정도로 북한과 인접해있기 때문에 공포 그 자체가 습관이 된 것이지 핵이 있다고 해서 바뀐 것은 아니라는 거다. 단지 핵무기의 상징성 때문에 사태가 더 어려워진 것뿐이다. 안보라는 것은 핵이든 대포든 결과는 같다. 우리가 봐야 할 문제는 핵 때문에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핵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것은 또 나온다. 핵 폐기 또는 핵문제 때문에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에 손을 놔버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가당착이다. 그런 것부터 극복해보자는 거다.

정종권 : 한국의 군대 시스템과 국방 문제에서 가장 개혁이 필요한 분야와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군 남녀평등이나 소수자 인권, 양심적 병역거부 등 대한 생각은 어떤가.

김종대 :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국가가 당사자에게 해결해주겠다고 여야 합의로 약속했는데(2007년 대체복무제 추진) 후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좌파정책이라면서 폐기한 거다. 성소수자 문제는 종교문제에 가깝고 군에서 대화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 개선도 가능하다. 군인기본법에 관한 법률도 통과돼서 이미 준비가 돼있다. 예전에 우리가 만든 정책대로 추진하면 된다. 이데올로기적인 저항이 있을 것이고 논쟁하고 부딪히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정당이 다른 말을 한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녀평등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돼서 개선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 이것도 차별금지법이라든지 군인기본법을 통해 부족한 조항을 개선해서 차별적인 것들을 줄여 가면 된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운 건 차별 자체를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차별이 이데올로기화 되는 거다. 이때가 가장 무서운 단계다. 이런 차별 개선하자, 라고 할 때 이런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데올로기가 상대하기 어려운 거다. 차별 그 자체는 어떤 식으로 개선해도 다른 차별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때그때 우리가 대응해나갈 수 있다. 군이 갖고 있는 이런 부분에서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된 차별, 그게 아마 싸우기 버거운 부분이 될 거다.

진보진영에서도 마땅히 진보가 떠안아야 할 의제가 누락된 이유가 자기검열 때문이다. 탈북자 문제나 북 인권, 외국인노동자 문제 등 진보도 감히 건들이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성소수자 문제라든지 병역거부 문제도 사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 했던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런 식으로 국방 안보에는 숨겨져 있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진보에 금기시된 영역을 우리의 언어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국방 안보문제가 진보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게 소극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면, 이제는 진보가 양심적으로 바라보고 떠안아야 할 문제가 있다면 우리의 언어로 얘기하는 걸 예전처럼 망설여선 안 된다. 진보가 많이 놓친 것이 국방 민생사업이다. 장병들의 의료, 인권, 그 속에서의 소수자 고통. 민생 문제 안에는 국방 민생도 있다. 불편하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자세로 가야한다. 진보는 바로 이런 겁니다, 라고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가 될 거다. 그런 것들을 확장하고 확대해야만 비로소 달라졌다, 혁신적이다 이런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종권 : 정의당 의원으로서 정의당 발전에 어떻게 기여를 할 생각인가. 마무리 발언 부탁한다.

김종대 : 일본의 혁신정당이 왜 몰락했는가에 대한 교훈을 새겨야 한다고 본다. 서방의 혁신정당들은 살아남고 최근엔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의 혁신정당은 왜 일찌감치 몰락했나. 역시 사회적 의제 접근에서 편협성과 고루함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였다. 정의당은 원내 유일 진보정당이지만 현재 상태에 정체돼 있는 것이 안타깝고 이러다간 우리도 일본 혁신정당의 몰락의 길을 답습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스펙트럼이 넓은, 다양한 의제들을 관리해낼 수 있는 능력, 포괄적인 진보의 상을 구축할 수 있는, 이러한 정책 정당으로서의 체질을 끊임없이 혁신해나가야 한다. 나는 그것이 ‘진보의 현대화’라고 생각한다.

외교 안보 분야만 봐도 국제정세를 높은 감수성으로 예민하게 관찰하면서 우리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계기를 포착해나가야 한다. 한말이나 한국전쟁, 임진왜란을 보면 주변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통째로 말아먹는 일을 수도 없이 당했던 과거도 있지 않나.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보수가 고루하게 안주할 때 주변의 돌아가는 추세를 면밀히 관찰해서 우리가 어디까지 와있고 어디로 가자고 하는 것인가에 대한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거기서 생산되는 진보의 정책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몰락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겨우 생존의 위기만 모면하는 수준의 선거를 치렀지만 외연을 확장하며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종권 :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진보의 현대화’라는 말이, 진보의 고루함과 편협함에 대해 극복하자는 취지의 말이라는 건 잘 알겠지만 세계 진보정당의 흐름과 역사에서 ‘진보의 현대화’라는 용어는 ‘탈진보’ ‘진보에서의 탈각’를 위해 사용된 측면이 강하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에서 사용된 ‘진보의 현대화’라는 용어들도 그랬다. 현대화라는 맥락에는 과거를 혁신하고 바꿔서 더 나아간다는 측면도 있지만 진보의 성격 자체를 탈색하고 이탈하려는 흐름을 정당화하는 그런 양면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하여튼 김 당선자가 진보적이고 유능하고 의미 있는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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