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ICIJ와 함께 3년째 조세도피처를 추적 보도하고 있다. 갑부와 기업인들은 조세도피처가 필요악이며, 돈은 낮은 세금과 익명을 향해 흐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반면 조세 당국은 역외 탈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가브리엘 주크만은 이 두 주장이 자신들의 탐욕과 무능을 감추기 위해 만든 신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그는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역외 조세 포탈은 여전히 전 세계에 창궐하고 있으며, 인류의 적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근절할 해법을 제시한다. –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김용진
경제불평등 연구의 젊은 기수가 던지는 강력한 출사표
현재 UC 버클리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로, 경제 불평등 연구의 젊은 기수로 손꼽히는 가브리엘 주크만의 선언문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요지는 간단하고 강력하다.
전 세계 조세도피처에 전 세계 가계 금융자산의 8%에 해당하는 5조8천억 유로(약 7,500조 원)가 감춰져 있으며, 이 감춰진 돈에 제대로 세금을 매긴다면 현재 각 나라 정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재정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귀족사회의 도래를 저지하라
조세도피처 문제가 유발하는 가장 1차적인 문제는 물론 부의 불평등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부의 편중 현상은 이제 어느 한 나라의 문제만이 아닌 전 세계의 고민이 되었다. 조세도피처 문제는 부의 불평등을 구성하는 한 축인 분배 문제와 직결된다.
개인과 기업의 자산에 세금을 제대로 매겨서 받아 내기만 한다면, 그 세금은 복지와 조세 등 각종 부의 분배를 구현할 든든한 자본이 될 것이다. 주크만이 말하는 경제정의는 결코 자본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부자들에게 돈을 적게 벌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번 만큼 제대로 세금을 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라
그러나 조세도피처가 유발하는 진짜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인 불평등이 아니라 이로 인한 정치적 불평등이다. 주크만은 현재 전 세계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전야와 같은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프랑스대혁명이 특권 계급의 ‘비과세’ 문제로 촉발되었듯, 오늘날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조세 포탈·조세 회피 같은 조세 불평등이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따라서 유럽 경제위기의 시발점인 그리스 대외 부채의 25배에 이르는 돈을 감추고 있는 조세도피처 문제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파할 단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단 하나의 출발점
이 책에서 주크만은 묻는다. 왜 경제학자들은 조세 도피 문제를 연구하지 않는가? 세계적인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우려하는 부의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 문제를 해소할 답을 옆에 두고 왜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는가? 조세도피처 문제를, 응용 및 실증경제학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그 간과 혹은 무관심이 조세도피처 문제는 ‘기술적으로’ 접근하기도, 해결하기도 어렵다는 일종의 ‘신비감’을 조장했다. 그래서 주크만은 이 책의 일차적 목표를, 스위스 등 조세도피처에 덧씌워진 신비감을 걷어내는 데 두었다.
스위스국립은행(BNS), 프랑스의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주크만은 철저히 공신력 있는 통계에 의존하여 이 책을 썼다. 누구라도 접근 가능했지만, 아무도 전략적으로 꿰지 않은 통계수치들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의미 있는 수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조세도피처에 관한 최초의 진지한 경제 연구
주크만의 스승 격인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는 주크만의 이 책을 일러 “이 분야에 관한 최초의 진지한 경제 연구”라고 평했다. “조세도피처에 보유된 전 세계 가계 금융자산액과 경제 제재 산정액을 제시한 최초의 저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유머 넘치는 필력을 자랑하는 주크만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각종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발표한 통계수치들이다.
주크만은 이 수치들을 가지고 ‘조세도피처에 대항할 실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특히 각국의 지도자들을 향해 공공부채 증가와 국가재정 악순환에 맞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동 계획’을 대담하게 제안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각국 지도자들의 선택에 달렸고, 이 선택의 향배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관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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