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양적완화,
    "사실상 재벌 구제금융"
    김성식 "깜깜이 자본확충, 안 돼"
        2016년 05월 05일 08: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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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구조조정 자금 마련을 위해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모호한 정책의 강행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구조조정 그 자체보다 중요한 사안들은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거론한 후로 구조조정 위기에 대한 단편적 진단은 난무하지만 기업 부실 규모와 자본 확충 목표액, 실업대책,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이후 중장기적 대책 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부의 ‘변질된 양적완화’ 정책… 짓밟힌 ‘국민 알권리’
    “특정기업과 재벌 위한 구제금융” 비판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구조조정 위기와 맞물려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모호한 정책을 내놓았다. 최근 양적완화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가하면서 ‘국책은행 자본 확충’이라는 표현으로 껍데기를 바꿨지만 그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특정 부실기업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서민 경기 부양은 빠져 있다.

    본래 양적완화의 의미는 초저금리 정책에도 효과가 없을 때 등장하는 최후의 경기부양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내용으로 기업 구조조정 자금에 더해 ‘가계부채 해소’를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게 중론이었고 가계부채 해소를 통한 일정 정도의 내수 진작도 기대됐다. 그러나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엔 가계부채는 빠져 있다. 정책의 원래 목적을 환기해보면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은 변질됐거나 혹은 아예 양적완화 정책이 아니라고 보는 편이 맞다.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도 4일 논평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는 부실기업 구조조정 추진을 목적으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해 발권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사실상 재벌에 대한 구제금융”이라며 “경기부양을 위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본래적 의미의 양적완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시급함을 강조하며, 국회를 통해야 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부 재정 투입은 어렵다고 한다. 구조조정이든 양적완화든 정책을 발표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사회적 논의 계획은 없다. 당연히 일반 국민들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부실규모나 양적완화 규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정부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단편적 진단만 내놓으며 ‘우선 돈부터 내놓으라’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이 정책을 내놓았을 때 부정적 반응이었던 정부가 이제와 시급성을 운운하며 편법을 동원하고 ‘알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적 논의라는 중요한 절차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식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4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해운․조선업의 위기가 도대체 몇 조 짜리 이슈인지, 연관된 우발 채무는 어느 정도이며 그 외 잠재된 다른 업종의 부실은 어느 정도인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며 “‘묻지 마 자본 확충’이나 ‘깜깜이 자본 확충’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할 뿐이며 우리 경제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할 수 있다. 이것 없이 즉 이런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확인 없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임의로 동원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경기 부침이 심한 조선․해안업종의 부실을 예방하는 중장기적 대책도 없다. 이럴 경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살려놓은 기업은 또 주저앉아 벼랑 끝 구조조정 위기 앞에 설 수 있고, 노동자는 또 다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식의 대책 없는 구조조정과, 이 구조조정을 위한 양적완화 정책은 경기 부양이 아니라 서민경제 몰락으로 인한 경제 ‘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김성식 최고위원은 “진단이 이뤄지고 투약이나 수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돈만 우선 내라는 식”이라며 “앞으로 또 구조조정 할 일이 생기면 정부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갖다 쓰겠다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해서 나라 전체를 도덕적 해이로 몰아가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한은

    방송화면 캡처

    양적완화의 근거 구조조정…정부 주장대로면 서민 경제 파탄 우려
    “호황엔 불공정 분배…불황엔 서민만 허리띠 졸라매라”

    고통을 균등하게 분배하지 않는 구조조정의 방식도 문제다. 정부는 기업에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대대적 인력조정을 압박하는 반면 대량실업에 대한 새로운 대책도 없다. 실업급여 확대, 지급기간 연장과 같은 일반적 대책과 박 대통령의 관심법안인 노동4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이 고작이다.

    노동자에게는 임금삭감을 골자로 하는 임금체계 개편과 대량해고의 칼을 대면서도 경영진과 대주주 등 경영 책임자의 고통분담은 거론하지 않는다. 기업이 살아나면 기업 총수가 제자리 돌아와 다시 경영을 하고 노동자는 해고되는 기존의 잘못된 구조조정 방식을 답습하겠다는 뜻이다. 노동계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을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사무금융연맹도 “커다란 문제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그 비용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려 할 뿐 부실 경영과 관리·감독 실패에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모든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라며 “3천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은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경험하고 2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직장에서 쫓겨날 노동자들은 ‘경영위기 안전판’ 역할로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성식 최고위원 또한 “호황 때 온다 온다하는 낙수효과는 온데간데없고 불황이 닥치면 사회적 약자, 없는 사람들의 허리띠를 먼저 졸라매는 일이 반복돼 왔다. 산업이 아프다고 하면 일단 협력업체, 하청업체,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분부터 낭떠러지로 내동댕이치는 일이 구조조정이라는 미명아래 자행되곤 했다”며 “한국이 세계 11위의 경제 위상을 갖는 나라라고 한다면 구조조정도 가장과 가정의 입지는 먼저 생각하는 틀과 내용으로 선진화 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양적완화 아니라 ‘민중의 양적 완화’가 필요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이견이 많은 것은 한은이 푼 돈이 고스란히 부유층과 고소득자들만 누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럴 경우 빈부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MB정부 때부터 있어왔던 친 대기업 정책에도 투자가 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경기 부양 효과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는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의 대안으로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이 제안한 ‘민중의 양적 완화(people’s quantiative easing)를 꼽기도 한다. 기존의 기업 지원을 위한 양적완화 정책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 결과, 이제는 저소득층과 서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제레미 코빈의 양적완화는 영국의 중앙은행이 지자체 등 여러 기관의 채권과 자산을 구매하고 그 기관들은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사회 인프라 확충에 투자해 그 돈을 서민층, 중산층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 탈세 단속과 복지 확대와 함께 주택, 교통, 디지털, 에너지 공급구조 구축 등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철도·전기·가스 등 민영화된 사회 인프라 부문을 재국유화하기 위해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중앙은행을 통해 조달한다는 것이다. 부실기업에 돈을 대고 겨우 생명을 연장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 낙수효과를 노리는 우리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과는 상반된다.

    사무금융연맹은 “그동안 양적완화를 실시한 나라들에서는 은행들, 자산관리자들, 헤지펀드, 재산 소유자들만 이득을 얻었다. 이로 인해 불평등과 빈부 격차가 심화됐다”고 지적하며 “한국이야말로 ‘민중의 양적완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무금융연맹은 “가계부채가 1200조에 육박하고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에 내몰리고 저소득과 부채에 허덕이는 한계가구가 150만을 넘어서고 있다”며 “복지 강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불평등을 줄이고 노동자·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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