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다이어트의 여신들
[강남의 속살-4] 눈 돌아가는 남자들 시선을 받는 설렘
    2012년 07월 30일 05: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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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운동화에 백 팩만 매다가 어떤 날에는 나도 힐과 백을 고집한다. 어떤 남자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고 싶은 그런 날, ‘초초’ 핫팬츠를 입고 초고층 힐을 발밑에 세우고 도도하게 걷는다. 햇살 좋은 어떤 날, 기다란 양산이 되고 싶은 그런 날이 있는 거다, 있다고.

근데 옷과 신발만 가지고 누구나 양산이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요 놈의 포동포동 몸뚱이. 원하는 샤프한 느낌이 안 나올 때, 우리 여자들은 자기 신체를 증오하게 되고 이를 악 물고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봤던 그 몸짱 누구누구처럼 되리라, 막 이러면서 사랑해 마지않던 육류와 밀가루, 그리고 내 식사의 주류(main)에 속했던 주류(알코올)님에게도 일방적 이별을 통보한다.

다이어트의 고통은 다이어트 성공이라는 결과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면 그곳에는 늘 그만한 대가가 있다.

44kg이던 시절의 나 역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했었다. 알콜 중독 대신 운동 중독이던 나는 매일 두 시간 씩의 요가 및 유산소 운동을 했고 운동을 하면서 오는 오묘한 고통을 미묘하게 즐겼던 나.

그 때의 나는 거리를 다니며 ‘우월감’ 같은 걸 느꼈었다. 내 군살 하나 없는 다리며 배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신체에 붙은 ‘살의 양’을 게으름의 결과로 병치시키며 그들에 대한 ‘무시와 경멸’의 눈빛도 잊지 않았다. 그토록 재수가 없었으니 주변에 여자사람들 누구도 나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키 크고 늘씬한 여자사람들이 여기도 슥, 저기서도 슥, 나타나는 여기는 압구정. 과거 내 나름의 황금기였던 44kg, 44size의 나보다도 훨씬 더 늘씬한 여자들이 그 때의 나보다 더 재수 없는 표정으로 나와 같은 평범한 여자들을 무시하며 걸어 다닌다.

그 중에서도 하물며 요가원인데, 결코 평균이 아닌 ‘44’들이 요가 룸 안을, 탈의실을, 로비를 태연히 지나고 있었다.

나의 몸이 아니라 타인의 몸을 탐하게 만드는 연예인들 몸매 사진들

M은 이미 44(kg), 44(size)라는 여자들이 꿈에 그리는 몸매를 갖고 있었다. 우리 요가원의 유명한 ‘몸짱녀’였던 그녀.

그녀는 매일 아침 두 시간씩 파워 워킹을 하고 우리 요가원에 왔다. 간단히 샤워 후 다시 한 시간 반 동안의 남들보다 1.5배 긴 개인 레슨을 받고는 그것도 모자라 집에 가서 ‘스페인어’를 들으며(자기계발을 위한 취미생활이라고–) 러닝머신을 뛴다. 그밖에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헬스에 가서 PT를 받는 M은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못 살 명백한 운동중독자였다.

‘모범 수강생’상이라는 걸 만든다면 M을 줘야 했다. 언제나 손에 들려있는 제로 칼로리 음료와 땀이 흐를 것을 대비해 이마에 두른 튼튼해 보이는 헤드 밴드, 그리고 몸에 찰싹 달라붙어 근육의 움직임을 보여주면서도 땀 흡수력도 좋은 N** 브랜드의 운동복…

운동이 끝나기 전후로 인바디 측정기 위에 올라가 운동 전후 사이 0.1그램 단위로 변화한 몸무게를 체크하는 M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녀에게 김연아 코치를 맡긴대도 무리 없이 해낼 것만 말 도 안 되는 신뢰감이 들곤 했다.

숭고함. M의 신체는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숭고함 그 자체’를 느끼게 했다. 그녀가 얼마나 괴로움을 참고 열심히 운동을 하는 지 아는 우리 요가원의 회원들과 그녀를 가르치는 강사인 나까지- 우리는 모두 한 편의 신화 같은 그녀를 보면서 입이 떡 벌어지곤 했다. 꼭 여자 버전의 가수 ‘비’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자기 관리의 극치라는 점에서.

M의 몸 관리는 그 자체로 자발적 형벌이었고 아무나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길이었다. 그 좋은(!) 술은 한 모금도 입에 안댈 뿐더러, 패스트푸드는 무조건 패스, 고기를 위시한 일절의 지방 함유 음식들을 모조리 멀리하는 M.

늘 차와 함께 다과를 대접하던 우리 요가원의 호의조차 그녀에겐 그저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귀찮은 유혹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냉정하게 거절했을 무수한 술자리와 지인들의 호의를 상상하자 나는 그녀가 무슨 낙으로 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M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여자가 우리 요가원에만 해도 두 명 쯤 더 있었고 과거의 나도 비슷했다. 아마도 숱하겠지. 다이어트에 중독되어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리고 사는 여자들이.

그녀들이 그렇게 스스로 ‘식도락’이라는 인생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를 포기하게 하는 원동력은 뭘까. 그건 아마 그토록 수많은 여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각오하고서 성형외과 수술대 위에 눕도록 하는 것과 같은 거겠지?

어느 날 내가 M의 신체를 칭찬하자 그녀가 놀라운 말(또는 망언…)을 한 적이 있었다.

“제 몸이 예쁘다고요? 감사한데요. 선생님,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제 몸은 형편 없어요(나, 표정 관리 안 됨. 정색.).
선생님은 ‘볼륨’이 있잖아요(헐! 나, 표정 관리 계속 안 됨.).
전 몸이 마르기만 했어요(헐!! 점점 더 안 됨.)
거기다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헐!!! 그녀는 겨우 스물다섯… 나는… 할머니냐?)
자꾸 뱃살이 붙는 것도 정말 고민되고… 요즘 저 미치겠어요.”

그녀가 남자였고 내가 남자였다면 좋겠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간절히 바랐다. 한 대 좀 치게… 휴… 그 말을 들어주며 내 주먹을 다스리느라 순간 25년은 더 늙었던 것 같다.

그러나 M은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마 그 말이 정말, 그녀의 진심이었을 거란 걸 눈빛을 보고 알았다.

그녀는 자기 몸이 불만인 거다. 만족하는 순간 풀어져 버릴까봐 계속해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더 ‘완벽’한 신체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 그것이 다이어트의 여신이 되고 싶은 여자들이 가야 할 길이다. 절대 만족하지 말 것. 계속, 더, 더 마르고, 그러면서도 볼륨은 있는 말도 안 되는 기형적 몸매를 향해 끝없이 내 몸을 괴롭히기.

미친 다이어트. 그게 얼마나 여성의 신체에 대해 잘못된 잣대를 들이댄 결과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인 지, 우리 모두 다 안다. 잘 알지, 근데 알면서도 막상 쭉쭉 빵빵한 여성의 몸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고 맘이 동하는 남자들과, 그런 시선을 받는 그녀가 나이고 싶은 여자들인 우리는 오늘도 미친 다이어트에 뛰어들고 있다.

M 같은 다이어트 여신들의 숭고한 신체를 보며 남녀 모두 각기 다른 환상을 품고 설레고 있다. 도대체 문제가 뭘까.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술과 고기? 아님,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쓸데없는 욕심과 오기? 아. 요즘 조깅 좀 했더니 살 좀 빠져서 안 맞던 옷들이 다시 맞는다. 기분 좋~단다. 이 여자가, 이런 글 쓰면서 이러고 있다.

필자소개
현재 요가 강사이며, '자칭 소설가, 작사가, 일러스트레이터 & 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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