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사업본부,
    연가냈다고 조합원 중징계
    매년 빠지지 않는 산재사망 다발 업종, 집배원
        2016년 04월 28일 05: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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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집배원 A씨는 업무 중 등기 10통을 잃어버렸다. 워낙 업무가 많다보니 집배원 사이에선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발송업체 등에 문의해 재발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A씨는 등기 10통을 분실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와 연고지와는 관련 없는 지역으로 전출 당하고 21개월간 승진도 어려워졌다.

    2. 집배원 B씨는 연가를 내고 ‘장시간·중노동 철폐, 토요택배 저지 1시위를 하던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연가가 반려됐으니 당장 회사로 들어오라는 전화였다. 연가를 신청하면 반려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B씨는 회사에 부당노동행위라고 맞서며 복귀하지 않았고 감봉 2개월, 타 지역 전출은 물론 성과급도 받지 못하는 이중 삼중의 불이익 처분을 받았다.

    3. 집배원 C씨는 토요근무제가 부활한 이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시간이 거의 없다. 일주일 중 유일한 휴무일인 일요일에 겨우 시간을 내 가족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는데 회사에서 체육대회 개최 공지가 났다. 그간 체육대회 참석은 직원 자율에 맡겨왔기 때문에 이날도 구두로 참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C씨는 회사에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점심 주문 등 때문에 참석 가능자 명단만 받던 회사가 체육대회도 ‘업무의 연장’이라며 불참 사유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라는 것이다.

    4. 집배노조 조합원 D씨는 요즘 들어 국장과 과장과 면담이 잦다. 막상 면담에 들어가면 ‘애들은 잘 크냐’ 등과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게 한참 쓸데없는 수다를 듣고 내려오면 동료들이 수군거리다. ‘쟤 또 불려 올라갔대. 저러다 징계 받는 거 아니야?’ 회사에선 노조하면 번거롭고, 불이익 받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파다하다.

    집배노조

    집배노조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위 사례는 모두 전국집배노동조합이 출범한 이후 조합원에게만 벌어진 일이다. 4월 13일 출범한 집배노조는 26일 고용노동부에 설립 필증을 받았다. 그러나 사측인 우정사업본부는 여전히 집배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역의 각 국에선 집배노조가 소속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를 ‘전문시위꾼’으로 폄하하며, 우정노조 탈퇴를 만류하고 집배노조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

    집배노조의 탄생은 우정노조의 어용화가 극에 달한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 우정노조는 대부분의 조합원이 반대 의사를 표한 토요근무제를 회사의 구조조정 핑계를 대며 부활시켰다. 노동자가 아닌, 사측의 입장을 배려한 결정인 셈이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우정노조가 노조로서의 생명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토요일 근무 시 휴일수당+2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내용을 합의에 포함시켰지만, 지금까지 이 합의가 지켜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사측의 입장을 ‘배려’하는 우정노조는 조합원조차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유령노조’에 가깝다. 우정사업본부에 입사하면 자동 가입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조합원 중엔 노조위원장이 누군지, 위원장 선출을 왜 하는지, 노조비는 왜 내는지, 노조 운영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각 국의 지부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조합원도 있다. 한 번은 한 우정노조 조합원이 집배노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며 “위원장 직선제? 이거 뭐야?”라고 물은 일도 있었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노조 선택권을 빼앗아가 버린 결과다.

    그 이전부터도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근무환경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많았다. 집배 노동자들은 지금도 하루 11시간에서 최대 16시간까지 근무한다. 초장시간 근무 때문에 우정사업본부는 매해 빠지지 않고 산재사망사고 발생 기업 명단 상위권에 오른다. 지난해 산재사망대책 마련 공동캠페인단 등에서 진행한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에서도 우정사업본부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등 건설사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산재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생각되는 건설사, 중공업 외에 10권 내 기업은 우정사업본부가 유일하다.

    우정사업본부 내 산재사망사고 대부분이 교통사고나 과로사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최대 밤 10시까지 근무한다. 도저히 오후 7시까지 마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후 7시가 지나고 나선 시간외수당도 받지 못한다.

    집배노조는 28일 오전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정사업본부의 노조활동 방해와 탄압을 강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정당한 집배노조 활동 보장 ▲노동자의 조합 가입 선택 보장 ▲인력구조조정 중지하고 적정인력 확보 ▲토요근무 철폐하고 주5일제 실시 등의 요구사항을 거듭 강조했다. 노조는 이미 수차례 이 같은 요구안을 우정사업본부에 전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합원에 대한 감시와 징계뿐이었다.

    회견에 참석한 박용원 노무사는 “우정사업본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노동법에 있어서 괴물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기본적인 노동3권도 지켜지지 않고 온갖 비위와 탄압이 그 속에 있다”며 “이런 상황이 유지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런 사용자를 견제할 수 있는 노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승묵 집배노조 위원장은 “작년 토요근무제에 노사가 합의하면서 우정노조의 생명은 이제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2000년도 초부터 잠자는 시간 4시간 빼고, 초장시간 근로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로사로 숨지는 과정에서도 노조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우정사업본부 현장에선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이 통용되지 않았다”며 “집배노조는 집배원이 더 이상 죽지 않고 골병들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의 모든 부조리한 상황을 바로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정노조는 아직도 노조 위원장을 ‘간선제’로 뽑는다. 이에 몇 년 전부터 우정노조 내에서 직선제로의 전환을 추진했지만 지난 3월 24일의 우정노조 대의원대회는 간선제 유지를 결정했다. 3월 중순 직선제 여부에 대한 조합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8%가 직선제를 선택했지만 대의원대회에서는 55%만 찬성하여 규약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를 넘지 못한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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