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그랬을까
    [그림책 이야기] 『친절한 행동』(재클린 우드슨 외/ 나무상자)
        2016년 04월 28일 10:2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거부할 수 없는 그림책

    저는 개인적으로 직설적인 교훈을 담은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술은 누군가를 직설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은유적으로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노골적으로 교훈적인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는 사실적인 그림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적인 그림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상상하는 재미를 덜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사람인 경우보다는 동물인 경우에, 흔히 ‘우화’라고 불리는 이야기에 저는 더 끌리는 편입니다. 제 안에 동물적인 성향이 더 강해서인지 아니면 제가 동물에게서 더 인간적인 향기를 느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림책 『친절한 행동』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제 취향과는 맞지 않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고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절한 행동

    그해 겨울 온 세상에 눈이 새하얗게 내렸다

    눈이 하얗게 내린 어느 겨울 아침, 담임 선생님은 한 여자 아이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옵니다. 아이의 이름은 마야였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그림 작가인 루이스는 이 장면을 아래서 위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고개 숙인 마야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고 오히려 고개를 든 선생님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고개 숙인 마야의 얼굴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마야의 시선을 따라 마야의 옷차림을 향합니다. 낡은 코트, 낡은 옷, 봄에 신는 얇은 신 그리고 끊어진 신발 끈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마야가 하필 ‘내’ 짝이 됩니다. 마야는 ‘나’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습니다. ‘나’는 마야에게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앉았고 마야가 ‘나’를 보면 ‘나’는 창밖에 소복이 쌓인 눈만 바라보았습니다. 도대체 주인공 ‘나’는 왜 이러는 걸까요?

    그날부터 매일 나는 마야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야는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미끄럼틀 옆에 있었습니다. 마야는 우리에게 두 손을 펼쳐 보였습니다. 한 손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공기돌이 있었고 또 한 손에는 새빨간 공이 있었습니다. 마야는 생일 선물로 받았다며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마야와 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야는 혼자서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그날 오후 마야는 올해 누가 공기놀이 세계 챔피언이 되었는지 아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은 앤드류가 클로이(나)한테 새 친구가 생겼다고 놀려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앤드류를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내 친구 아니야!”

    ‘우리’는 왜 그랬을까?

    ‘우리’는 왜 그랬을까요? 왜 마야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마야가 ‘우리’한테 해를 끼친 적도 없는데 왜 ‘우리’는 마야와 말도 섞지 않고 밥도 같지 먹지 않고 함께 놀지도 않고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은 걸까요?

    게다가 마야는 포기하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왔는데, 말도 걸고 함께 놀자고 했는데, 왜 ‘우리’는 마야의 친절을 거절했을까요? 도대체 ‘우리’와 마야는 뭐가 그렇게 다른 걸까요? 어차피 모두 다른데 마야가 ‘우리’보다 더 가난한 게 왜 그렇게 문제가 되었을까요? 누가 ‘우리’를 이렇게 가르친 걸까요?

    ‘친절한 행동’은 아예 없었다

    ‘우리’는 친절하기는커녕 점점 더 대범하게 잔인해졌습니다. ‘우리’는 마야를 놀리고 또 놀렸습니다. ‘우리’는 마야를 따돌리고 또 따돌렸습니다.

    저는 마야가 혼자서 줄넘기를 하며 운동장을 달리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캔드라가 마야를 ‘재활용 가게’라고 놀리자 ‘우리’는 모두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때 마야는 울타리 옆에 줄넘기를 들고 서 있었는데 처음으로 ‘우리’에게 놀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 마야는 줄넘기를 하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쉬지 않고 운동장을 돌았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그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결말

    이제 마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주인공 ‘나’는? 아마도 그림책 『친절한 행동』을 끝까지 보고 난 독자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충격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이 책의 결말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이 책은 제 취향의 이야기도 아니고 제 취향의 그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루이스의 그림에는 자연의 찬란한 빛과 비정한 현실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그리고 너무나 슬프고 아름답게 담겨 있습니다.

    우드슨의 글과 루이스의 그림은 짝을 이루어 독자의 눈물을 훔칩니다. 지금도 제 눈앞에는 환한 햇빛 속에서 줄넘기를 하며 달려가는 마야의 슬픈 얼굴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