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자르는 게,
    정부 구조조정 대책의 전부?
    노동계, '노사정 조선산업발전략위' 구성 제안
        2016년 04월 27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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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업종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의 방향이 조선업에 더 큰 불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종 빅3 업체에 기업별 자구계획을 요구, 그 내용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전날인 26일 관계부처가 참석하는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협의체를 열고 5대 취약업종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는 경기민감업종으로 분류된 조선·해운업의 인력구조조정을 압박, 사실상 노동자 감원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칼을 대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장에선 비정규직을 우선으로 이미 해고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709명을 이미 감축했고 2019년까지 2천여명을 추가로 감축한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지난해 각각 1천533명과 1천500명을 해고했다. 올해 말까지 조선업종에서만 최대 2만 명 규모의 실업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 구조조정 방향, 조선업에 더 큰 불황 가져올 것
    대량해고 압박하면서도 실업대책도 없어

    노동계는 정부의 이 같은 구조조정 방향이 조선업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비판한다. 설비투자 등을 중심으로 여타 산업과 달리 조선업의 경우 인력·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가 집중된다. 이 때문에 신규인력 채용 등 인력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술력 저하로 인해 향후 또 다시 적자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정부는 대량해고를 주문하면서도 고용대책으론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검토 정도만 제시했다.

    조선

    금속노조와 조선노연 기자회견(사진=유하라)

    금속노조·조선업종노조연대는 27일 오전 금융위원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노·사·정 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 설치 ▲조선업종을 ‘고용위기업종’으로 지정 ▲제조업강화특별법 제정 등을 제안했다. 이들은 “어떠한 전망과 대책도 없이 노동자를 잘라대는 정부의 구조조정을 전면 반대한다”며 “조선산업의 지속성장이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 인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한 올바른 방식을 촉구하는 것이다.

    ‘노·사·정 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는 정부, 조선공업협회(현대중 대우조선 삼성중), 금속노조·조선노연으로 구성하고 조선산업 발전전략, 사내하청 사용금지 및 조선소 노동자 총고용 보장 등을 주요 의제로 한다. 고용위기업종 지정은 실업급여 확대, 고용보험 적용 화대, 최저임금 현실화, 직업훈련 지원 및 고용대책 등 근본적인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책이 주 내용이다.

    백형록 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은 “기존에 있던 기술자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력 충원해서라도 기술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조선 3사 노동자들 모두) 정부가 고용유지정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도 이날 조선업종 구조조정 현안 대응 간담회에서 “인력 구조조정이나 이런 것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되어야 한다”며 정부의 특별고용업종 지정 검토에 대해선 “2만 단위를 넘는 이런 실업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범위에서의 어떤 정책수단 가지고는 택도 없다. 거제, 울산 같은 곳을 재난지역으로 지정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업종 노조는 내달 4일 긴급 대표자회의를 소집해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식과 대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나온 대안을 바탕으로 정부에 대화를 제안할 예정이다.

    사람 자르라는 정부, 구조조정 이후 대책도 없다

    정부의 구조조정 이후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 경기에 민감한 조선·해운업에 맞은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를 유도한다. 우리 정부도 구조조정에 앞서 이 같은 대책을 내놓는 것이 우선돼야 함에도 구체적인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성과연봉제나 임금삭감 등 노동개악을 추진하기 위해 구조조정 몰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박정미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그저 회사가 적자 나니까 사람 자르자, 그게 정부 대책의 전부”라며 “그 이후에 조선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나 고용 문제에 관한 근본적 대책이 하나도 없고 사람 자르는 단기적 방식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도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을 보면 위기 증폭해서 노동조건 하락시키고 저임금 만드는 게 최대 목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부실, 정부와 산업은행은 왜 책임에서 빠지나

    조선업종의 위기는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미 조선업종 노조들은 2012년부터 정부에 조선산업의 장기발전 전략이나 고용 문제, 물량문제 해결을 대책을 논의하자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등과 같은 사용자단체와 국회, 정부 모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조선업종의 위기는 해양플랜트 산업의 과잉·중복투자가 가장 큰 배경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유가 시대에 들어서면서 빅3 모두 해양플랜트 사업에 투자를 쏟아 부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석유 가격이 폭락하면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특히 산업은행 산하에 있는 대우조선은 가장 큰 부실적자를 떠안게 됐고, 지금은 빅3 중 가장 부실도가 높은 기업이 됐다. 정부가 조선업의 위기를 안일하게 대처하지만 않았어도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는 경영권을 가진 산업은행과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상임대표도 “부실이 심화되는 과정에서도 대주주나 경영진들이 상당한 배당을 받은 바 있고, 후순위채 발행, 각종 분식회계 등 불법들도 많이 자행됐다”며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책당국이 이런 부실과정을 또 방조하고 키우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정책당국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도 분명한 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미 정책실장 또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과 달리 대우조선이 가장 많은 부실을 냈다는 건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최대 책임자인 산업은행, 정부는 책임에서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금속·조선노연도 “대우조선은 정부의 정책이나 방향이 가장 먼저 실행될 수 있었는데도 그 시기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이제와 정부는 대우조선의 대규모 부실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오직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소 노동자들의 수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무능경영, 부실경영을 낳은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며 “대우조선 부실경영, 무능경영 책임을 물어 산업은행장을 해임하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 무능 경영 최고 책임자는 즉각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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