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국회, 탈핵 가능할까
    [에정칼럼] 지역의 탈핵 토대 필요
        2016년 04월 22일 10:1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20대 총선은 ‘의외’라는 말로 정리가 가능할 듯하다. 여소야대가 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고, 창당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국민의당이 이토록 호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모두의 예상과 맞았던 것이라고는 진보정당들의 험로뿐이었다.

    이런 결과에 각 당도 충격을 받았는지, 20대 국회 개원 전부터 일하는 척(?)을 한다. 사실상 내년을 염두에 둔 언론 플레이에 가까운 움직임에 불과해보이지만, 어쨌든 시민들로서야 정당들이 예전과 다른 행보를 보여주니 나쁘지만은 않은 눈치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당들이 어떤 일들을 하려고 하는지 지켜보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당들이 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역대 최악의 깜깜이 선거로 진행된 탓에 정당들이 총선 당시 내세운 공약은 개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우리나라 선거는 정책선거가 아닌 ‘심판선거’, 혹은 ‘분노선거’가 된 지 오래 됐다. 그러니 정당들도 공을 들여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이 뭘 하려고 하는지, 뭘 지키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던 탈핵․에너지전환 문제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방사능 먹거리, 밀양 송전탑 사태, 파리 기후변화협약 등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취업난, 경제난 등 다른 민생 의제들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요 정당들이 해당 의제에 관해 공약은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게 더 큰 원인이 됐을 터다. 거대 정당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 총선 과정에서 탈핵이 이슈화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시민단체들이 탈핵과 기후변화를 이슈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당들이 정책을 내놓지 않으니 탈핵․기후변화 이슈를 내놓은 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이 유일했다. 정책 비교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시민사회는 정당 차원의 접근보다는 핵발전소가 위치해 있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의 후보를 대상으로 개별 조사를 실시했다.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총선 전 탈핵후보가 81명으로 확인이 됐다고 낸 보도자료나, 총선 이후 탈핵후보 중 19명이 당선됐다고 낸 논평은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20대 국회에서는 탈핵을 향한 발걸음이 가능할까? 결과를 보면 ‘글쎄, 아니올시다.’에 놓여 있다. 일각에서는 탈핵을 표방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기 때문에 탈핵의 초석을 깔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희망이 있는 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부풀려진 풍선에 가까워 보인다. 도무지 방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탈핵

    총선에서 탈핵을 공약한 유일한 원내정당 정의당(사진=정의당)

    정당 차원에서 탈핵을 약속한 것은 6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정의당과 원외정당으로 머물게 된 노동당, 녹색당뿐이다. 원내 1당이 된 더민주당은 별도의 탈핵 공약 없이 시민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18대 대선 당시 탈핵을 약속했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심지어 해당 담당자는 더 강력한 탈핵 공약을 요구하는 청중들에게 “밖으로 나가서 시민들 좀 만나보라”며 친절하게(?) 충고까지 하는 해프닝을 선보였다. 진정성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종인 대표의 최측근인 한 당선자는 더민주당 당선자대회에서 “성장이 최대의 복지요, 최고의 분배”라며 전형적인 파이론을 주장했다. 성장 중심의 우클릭이 화두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성장론이 전면에 나서면 당연히 탈핵․에너지전환 문제는 후순위로 놓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퇴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탈핵에 적극적이던 19대 의원 중 20대 국회 생환자가 거의 없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나마 더민주당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에너지 정책은 아예 내놓지도 않았다. 신생 정당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사회․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인인 에너지에 관해 거의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무관심과 정책능력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다. 20대 국회 기간에 탈핵․에너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만한 의원도 전문가 그룹도 보이지 않는다. 더민주당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성향을 감안하면 정책의 변화를 이끌 것이란 기대조차 어렵다.

    새누리당은 아예 대놓고 탈핵을 반대한다고 표방했다. 노후원전은 수명연장을 통해 재활용할 계획이고, 신규원전 건설을 통해 핵발전 비중을 높이겠다는 게 당론이다. 에너지전환은 신산업 발굴이라는 산업정책을 통해서만 접근하고 있고, 분산형 전원체계를 만드는 데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탈당자 복당을 통해 조만간 원내 1당이 될 것이 확실하고, 적어도 내년까지는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올해 말에 만들어야 하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내년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자신의 입맛대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원내 정당 중에는 유일하게 정의당이 탈핵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던 의원들이 모두 낙마한 상황이라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거대 정당들 사이에서 얼마나 제 목소리를 내고 이슈를 주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과 같은 시민사회는 그래서 개별 후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 19명의 탈핵 당선자를 왕왕 언급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큰 의미가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고리 핵발전소가 위치한 부산에서는 당론이 핵발전 확대인 새누리당 의원이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탈핵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견고한 보수 당론을 넘어서기 어려워 보인다.

    영광 핵발전소가 위치한 전남에서는 에너지 정책공약이 없는 국민의당 후보가 대거 당선됐다. 개인적으로 탈핵을 약속한 후보들 역시 직접적 이해관계가 높지 않은 광주지역 당선자들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인근 지역 후보자들은 적극적이지 않아 과연 탈핵을 주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규 핵발전소가 예정되어 있는 동해삼척시에서는 탈핵을 지지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지만, 새누리당 탈당자여서 복당 가능성이 높다. 탈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론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20대 국회는 오히려 탈핵의 가능성이 19대 국회 때보다 더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정당들의 성장 중심주의 강화, 의제에 대한 관심 결여, 탈핵 인사의 부족 등 총체적 난국이다. 정치적 립서비스에 불과할지도 모를 개별 후보들의 탈핵 약속 하나만을 가지고 탈핵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지금은 오히려 악화된 상황을 인정하고, 탈핵 진영이 의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게 더 중요하다. 탈핵은 세계적 흐름이라는 논리 하나만으로는 사회의 무관심을 극복할 수 없다. 시민들의 선거 결과는 성공적이었는지 모르지만, 탈핵 진영은 확실히 실패했다는 뼈아픈 성찰이 앞서야 한다.

    중앙 정치에서 탈핵이 어려워졌으니 다시 지역에서부터 탈핵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 각 지자체들이 수립하고 있는 에너지계획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더 많은 전환 사례를 만들어 사회를 설득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대선에서 우리는 더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