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기업 구조조정,
    ‘노동 공격’ 방향은 오히려 부작용
    정치권, 필요성엔 공감...방향에는 이견 존재
        2016년 04월 21일 08: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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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야당들이 이례적으로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량실업에 대한 실효적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정부는 노동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실업대책으로 내놓고 있어 동력을 잃은 19대 국회 쟁점법안 처리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세계경제 불황 등 복합적 이유로 한계기업의 수가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엔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한 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파산만 면하고 있는 업체를 뜻한다.

    20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금융사와 2015년 사업보고서·연결감사보고서 미제출 기업을 제외한 380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을 조사한 결과 3년 연속 1 미만인 한계기업은 33개사(8.7%)에 달한다. 2년 연속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잠재적 한계기업까지 포함한 비율은 11.3%다.

    이자보상배율이란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1보다 작을 경우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자보상배율이 통상 1 미만이면 잠재적 한계기업으로 보고 3년 연속 1 미만을 기록하면 한계기업(좀비기업)으로 간주한다. 영업손실을 내게 되면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로 나타난다.

    33개 한계기업을 업종별로 따져보면 건설 및 건자재 관련 기업이 9개, 석유화학과 조선·기계·설비업종 기업이 각각 6개, 운송업체 3개, IT전기전자 및 철강업체 각 2개가 한계기업 상태에 해당했다. 이밖에 종합상사와 생활용품, 식음료, 에너지, 자동차·부품 업체 중에서도 각 1개도 한계기업에 포함됐다.

    이들 중 구조조정이 시급한 완전자본잠식 기업은 3개사, 부분자본잠식 기업은 10개사에 달했다. 12개 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해서 이견은 거의 없는 분위기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구조조정으로 우려되는 실업에 대해 기존의 법적 보호 장치가 있다”며 추가 검토 법안에 대해선 “노동개혁 4법 중 고용보험법이나 파견법은 실업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돼도 고용에 도움이 된다”면서 남은 19대 국회 임기 내에 이들 법안의 통과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본질적이고 보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져야만 앞으로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실업 문제를 사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정부가 준비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또한 “구조조정을 넘어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우리 기업의 부실은 몇몇 기업 차원을 넘어서 주력산업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계기업 구조조정 그 자체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기업 구조조정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대주주와 경영진은 보호하고, 노동자와 협력사에게 비용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선 안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지 않다. 정부의 구조조정이 최소 한계기업 정리가 아닌, 대량해고를 통한 인건비 절감이 목적이라면 가계 파탄으로 인한 최악의 경제불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구조조정의 필요성만 강조할 뿐 사회안전망 대책에 관해선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구조조정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우려되는 지점이다.

    남종석 부경대 경제학 강사는 “경쟁력 없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은 일정하게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해서 기업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노동 공격’ 방식의 구조조정은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 교수는 “정부가 말하는 구조조정의 방향성은 노동을 공격하는 쪽에 굉장히 가깝다”고 했다.

    노동4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대량 실업의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이 노동계에 칼을 꽂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의심을 증폭시킨다. 이 법안들은 20대 총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19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낮은 법안으로 점쳐졌었다.

    정승일 정치경제학 박사(사민주의센터 대표)는 “서비스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결국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영역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과연 고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제2의 제조업에 대해 더 많은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조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이 일자리 창출에 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노동조건 악화나 민영화 등과 같은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대량해고를 막기 위해 고용조정이 아닌 임금조정의 방식의 대안도 제기되고 있다. 임금조정을 통한 절약분으로 대량해고를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안은 이미 노동계에서도 나온 것이다.

    노사정 공동결정제를 도입하는 대안도 있다. 과거 기업 중심의 폐쇄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노동자를 포함한 지역사회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구조조정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승일 박사는 “이사회에 노동자가 참여해 정말로 해고가 필요한지 함께 검토하고 책임지는 노사공동결정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노사정은 물로 지역시민단체나 복지단체가 대책위를 구성해서 실직자에게 어떤 복지를 제공할지 등을 복합적으로 논의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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