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명을 따라 걷다-1
    [다른 삶 다른 생각] 지리산 답사기
        2016년 04월 21일 11: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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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선생을 따라 걷는다.

    “나는 일찍이 이 산을 왕래한 적이 있었다. 덕산동으로 들어간 것이 세 번, 청학동, 신응동으로 들어간 것이 세 번, 용유동으로 들어간 것이 세 번, 백운동으로 들어간 것이 한 번, 장항동으로 들어간 것이 한 번이었다.

    그러니 어찌 산수만을 탐하여 왕래한 것이라면 번거로운 산행을 꺼리지 않았겠는가? 평생 동안 품고 있던 계획인, 화산의 한 모퉁이를 빌어 일생을 마칠 곳으로 삼으려 했던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 속에 살 수 없음을 알고, 서성거리며 돌아보고 안타까워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나온 것이 열 번이었다. 지금은 시골집에 매달려 있는 박처럼 걸어 다니는 하나의 송장이 되어버렸다.

    이번 유람 또한 다시 가기 어려운 걸음이 되었으니, 어찌 마음이 울적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이런 심정을 읊은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몸을 보전하는 백 가지 계책 모두 어긋났으니
    이젠 방장산과의 맹세조차 저버렸구나

    유람을 함께 한 이들이 모두 길 잃은 사람들이니, 어찌 나만 허둥지둥 돌아갈 곳이 없겠는가, 다만 술 취한 사람처럼 길 모르는 이들을 위해 앞장서서 인도하였고, 그 때문에 부봉하는 것일 뿐이다.” (남명 조식의 <유두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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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8년 58세에 12번째 지리산 산행을 한 후, 남명 선생은 <유두류록>을 남긴다. 그리고 1561년 61세 때 지리산 곁으로 거처를 옮긴다.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낸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지리산의 품에 안긴 것이다. ‘산천’은 ‘강건하고 독실하게 수양해 빛이 발하도록 덕을 새롭게 한다’는 주역 대축괘의 글귀에서 따왔다.

    산천재 기둥의 주련엔 남명의 시구 남아, 아련한 무언가를 전해준다

    德山卜居

    春山低處無芳草(춘산저지무방초)
    봄산 어느 곳인들 향기로운 풀이 없겠나만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이사한 이유는 천왕봉이 상제가 사는 곳에 가까움을 좋아하기 때문이네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빈손으로 들어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까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은하수 같은 십 리 맑은 물 아무리 퍼마셔도 남음이 있겠구나

    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남명매는 이제 막 피어오른다. 선생을 따라 걷기, 딱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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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양단수에 선다. 지리산 동쪽 유평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산리를 거쳐 내려오는 물이 만나, 덕천강이 된다. 그 물은 다시 지리산 북부를 휘돌아 나오는 엄천-경호강과 만나 남강에 이른다. 선생은 여기서도 시를 하나 떨궈 놓고 가신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회야 무릉이 어드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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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밭과 히어리와 얼레지가 봄을 알린다.

    얼레지는 잎에 얼룩이 있어…얼룩이..에서 입말이 변해 얼레지가 되었고, 히어리는 산으로 십오리 들어가야 만날 수 있어…십오리..시오리에서 입말이 변해 히어리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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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사지에 도착한다. 고려 중기 문신 권적(權適 1094-1147)이 지은 ‘지리산수정사기(智異山水精社記)’에는 “대각국사가 일찍이 남쪽으로 다니다가 그곳에 이르러 머뭇거리며 두루 구경하고 이르기를 ‘여기는 큰절이 머무를 곳이다’라고 하였다.

    진억대사가 이 말을 듣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터를 닦았다. 해인사의 주지 익승과 공배사(功倍寺) 주지 영석이 크게 사재를 희사하여 그 경비를 원조하였고 승원과 강원의 높은 중으로부터 일반 신도로서 사(社)에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3000명이나 되었다. 중 담웅과 지웅은 기부할 사람을 모집하고 순현은 직접 공인을 데리고 연장을 잡고 일을 서둘러서 모두 건물 85칸을 지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마을에는 오대사와 관련한 옛이야기 하나 천년을 이어오고 있다. “옛날 오대사에서 밥을 지을 때면 쌀뜨물이 십리나 흘렀다”

    남명 선생은, 여기 오대사의 스님과도 교류했다.

    제오대사(題五臺寺)

    이름자를 산기슭에 쓰기를 일찍이 부끄러워했는데
    변변찮은 입 가지고서 웃으며 절간에 들렀다네
    예로부터 사람의 인연 삼세(三世)에 얽힌 것
    반나절만에 돌아오며 적송자에 비긴다네

    증오대사승(贈五臺寺僧)

    산아래 외로운 마을 풀 덮인 문에
    날이 막 어두워질 때 중이 찾아왔구나
    시름 겨운 마음 이야기하고 나서 잠못 이루는데
    달빛은 앞 시내에 가득하고 밤은 이슥했도다

    오대사의 흔적도, 선생의 자취도 점점 희미해지겠지만, 따라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수 백 년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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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선생의 南冥은 장자의 소요유에서 따온것이다

    北冥有魚,其名為鯤。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化而為鳥,其名為鵬。鵬之背,不知其幾千里也;怒而飛,其翼若垂天之雲。是鳥也,海運則將徙於南冥。南冥者,天池也

    북해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수 없다. 곤이 새가되면 붕(鵬)이라고 하는데, 이 붕새의 넓이는 또한 몇 천리나 되는지 알수 없다. 날개를 펼쳐서 힘차게 날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 가득히 펼쳐져 있는 구름과도 같았다. 이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이면 남해(南海)로 날아간다. 남해는 곧 천지(天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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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선생은 유학자이지만, 어쩌면, 장자의 소요유를 꿈꾸던 몽상가 혹은 산꾼이 아니었을까…..

    우린, 우리 맘대로 남명 선생도 지리산 댐과 케이블카를 반대하실 거라고 믿고….안돼요…ㅎㅎㅎ

    필자소개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초보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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