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에도 노동조합이?
수백억 연봉 드라이버도, 입에 풀칠 힘든 드라이버도
    2016년 04월 15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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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에도 노동조합이 있을까요? 상상 이상의 수입을 자랑하는 몇몇 스타를 포함한 F1 드라이버들도 노조 활동을 할까요? 어떤 의미로는 놀랍게도, F1 드라이버에게는 노동조합이 존재합니다.

GPDA, 즉 그랑프리 드라이버 협회( Grand Prix Drivers’ Association )는 ‘노동조합의 정의’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넓게 본다면 F1 드라이버의 노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공백기가 있긴 했지만 1961년에 처음 조직되었으니 55년의 역사를 자랑하기도 하고, 90%에 육박하는 조직률 역시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F1 드라이버의 노조, GPDA가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적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GPDA이지만, 2016년 들어 F1 운영의 난맥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팬과 언론의 주목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원로 F1 드라이버인 존 왓슨은 ‘드라이버들은 자기 일(드라이빙)에만 집중하면 된다. F1 운영에 개입하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한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얘깁니다.

원로 드라이버의 반발이 나올 정도로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GPDA가 적극적인 ‘참정’ 움직임을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F1 드라이버의 안전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최근 몇 년 동안의 변화가 그 이유일 수 있습니다. GPDA의 탄생과 초기 활동 중 상당 부분이 바로 드라이버의 안전 문제와 연관됐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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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쥴스 비앙키를 추모하는 F1 드라이버들

1961년 탄생한 GPDA의 ‘힘’이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69년 일종의 파업이랄 수 있는 그랑프리 보이콧 사건부터입니다.

F1에서도 대표적으로 위험한 써킷으로 여겨지던 벨기에 스파-프랑코샹의 스트리트 써킷에 대한 안전 조치 요구가 경제적 문제를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F1 드라이버들은 벨기에 그랑프리에 단체 행동으로 불참을 선언합니다. 결국 스파-프랑코샹 측은 드라이버들의 파업에 굴복하고 이듬해 큰돈을 들여 안전 설비를 강화했습니다.

1982년 F1의 시스템이 완전히 재구성되면서 해체됐던 GPDA가 부활한 것 역시 드라이버의 안전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비극의 순간이었던 1994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알랑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가 GPDA의 부활과 드라이버 안전 강화를 논의한 것이 그 신호탄이었습니다. 1994년 이후 지금까지 쭉 드라이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노조, GPDA는 그렇게 안전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2014 일본 그랑프리에서 프랑스 출신의 ‘쥴스 비앙키’가 큰 사고를 당했고, 9개월간의 사투 끝에 2015년 여름 세상을 떠나면서 F1 드라이버들은 다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일톤 세나 이후 20년 만에 레이스에서 드라이버가 목숨을 잃은 사건 이후, GPDA는 “우리가 드라이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 미흡했다.”고 반성하며 더 적극적인 활동을 예고했습니다. 드라이버의 안전 문제가 GPDA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입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노동자 자신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GPDA의 활동은 단순히 자신들의 안전 문제에만 머물러있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몸담은 조직, F1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GPDA의 중요한 과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비앙키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 전, F1 팬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한 언론 매체와 손잡고 대대적인 여론 조사를 벌인 것도 그런 움직임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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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목소리를 모아 적극적인 의사 표현에 나선 GPDA

2015년 한 차례 강한 물결을 일으켰던 F1 팬 여론 조사는 GPDA가 (그 자체로 인격체는 아니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이벤트였습니다. 현재의 F1은 ‘권력을 독점’하고 ‘조직과 시스템을 마음대로 이끄는’ 사용자 측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일 처리가 시원시원해보일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정이 반복되는 F1의 사용자 중심 의사 결정 구조가 잘못됐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문제가 폭발한 것은 2016시즌 첫 번째 경기인 호주 그랑프리의 토요일 퀄리파잉 직후였습니다. GPDA에 속한 드라이버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새로운 제도 – 퀄리파잉 시스템의 도입은 강행됐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팬들의 관심을 높이고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어 발전을 도모하겠다던 ‘새 제도’는, 팬들의 외면을 받고 더없이 재미없는 퀄리파잉을 만들었고 F1 그랑프리의 시스템을 후퇴시켰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문제를 두 눈으로 분명하게 확인한 뒤에도 F1 사용자 측의 대응이 너무 안일했다는 부분입니다. 즉각적인 제도의 개선을 약속하고도, 만장일치 찬반 투표에 모두가 원하는 안은 상정조차 시키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제도 하나의 잘못이 아니라, 근본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퀄리파잉 제도는 GPDA 소속 드라이버들이 원하는 대로 (팬들도 마찬가지로 원하는 대로) 조정되었지만, 의사 결정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문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GPDA는 파워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GPDA 안에도 상황이 다른 여러 드라이버가 섞여 있으므로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힘을 모아 사용자와의 담판에서 원하는 바를 쟁취해야만 합니다.

연봉 수백억을 받는 드라이버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드라이버도, 같은 모터스포츠 노동자의 입장에서 힘을 모아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망가진 의사 결정 구조를 회복하고 GPDA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도록 하는 ‘정치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F1 전체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GPDA와 F1 사용자 측이 벌이는 파워 게임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퀄리파잉 제도의 문제에서는 GPDA가 1승을 거둔 셈이지만, 다른 문제에서 똑같은 결론이 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거대 조직을 이끄는 독재 스타일의 사용자들이 쉽게 귀를 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아마도 GPDA는 계속해서 조직을 강화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을 이어갈 것이 분명합니다. GPDA의 드라이버들은 ‘F1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 힘든 길을 간다고 얘기했습니다.

F1이든 어디든, 경제적 여건이나 주변 환경이 어떻게 다르든, 노동자들의 마음이 서로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입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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