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무엇을 배달할까요
    [그림책 이야기] 『엉터리 집배원』(장세현/ 어린이작가정신)
        2016년 03월 31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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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터리 표지

    참 신기한 표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집배원을 위에서 내려다 본 그림입니다. 분명히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집배원이 달려가는 위쪽은 하늘빛입니다. 마치 벚꽃이 흐드러진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본 하늘입니다.

    신기한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집배원 주위로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그 새들이 그냥이 새들이라면 하나도 신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새들은 새들이 아닙니다. 새가 아니라 기호입니다. 우체국을 상징하는 새 모양의 기호입니다. 심지어 그 기호들이 편지를 입에 물고 날아다닙니다.

    근데 이 엉터리 같은 그림이 신기하기는 한데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림과 땅을 내려다본 그림이 맞닿아 있는데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새도 아니고 새를 본 따서 만든 삼각형들이 편지를 입에 물고 날아다니는데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이상하기는커녕 신기하고 아름답고 참 따뜻합니다.

    엉터리 집배원

    매곡 우체국

    면지를 펼치면 오백 살도 넘은 것 같은 아름드리나무가 사방으로 가지를 뻗치고 있고 그 나무 아래에 아담한 2층 건물이 있습니다. 간판엔 매곡 우체국이라고 쓰여 있고 2층 지붕 아래엔 우체국을 뜻하는 새 모양의 기호가 있습니다.

    설마 우체국도 오백 살이 넘었을까요? 바보 같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면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지어진 우체국 건물은 옛날 건물이 아닌데도 유서 깊은 향기를 뿜어냅니다.

    왠지 아주 오래 전부터 편지를 전해준, 아주 고마운 역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현대적인 우편 제도가 시행된 것이야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사람들 사이에 소식을 전하는 일은 어쩌면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2층짜리 작은 우체국 건물이 제 눈에는 마치 쿵푸의 본산이라는 소림사처럼 보이는 것은 편지라는 매체가 지닌 유서 깊은 위력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당장이라도 매곡 우체국 문을 열고 쿵푸 팬더가 아닌, 편지 팬더가 나타난다 해도 독자들은 결코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이 책의 제목이 『엉터리 집배원』이라는 사실을! 이제 저 우체국 문을 열고 엉터리 집배원이 나타날 것입니다. 편지 배달의 본산처럼 보이는 매곡 우체국에서 배달의 달인이 나와도 모자랄 판에 웬 엉터리 집배원일까요?

    시와 그림이 만나다

    봄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자전거가 가고 있다.
    -본문 중에서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자전거에 탄 사람을 봅니다. 짐칸에 실려진 함과 그 함에 그려진 우체국 기호와 그 함에 가득 찬 편지를 보고 독자들은 그가 집배원인 것을 압니다.

    봄꽃도 여러 가지라 나무를 자세히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그 꽃이 분홍이고 꽃잎이 떨어지고 있으며 가지가 굽이굽이 마디가 많다는 것뿐 정확히 무슨 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자세히 그리지를 않았으니까요. 마치 꽃을 자세히 그리면 그건 사진이지 추억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봄꽃은 봄꽃인데 무슨 꽃인지 알려주지 않아서 더욱 궁금합니다. 자전거엔 사람이 타 있는데 없는 것처럼 말해서 더욱 그가 궁금합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요? 게다가 그를 ‘엉터리 집배원’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엉터리 집배원

    엉터리 집배원이 엉터리 집배원인 까닭은 그가, 혼자 살면서 아들의 편지를 기다리며 글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엉터리로 편지를 읽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쁜 엉터리 집배원이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쁜 엉터리 집배원 때문에 저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제가 그 할머니도 아닌데, 그 할머니는 행복하게 돌아가셨는데 제 마음이 서럽고 인생이 무상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엉터리 작가

    오늘 저는 슬픕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바보 같은 삶을 사는 게 슬픕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살면서 불행하다고 말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워하면서 돌아오지 않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떠나보내고서야 후회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행복합니다. 엉터리 집배원 같은 엉터리 작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 바보 같은 세상을 보여서 바보 같은 삶을 깨닫게 하고 바보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장세현 작가는 엉터리 집배원이 할머니를 행복하게 만들 듯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참 엉터리 작가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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