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살'이 보여주지 않는 것
        2016년 03월 28일 03: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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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대륙 간 비행을 하면서 기내에서 운 좋게 그 유명한 영화 <암살>을 공짜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암살을 즐긴다”라고 하면 좀 어폐가 있지만 말이죠…

    암살

    영화 ‘암살’의 한 장면(유투브)

    “암살”이라는 행위를 잠시 논외로 하고 영화 자체를 말씀드리자면 분명히 잘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설정의 인위성이나 고증의 미흡은 바로바로 눈에 띄지만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을지로”라는 도로명을 썼을 리가 없는데, 영화 주인공들이 “을지로”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역사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은 바로 분연히 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1946년 이전 을지로의 이름은 黃金町通 (고가네마찌또리)이라고. 도로명을 제대로 모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100년 전의 세상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설정입니다. 합방 시절의 조선이 어떤 세상이라고, 거물 친일파의 마누라가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만주로 가서 홀몸으로 독립운동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몇 명의 신여성은 이미 출현해도 근본적으로 삼강오륜의 세계인데, 특히 귀한 가문의 어린 규수들을 가부장의 허락도 없이 부인이 데려가서 혼자 운동한다는 것은…글쎄, 1920년대 이후에야 예외적인 경우에 가능할까 말까 했을 것입니다.

    그것보다 한층 더 심각한 것은, 김구계와 김원봉/의열단계의 합작 시기를 실제보다 아주 이른 것으로 잡고, 그 합작의 형태를 다소 환상적으로 설정한 거죠. 김구계와 아나키스트들은 같이 수 차례의 의혈공격을 감행했지만, 1930년대의 김원봉은 이미 무정부주의적 의혈투쟁보다는 차라리 사회주의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런 류의 영화에 대한 제일 큰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독립운동에서나 “적의 괴수”에 대한 자기희생적 공격은 피식민자들에게 속시원하고 통쾌하게 와닿았습니다. 조선만이 그런 것도 아니었고, 예컨대 인도나 알제리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그 시원함의 기원도, 이미 파농이 다 설명해놓았습니다. 특히 군복 입은, 피식민자들을 평소에 “아이”처럼 대하면서 유사시에 언제든지 “시체”로 만들 수 있는 식민자를 “죽인다”는 행위는 피식민자로서는 해방으로의 통과의례이기 때문이죠. 해방적 행위의 백미다 보니, 영화에서는 엄청나게 과장되게 묘사됩니다.

    나석주 의사 같은 분들이 실제로 경성에 잠입하여 권총과 폭탄 등으로 잘 돼야 10명 안팎의 적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릴 수 있었지만, 영화에서 경성을 엄습한 독립운동가 몇 명은 아마도 수백 명의 일군과 일경을 죽이는 거의 “대량 살상”의 장면들은 계속 연출됩니다. 지금도 통쾌하게 느껴지겠지만, 역사 차원으로 본다면 비현실적일 뿐이죠.

    그런데, 이 참에 이런 생각도 해볼 만합니다. 식민지 시절이 끝난 지 70여년이 된 지금에 와서는, 왜 하필이면 독립운동가의 총탄에 거꾸러지는 일군이나 일경을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할까요? 인도만 해도, 독립지사들의 의혈투쟁은 볼리우드의 주된 테마도 아니고 그다지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말이죠.

    혹시 그런 게 아닌가요? 외국군의 주둔지로 전락된 일도 없고 미국의 피후견 국가도 아닌 인도와 달리 지금도 사실상 “군사보호령적” 현실, 즉 과거 식민주의를 이어간,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 한국인들은, 국가보안법 덕분에(?) 그 어떤 영화에서도 조선인 독립투사의 총에 거꾸러지는 미군들을 감히(?)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독립군에 희생되는 일군의 스펙타클로, 그런 잠재적 욕망들을 대리만족시키는 게 아닌가요? 미국으로부터의 “해방 투쟁”을 언급하는 순간 바로 사상범이 되는 현실에서 항일무장투쟁의 다소 과장된 영웅담은 어떤 “위로”가 되는 게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항일 투쟁의 스펙타클한 “외형”만 클로즈업하고 그 주된 “내용”을 별로 취급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부족한 점일 것입니다. 조선인에게 무장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는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그런 “의리적 혈투” 식의 무장운동은 사실 소수에 속하고 그렇게까지 큰 성과를 어차피 가져다 줄 수 없었습니다.

    “진짜” 운동은 주로 사회주의자 등에 의한 조직운동이었습니다. 30년대 같으면 공산당 재건이 잘 되지 못하는 가운데 이주하처럼 원산의 공장에 가서 노동자 동지들을 획득하고 파업을 주도하고 적색노조를 건설하는 운동과 시골에 내려가서 적색농조를 만들고 소작인들을 규합시키고 소작료 내리기 위한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은색화면에서 멋지게 보이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단번에 증가시킬 만한 그런 총격전이나 격투신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해도, 동지 획득을 위한 노력이 있었고 치열한 독서와 토론이 있었고 커다란 담력을 필요로 하는 파업 등의 대중행동이 있었고, 일제 경찰서에서 고문에 맞서서 조직의 비밀을 사수하다가 죽는 인간 정신의 승리들도 있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길러진 활동가 층은 나중에 이남 땅에서 빨치산 투쟁에 나서기도 하고, 일부는 운 좋게 한국 전쟁기의 학살 속에서도 살아남아 혁신정당 운동의 골간도 이루고, 또 이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사업에 많이 흡수되고, 상당 부분은 숙청 속에서 비운을 맞거나 좌천의 고배도 마셨습니다.

    식민지 시기와 그 직후 한국의 좌파적인 대중 운동의 우여곡절들을 영화화하면 둘도 없는 역사의 대하드라마가 될 것입니다….한데 경성을 엄습한 독립군의 무용담을 영화화하는 것은 쉽게 가능하고 흥행 전망도 좋지만, 좌파 대중투쟁의 영화화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문제적”일 것입니다.

    “좌파” 내지 “혁명”을 금칙어로 만든, 식민주의 시기 지배자들의 의식은, 냉전 속에서 공고화돼 지금도 이 사회를 지배하니까요.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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