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공천 내전에,
    주변화되는 야권 세력들
    막장 정치드라마의 관전 포인트
        2016년 03월 25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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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전 원내대표 ‘찍어내기’부터 가시화됐던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이 20대 총선의 공천 막바지에서 폭발했다. 25일 오늘, 후보 등록이 끝나면 일단락 정리가 되겠지만 그 전까진 상황은 종잡을 수 없다.

    ‘정치가 예능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롱거리가 된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에서도 몇 가지 관전 포인트는 있다.

    우선 청와대가 ‘옥새’(당인)를 내놓지 않는 김무성 대표를 얼마나 집요하게 압박할지, 친박계는 김무성 대표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내려 진박 후보를 꽂아 넣을지, 김무성 대표는 얼마나 버틸지 또한 관심사다. 또 탈당한 비박계 의원들의 선거 유세를 돕겠다고 나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에 얼마나 파급력을 가져올지 등도 주목되는 부분인데, 이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과 같은 정치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주변화되고 있다는 것 또한 눈 여겨 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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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박근혜 김무성 유승민 심상정 김종인 안철수

    청와대, 김무성에 “정치 좀 치사하게 한다”
    누가 누구보고 치사하대?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이재오 의원 등 보류된 5곳 공천안 의결을 거부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으로 가버리자, 청와대 내부에선 일제히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진 않고 있지만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등 급박하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25일 <조선일보>는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서 “단순히 공천 갈등 창원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라며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전했다. ‘항명’, ‘전쟁’과 같은 살벌한 말을 써가며 사실상 김무성 대표를 겁박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원내대표 직에서 몰아낼 때에도 ‘배신의 정치’라는 말로 격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었다. 당시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한 청와대의 화살인 언젠간 김무성 대표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아울러 이 보도는 김무성 대표가 5곳 지역구에 대한 독자 행동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지만, 공천안 의결을 거부하는 식의 수를 둘지는 청와대도 몰랐다고 전했다. 청와대에선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탈당만 하면 공천 파동은 봉합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봤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같은 수를 쓴 김무성 대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조선>은 전했다. 이 보도가 인용한 한 참모는 “그 지역에 출마하려는 새누리당 후보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정치를 좀 치사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치사한 정치’라는 비판은 외려 청와대를 비롯한 친박 쪽이다. 앞서 친박계가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공천을 마지막까지 미뤘다. 공천에서 배제시키고는 싶은데 여론의 역풍이 겁나 폭탄 돌리기만 한 것이다. 이를 두고 홍문종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마지막 예우이고 애정”이라고 미화했지만 일각에선 공관위를 비롯한 친박에 “비겁한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했다.

    이번 공천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된 청와대는 당의 승리에는 관심 없고 친박 친위대를 구성하려는 것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박 대통령을 겨냥, “당을 사당화하려 한다”(임태희)는 지적도 나왔고 이재오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청와대로 인해 “당이 허수아비가 됐다”며 청와대와 친박을 싸잡아 “정의롭지 못한 권력”, “부정한 권력의 줄 세우기”라고 실랄하게 비판했다.

    친박계, 기어이 김무성 끌어내리나
    김무성 사퇴 압박하는 아이디어 ‘속속’

    김무성 대표의 ‘옥쇄투쟁’에 친박계는 긴급 최고위원회까지 소집해 당헌당규상 원내대표의 당 대표 대행 여부에 대한 논의했으나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판사 출신의 주호영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당헌 당규는 대표가 유고로써 직무를 못할 때를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표가 유고가 아니고 또 최고위원회 소집 자체가 대표의 권한이다. 또 정기적으로 최고위원회를 하는 날짜도 아니기 때문에 직무대행을 선정하는 것은 법률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썬 계파 간 당헌당규에 대한 해석이 다르지만 어찌됐든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5곳에 대한 공천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울러 이날 오전 최고위에서 ‘신박’ 원유철 원내대표는 김무성 대표에 “당 직인이 개인 소유물 아니니 빨리 당에 반납해라”,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대표가 거부하면 원내대표에게 최고위 사회 권한이 있다”며 무공천 지역의 진박 꽂기에 열을 올렸다.

    김무성 대표가 당의 선거를 망치고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리더십’ 훼손도 한창이다. 일부에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며 사실상 김무성 대표가 사퇴를 압박하는 주장도 나온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당대표로서 선거를 책임져야 될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좀 자각할 필요가 있다”며 “당내 공식기구에서 결정한 공천자를 배제하고 낙천자를 도와주는 그런 식의 결정은 아마 용납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헌당규상 최고위 개의는 당대표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5곳에 공천은 어렵지 않겠냐는 물음에 이 공관위원장은 “우리 당은 집단지도체제다. 그러니까 집단지도체제에 맞게 의사결정하면 되지 않겠나”라며 김 대표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친박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이건 선거를 좌우할 수 있는 정도의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 마음대로 하게 놔둘 순 없지 않나 싶다”고 했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인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도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최고위원회의가 집단지도체제다. 당을 대표하는 대표의 권한이 그렇게 막강하지 않다. n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최고위원들이 사퇴해서 비대위 체제로 간다거나 여러가지 다음 수순이 예고된다”고 말했다.

    김무성, 이번에는 ‘무대의 자존심’ 지킬까

    새누리당 공천논란의 뇌관이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제 관심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옥새투쟁’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느냐로 옮겨졌다. 즉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 혹은 박근혜 대통령에 맞서 ‘휘어지지 않고’ 정면승부를 벌일지, 아니면 여느 때처럼 ‘타협’으로 포장한 백기를 들 것인지가 20대 총선을 앞둔 현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무공천하기로 한 5곳을 일정 부분 조율해 타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선>은 김 대표 측이 청와대에 비슷한 메시지를 보내 분위기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도 “수를 조정하는 선에서 타협을 볼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김무성 대표는 상향식 공천 등과 관련한 갈등이 있을 때마다 초반에 강수를 두며 반발하다가도 청와대나 친박계가 강하게 나오면 이내 스스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

    김 대표가 ‘대충 합의를 볼 것’이라는 전망도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태부터 시작해 청와대와 마찰이 있을 때마다 백기 투항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가 평소 ‘9번 져도 마지막 1번만 이기면 된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가 이번만큼은 청와대와 정면승부를 벌이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또한 김 대표가 그간 일관되게 상향식 공천에 대한 필요성을 거듭 주장해왔던 만큼 이번 ‘옥새투쟁’이 정치적 생명을 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주호영 의원은 “김무성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뽑힐 때도 완전한 상향식 공천제를 하겠다는 것을 최대 공약으로 내걸었다. 약 2년에 걸쳐서 의원 총회, 전문가 그룹 회의 등을 통해 당헌 당규로 상향식 공천이 확정됐고 이 상향식 공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정치 생명을 걸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며 “그런데 결정적인 대목마다 말씀을 해놓고 자꾸 물러나니까 ‘저 말을 끝까지 지키겠느냐’ 회의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워낙 여러 차례 이야기를 많이 했고 본인의 정치 생명이 걸린 것이니까 만약에 이것을 바로 잡아주지 못하면 김무성 대표의 정치적 생명력도 거의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이렇게 결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탄압 받을수록 커지는 유승민의 존재감
    원내대표 ‘찍어내기’부터 대선주자 반열 올라

    20대 총선 새누리당의 공천 뇌관이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탈당과 함께 무소속을 선언하면서 ‘다여다야’ 구도가 됐다. 야권 분열로 인한 여권의 필승이 예상됐던 선거판이 공관위의 ‘독단’과 청와대의 ‘탄압’으로 인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 등의 탄압이 가혹해질수록 유권자들은 그를 지지하고 있다. 이 같은 청와대의 행보는 유 전 원내대표를 ‘합리적 보수’로, 청와대와 친박계를 ‘극단적 수구 보수’ 내지는 탐욕적인 권력자의 모습으로 보이게끔 한다.

    당장의 여론조사만 봐도 새누리당이 유 전 원내대표의 탈당으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의뢰로 <리얼미터>가 3월 22일부터 23일 양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022명을 대상으로 4·13총선 정당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35.2% 밖에 나오지 않는다. <리얼미터>의 지난주 새누리당 지지율 41.5%에 비해 6.3%p나 빠진 결과다. (휴대전화(59%)와 유선전화(41%)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 응답률은 7.2%,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봐도 <리얼미터>의 동 기간 조사에서 공천 갈등의 중심에 있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0.4%p 상승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날 이 기관이 발표한 조사에서 30%대까지 추락했다. 탈당파들의 반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유 전 원내대표의 존재감은 얼마든지 더 커질 수 있고 박 대통령은 세간의 전망처럼 레임덕을 맞을 수 있다.

    새누리 내분으로 주변화되는 더민주와 정의당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공천안 갈등이 있긴 했지만 김종인 더불어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당무에 복귀하면서 봉합됐고 정체성 논란이라는 과제가 남긴 했지만 새누리당에 비하면 순조로운 모습이다. 김종인 대표는 그간 당내 잡음을 봉쇄하려는 듯 24일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을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현 정부 심판을 화두로 한 본격 선거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 공천 여부와 김무성 대표의 ‘옥새투쟁’으로 인해 생각보단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일간지 1면은 연일 소란스러운 새누리당의 지역구 공천 과정과 친박 친위대가 포진한 비례대표 순번에 관한 기사로 장식됐다.

    국민의당도 비례대표 공천 문제로 폭력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여당의 내분으로 묻혔고, 유권자들은 국민의당의 비례대표 공천 후보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원내교섭단체이지만 이미 소수정당 수준의 존재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의당은 반사이익이든 아니든 창당 이후 최고치의 지지율을 얻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이 또한 새누리당의 내분에 묻혔다. 또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문별 총선 공약도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정의당이 국회 정론관에서 노동부문 총선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하던 와중에 홍창선 더민주 공관위원장이 나타나자 기자들은 우르르 그 쪽으로 향했고 결국 정의당은 텅텅 빈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이어가는 ‘서글픈’ 일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20대 총선은 정책경쟁은 없고 국회의원 밥그릇 경쟁만 남았다는 혹평이 나온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23일 각 정당의 총선 공약을 두고 “새누리당의 희망모음집 수준의 정당공약집 발간은 공천 파행 때부터 예견된 사태”라며 “더불어민주당은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정책을 결정하는 데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당은 내부 사정을 이유로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정당공약을 외면하고 있으니 국민의당이 추구하는 새정치 구호가 무색할 뿐”이라면서 “정의당도 수권정당을 지향한다면 더 준비가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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