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총선과 에너지 민주주의
    [에정칼럼] 에너지전환, 찬반 아니라 대안 필요
        2016년 03월 24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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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주요 정당의 공천 파행이 선거판을 집어삼키고 있어 정책선거를 기대하기 난망하다. 진보정치와 녹색정치를 실현하려고 몸부림치는 정당과 세력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5년 동안 에너지가 정치사회와 선거에서 제법 중요하게 다뤄졌다. 아직까지 전체적으로 다른 이슈에 비해 후순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녹색당과 진보정당은 주요 공약으로 그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주된 내용은 탈핵과 에너지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기본계획과 유관 정책들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땅한 주장이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시험장에 앉아 정해진 정답만 풀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험 문제가 바뀐 것도 모르고 말이다.

    * 정의당-에너지연대회의 정책협약 체결식(2016년 3월 2일) 사진: 정의당

    * 정의당-에너지연대회의 정책협약 체결식(2016년 3월 2일) 사진: 정의당

    왜 그럴까. 에너지 전환에 대한 오해부터 풀자. 에너지 전환 개념은 과학, 기술, 경제, 전문성의 테두리에서 에너지를 해방시키려는 지향 때문에 에너지 민주주의로 확장된다. 이런 점에서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원의 전환 이상으로 정치권력이자 경제권력인 에너지 권력의 변환을 지향한다. 국제적으로 볼 때, 협동조합이나 풀뿌리 조직은 물론 사회운동진영,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에서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다(아직까지 노동조합 다수는 이런 전환에 소극적이거나 저항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제임스 엔젤(<에너지 민주주의 전략>, 로자룩셈부르크재단 브뤼셀 사무소, 2016)이 지적한 것처럼, 이 개념들은 경쟁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되고 있다. 기후정의진영이나 국제 네트워크인 에너지민주주의노동조합(TUED)은 이를 급진적으로 해석한다. 일부는 탈성장까지 염두에 두기도 하지만, 노동조합 등은 대부분 그보다는 질적 성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서도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 주장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서도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최근 추세로 볼 수 있다. 나라와 지역마다 맥락이 달라 단순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에너지 생산의 탈집중화와 분산형 저탄소 전환은 시장 경쟁을 촉진시키려고 거대 독점을 깨기 위해서 등장한 측면이 있다. 여기에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도 추가됐다.

    이제 우리를 돌아보자. 아래로부터의 에너지 전환 운동과 실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에 소규모 발전설비 40MW와 적정규모 수요지 발전설비 500MW로 설정된 분산형 전원 목표가 등장했다. 현재 7.5%인 이 비중을 2029년까지 12.5%로 높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목표가 기존 국가에너지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산형 발전시스템 구축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에너지 신산업이다. 정부가 정의한 에너지 ‘신산업’은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수요관리 등 에너지 분야의 주요 현안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자 ‘문제 해결형’ 산업이다. 신기술,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해 사업화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미래 성장동력임을 강조한다.

    2015년 11월에 발표된 <2030 에너지 신산업 확산전략>에서 보여준 2030년 에너지 미래 비전은 에너지 저소비 경제 구조, 소비자의 에너지 선택 패러다임 전환, 에너지 산업의 성장동력화이다. 에너지 저소비는 주요 에너지 계획들과 정부 정책 기조로 볼 때, 에너지 소비의 절대적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에너지 선택권 확대와 에너지 산업의 성장동력이다.

    이 지점에서 따져볼 것이 있다. 에너지 ‘구산업’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에너지 신산업군은 수요자원 거래시장, 에너지저장시스템통합서비스, 에너지자립섬, 태양광 대여, 전기자동차, 발전소 온배수열 활용, 친환경에너지타운, 제로에너지빌등 등이다. 여기에는 구산업이 포함되어 있거나 꼼수가 숨겨져 있다. 에너지자립섬, 전기자동차, 발전소 온배수열, 친환경에너지타운, 제로에너지빌딩, 석탄화력발전 고효율, 탄소포집저장이 그렇다. 족보가 꼬였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에너지 신산업을 뒷받침하는 사회기술시스템이다. 생산 단계에서는 발전자회사와 에너지업체 이외에 시민과 협동조합과 민간의 소규모 발전의 생산을 장려한다. 보조와 지원 수단보다는 거래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판매 활성화에 기대는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따라서 판매 단계에서는 수요자원(네가와트 발전) 거래시장, 분산전원 중개사업, 프로슈머 전력시장, 전기자동차 충전소 민간 허용을 통해 전력소매시장을 개방하겠다는 목적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이유는 저장 단계에서의 에너지저장시스템과 유통단계에서의 스마트그리드라는 기술적 발전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독점적이고 일방향적인 전력시스템이 유연성과 개방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변화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을뿐더러, 더 중요하게는 그 결과가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에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경쟁하는 정치경제적 입장에 따라, 에너지 전환은 사유화-자유화 노선과 사회화-국유화 노선으로 양분된다(물론 현실은 더 복잡하다). 다른 사회기반시설이거나 네트워크 재화와 마찬가지로 이런 노선 투쟁의 승자와 패자는 사회의 큰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도 이 분기점에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정세에 둔감한 채 원론과 정답만 고집해서는 발전은 없다.

    에너지 신산업, 이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왜 등장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공공성을 주장하는 에너지노동조합은 민영화를 우려하고,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에너지협동조합은 판로를 개척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라고 환영하는 것 같다.

    정부의 의도대로 시장화와 세계화로 에너지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나아가 진정 에너지 분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지금이라도 바뀌고 있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바라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짊어져야 할 몫이다. 에너지 산업구조가 어떻게 설계되는가에 따라 시장 우위일지 시민사회 우위일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인 에너지 공공성과 에너지산업구조개편에 소극적인 에너지 전환, 이 모두에게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에너지협동조합, 지역에너지공사, 공공관리 등 다양한 스케일에서의 에너지 사회화 진영의 진지한 논의가 중요하다. 찬반 논의만이 아니라 대안 논의를 해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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