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아이들,
    집안 일에 개입하지 마라”
    [학교야, 뭐 하니?] 자녀 살해, 믿을 수 없다면 막을 수 없다
        2016년 03월 21일 03:34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7살 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학대하고 살해한 뒤 암매장한 고성의 친모(2011년 10월), 7살 아들을 살해한 뒤 토막 내어 냉장고에 보관한 부천의 친부(2012년 20월),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인천의 친부와 계모(2015년 3월), 밥을 먹지 않고 떼를 쓰는 30개월 된 딸을 걸레자루로 때려 숨지게 한 울산의 친모(2015년 6월).

    지난 해 12월 인천에서 온몸에 멍 자국이 난 채 집을 탈출한 11세 소녀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는 미등교 학생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부모나 가족에게 학대받다가 죽음에 이른 아이들의 사체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12일 또 평택에서 암매장되었던 7살 아동의 시신이 발견됐다. 계모가 아이를 굶기고 머리에 락스와 찬물을 퍼부어 죽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TV 뉴스를 듣다가, 귀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었다. 계모의 학대를 방치한 친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3달 새 부모의 자녀 살해 사건이 5건이나 밝혀져 새해 벽두부터 온 나라를 충격에 몰아넣고 있는 와중에, 이런 말은 내게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다. 계모의 학대는 당연하고, 친부의 방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 어쩌면, 이런 통념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간 끔찍한 자녀 살해의 소식을 접한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친부모가 왜 본능과 천륜을 거스르고 혈연으로 맺어진 분신과도 같은 자녀를 살해했을까?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은 ‘피는 물보다 진해서’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맹목적으로 사랑하며, 그 사랑은 숭고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자녀살해

    지난해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학대 가해자는 친부모가 8841명(75.5%)으로 단연 많았고, 계부모나 양부모에 의한 학대가 4.4%였다. 재혼 가정 수가 적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학대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친부모임을, 조사 결과는 보여주고 있다.

    이쯤 되면, ‘부모가 왜 자신의 유전자를 공격하는가?’라는 질문은 부차적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런 질문이 전제로 하고 있는 통념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때다. 혈연에 의한 본능적 사랑은 절대적인 것도 무조건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엄연한 현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오랜 기간의 학교에서의 근무 경험이 한몫을 했다. 충격적이고도 끔찍한 이 사건들은, 사실 나에게는 그냥 놀랍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 학교는 지역적인 이유로 저소득층 학생들이 다수였다. 이혼 가정도 많았고, 부모가 다 있는 경우에도 육체노동을 하던 아버지가 병을 얻어 집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지내고, 어머니가 식당일이나 청소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형태 가정이 많았다. 이 경우 가부장적 가치와 자신의 처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버지가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정 폭력은 꼭 저소득층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자녀에게 학업을 강요하며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고학력 중산층 부모들도 꽤 있었다. 사실, 크게 보아 ‘치맛바람’이라 표현되는 과도한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런 폭력과 출발점은 비슷하다. 이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가 2012년 한 고등학생이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다. 그는 “서울대 가라”며 매질하고 학업을 강요했던 어머니를 살해한 뒤 8개월 간 시신을 방치했었다.

    가정 폭력이 이렇게 흔하고, 아이들이 만성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면, 때로 그 폭력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신기한 일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폭력 자체보다 다른 데 있다. 아이가 심각한 가족 폭력 속에 방치되고 있음을 교사나 외부인이 인지했을 때, 별다른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신고제도는 몇 년 새 잘 갖추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신고 후부터 시작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이며 부모가 없는 남매가 살고 있는 영구임대 주택에 삼촌이 들어와 일을 시키고 매질을 하며, 학생들이 지원받은 물자를 자신이 마음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학생의 허벅지 멍 자국을 보고 고민하다가 당시 복지부 129 전화로 상담을 했다. 친족에 의한 학대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당시 성폭력을 일삼던 가족에게 유일한 양육자라며 피해자를 돌려보내는 판결도 있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듣자 매우 흥분하며 해당 기관에 신고하라고 했다. 그때는 소위 ‘착한 신고제’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센터에 신고해야 했다. 나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학생이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될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러자 상담사는 ‘선생님은 신고 의무자입니다.’라며 신고할 것을 강력히 권했고, 그래서 ‘아동학대 신고센터’에 전화했다.

    며칠 후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의 센터에서 나온 두 명의 근무자가 나를 만나러 왔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을 조사는 하지 않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삼촌이 훈육 차원에서 조카를 몇 대 때릴 수도 있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상담사가 부추겨서 신고했는데, 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은 내가 신고한 것이 과민하다고 설득했던 것이다.

    그 뒤로도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내가 접했던 얘기는 ‘그 아이 집안일에 개입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여학생이 옷까지 벗긴 채 집에 갇혀 아버지에게 며칠째 맞아도, 학생의 몸에 멍 자국이 가득해도 ‘집안 일’을 넘어서서 제대로 해결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평택 아동 살해 사건에 대한 한 TV 프로의 심층 취재 내용 역시 나의 경험과 유사했다. 이웃에 의해 학대의 징후가 짐작되었고, 이미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를 직접 돌보며 주시하고 있었는데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아이 몸에서 상처가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아동보호기관과 경찰까지 가정 방문을 하기도 했으나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부모의 학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녀는 부모의 것이므로, 사회가 가정의 울타리를 넘을 수 없다.’는 우리의 통념이다. 폭력을 예방하거나, 폭력이 감지됐을 때 이를 해결할 강력하고도 확실한 시스템이 없는 것이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은 가정과 혈연을 신성시하는 우리의 사회적 통념과 관계 깊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역과 사회의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사라지고, 경쟁과 돈이 지배하는 가운데 신뢰와 협력의 가치는 무너졌다. 학교에서마저 학생들은 ‘경쟁’을 절대 가치로 배우며 성장한다.

    그나마 우리가 믿고 미화하는 것은 오직 부모나 가족의 사랑 같은 혈연에 기댄 본능적 가치인 듯하다. 그래서 공교육 교사에게도 ‘교직은 서비스업’이라며, ‘부모 마음’으로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다그친다. 고등학교 교사는 입시 성과라는 유일한 잣대로 평가된다. 학생들은 공공연하게 ‘생활기록부를 잘 써주어서 대학입시에 유리하게 해주는 담임, 문제풀이 기술을 잘 가르쳐주는 교사’가 좋은 교사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의 죽음을 앞에 놓고, 우리는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아동 폭력 앞에서도 넘지 못하는 가정의 울타리, ‘남의 자식을 맡았으니,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가르쳐 잘 살게 해줘야 한다.’는 ‘사교육적 가치’밖에 남지 않은 학교를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지 말이다. 고작 우리가 믿는 것이 돈이라는 물적 가치와 본능적이고 혈연적인 가족애밖에 없다면, 대한민국을 인간의 나라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공정함, 합리성, 신뢰, 협력, 정의, 인권과 같은 공적 가치들을 복원하고, 가정의 울타리를 넘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젊은이들을, 자라나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헬조선의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기성세대의 엄중한 책무이다.

    어둡고 끔찍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밝은 생각만 하면 될까? 부모의 자녀 살해, 가정 내 폭력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일부 특수하고 짐승 같은 사람들의 일이라 하며 믿을 수 없어 한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폭력적인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할 수도,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소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3년간 국어교사로 일했다. 현재는 마을과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과 책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모임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