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
    [책소개] 「밀양 전쟁」(장훈교/ 나름북스)
        2016년 03월 19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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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5월 밀양은 국가 전력망의 송전 선로 경과지, 즉 송전탑 건설지로 선정됐다. 밀양 상동면 옥산리 주민들이 한국전력 밀양 지점 앞에서 첫 집회를 가진 2005년 12월 이후로 밀양의 투쟁은 2016년 현재 11년째 진행되고 있다. 오랜 투쟁 과정에서 100명 이상의 마을 주민이 병원으로 응급 후송됐고, 70명 이상이 사법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2012년 1월 16일 이치우 할아버지가 분신자살했고, 2013년 12월 2일에는 유한숙 할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을 시도해 12월 6일 숨졌다.

    고령의 밀양 주민들이 장시간 완강하게 투쟁을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무엇이 시민들로 하여금 이들의 투쟁에 연대하게 만들었으며,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에서 탈핵 운동으로까지 나아가게 했을까. 애초에 정부와 한국전력이 송전탑 건설을 강제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비판 사회과학 연구자인 저자 장훈교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밀양의 현실과 일상의 괴리를 체험한 후, 밀양의 ‘진실’을 좇기 시작한다. 저자는 1년여의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전력망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와 밀양 이전에도 있었던 ‘장소’를 둘러싼 갈등 사례, 밀양 투쟁의 간략한 역사를 검토한 후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의 의미와 전망을 밝힌다.

    이 책은 학술적 분석틀과 이론을 동원해 밀양 투쟁을 분석하고 있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과 관련된 여타 기록물 못지않게 밀양의 아픔과 연대에 천착한다. 현대 한국의 정치, 사회, 에너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권력, 그리고 투쟁의 여러 양상이 밀양을 통해 얼마나 전형적으로 드러나는가에 대해 보편적인 설명이 제시되며 저자가 마르크스부터 여러 이론가들에게서 빌어 와 살피는 것들, 예컨대 자본주의 시초 축적과 국가를 통한 억압은 밀양을 통해 생생하게 재발견된다. 또한 공통자원이나 ‘울력’이라 불린 대안으로부터 새로운 민주주의 급진화까지 조망한 성실하고 예리한 연구 작업이다.

    밀양전쟁

    국가를 위해, 국가에 의해 강제되는 장소의 약탈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결합한 한국의 전력산업

    밀양 투쟁은 단지 그 지역이 송전 선로의 경과지로 선정됐기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밀양의 갈등은 2000년대 이후 발생한 것이지만, 국가 전력망 구축 사업의 행위자인 한국전력 및 중앙정부와 밀양 주민 사이의 갈등 구조가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졌다고 본다.

    한국의 전력사업은 권위주의 군사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출발했고 이때 구축된 한국 전력 산업의 특성이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국가 전력망 구축과 같은 자본주의 산업화의 필수 조건을 위해 전체 사회가 계획과 규율에 따라야 한다는 ‘군사주의’가 지배한다. 또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한국전력의 위상을 공기업에서 이윤을 위한 전력자본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밀양의 갈등을 밀양 이전의 갈등과는 다른 갈등으로 만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이윤 중심의 공기업’을 표방하면서 나타난 전력산업 민주화의 부재는 곧 ‘군사주의’가 해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민이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전력산업이 범죄와 이윤이라는 목적을 공통으로 보유한 전력산업 동맹에 의해 해외 전력시장 수출을 위한 산업으로 재편됐음을 의미한다. 밀양 투쟁은 바로 이런 맥락 위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원전 수출에 차질을 빚고 싶지 않은 한국전력과 정부는 밀양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양 송전 선로 건설 공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인민과의 협력을 조직하는 ‘민주주의’의 방법이 아닌, 군사주의를 통해 조직화된 폭력으로 갈등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방법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란 이유로 정당화되었다.이 책에서는 또 국가 전력망의 입지 선정 과정에 ‘지리-정치학’이 작동한다고 본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장소 선정이 아닌 현재 작동하는 권력관계에 의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은 형식적으로만 수렴되거나 무시되고 국가와 한국전력은 모든 문제를 보상금 문제로 치환하며 사업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할 뿐이다.

    저자가 중시한 고유한 ‘장소의 정체성’은 입지 선정 과정에서 부정되고 만다. 전력 수요 예측에 따른 적절한 공급책인가의 문제로 접근해 보아도 송전탑 건설 계획에 한계가 드러난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미래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며, 이의 송전을 위해 전문공학적 기술을 동원해 합리적으로 계획했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다양한 의문은 배제되고 고유한 장소로부터 추방당한 주민에게는 순응이 요구될 뿐이다.

    밀양은 모든 개인과 연결된다
    생활 세계와 일상을 되찾기 위한 ‘삶-장소’의 투쟁

    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양 주민의 반대 투쟁을 두고 환경단체와 같은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것, 또는 송전 선로에 무지한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 때문으로 치부해 왔다. 주민에게는 재산의 ‘약탈’과 다름없는 토지 강제 수용이 법에 의한 정당한 행정 집행으로 포장되는 것을, 이 책에서는 ‘교환정의’가 무너진 부등가교환으로 본다. 공권력을 동원해 토지를 징수할 수 있는 국가와 달리, 밀양 주민에게는 ‘삶’을 방어할 법적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토지에 애착이 있고 장소를 곧 자아로 인식하는 밀양 주민들에게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당연한 것이었다.

    강제된 부등가교환과 삶을 부정당하는 모멸감은 밀양을 전장으로 만들었다. ‘국가’라는 존재로부터 소유자로서의 권리 주체, 최소한 인격적으로 인정받기 원했던 주민들의 기대가 무너지자 경제적 보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사를 건 투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때 ‘치안’이 인민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밀양을 정치적 적대와 군사적 적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치안-전장’으로 개념화한다. 이런 전장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일상’에 대한 복귀 열망은 밀양에서 ‘할매’들이 투쟁의 주체인가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상의 재생산을 담당했던 할매들의 투쟁 경험은 권리와 인격의 감각을 부여했다는 분석도 등장한다.

    밀양에 대규모의 경찰이 투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국가로부터 배제된 존재이자 국가에 반대하는 ‘적’으로 치안의 대상이 되었음을 깨달은 밀양 주민들은 스스로 안전을 찾고자 장소 탈환을 시도하게 된다. 이 진지 구축은 곧 연대와 이어진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양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했으나 저자의 지적대로 밀양의 송전 선로 사업은 단지 밀양 지역 주민과 한국전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력망에 접속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개인의 정치적인 책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밀양의 ‘내부’에 접속해 생활 세계를 방어하고 이의 민주적 확장을 위해 개입하는 모든 사람은 내부가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밀양 주민들이 외부와 연대하며 고립감을 극복했고 밀양은 성장과 내부 식민화를 비판하는 공통 장소가 되었다.

    밀양 투쟁은 밀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통자원이라는 대안 패러다임과 민주주의 급진화를 위해

    국가 전력망 구성 원리와 밀양 주민들의 투쟁의 의미를 분석한 이 연구는 대안 모색으로까지 나아간다. 밀양 주민들과 연대운동은 투쟁 과정에서 무조건적 ‘반대’를 넘어 정부와 한국전력의 기획과 경합할 수 있는 대안 패러다임의 ‘요소’를 창안했다. 이는 밀양을 살아가는 이들의 장소로 전환하는 것, “밀양에 산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요구 안에 존재한다.

    저자는 장소 기반 인민들의 일상생활 방어와 존속이 국가 전력망의 운영과 관리보다 우선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만 하며 이런 요구가 실현되려면 해당 장소의 고유한 필요에 적합한 장소 기반 전력망의 운영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밀양이 ‘시장’과는 다른 방향에서 한국의 국가 전력망을 민주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 핵심은 국가 전력망의 분산과 협력의 네트워크를 매개로 한 분산 전원으로의 전환을 특정 공동체를 통해 실현하는 전력의 ‘공통자원’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직 공동체 전체의 소유, 곧 공통 소유를 근거로 자원의 생산자와 이용자가 일치하거나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결정으로 접근하는 공통자원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 개념이 밀양 주민들의 투쟁에 내재된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바탕 위에서, 저항과 대안을 연결해 실천할 가능성을 증폭할 수 있다고 서술한다. 이는 ‘마을’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협력해 우리의 ‘공통자원’을 지키는 공동 소유양식으로부터의 패러다임과도 일치한다. 더불어 국가의 조직화된 ‘폭력’에 뭉쳐 대항하는 ‘울력’을 발현하기도 한다.

    이제 밀양은 “공통자원의 약탈 없이 전력에 대한 우리의 필수적인 필요가 충족될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이는 생태위기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 에너지 기반의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로 전환 과정에 노동운동이 적극 참여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비용과 고통이 노동계급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지 않는 전환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의로운 전환’의 발상으로 나아간다.

    공동체에 의한 공통자원 관리나 에너지 자급 운동과 같은 실험도 이미 진행 중이다. 장소를 둘러싼 공통자원과 공적 자원의 갈등은 이런 공통자원 기반 대안 창출을 위한 국가 내부의 민주적 변형과 국가 외부에서 공통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공동체의 능력 확장이라는 이중전망을 통해서 민주적인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밀양 투쟁은 이미 밀양만의 투쟁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한편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농촌의 부 약탈을 통한 도시 발전, 여성 노동 무급화나 자연 자원 파괴와 같이 시초 축적을 확장하기도 한다. 이는 다시 약탈을 통한 축적이 야기한 ‘장소와의 분리’를 겪은 인민이 ‘점거’를 선택하는 과정의 당위성을 보여준다. 점거 안에는 ‘그들’의 권리에 대항하여 ‘우리’의 권리를 창안하고 이에 대한 권리 인정을 획득하기 위한 권리와 권리의 투쟁이 존재한다. 따라서 점거 투쟁은 장소를 인민과 분리된 국가의 소유나 인민과 분리된 자본의 소유로의 전환, 곧 인민을 배제하는 배타적인 독점 상태로 전환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에 대항한다.

    공통자원에 대한 권리가 민주주의 그 자체를 근본으로부터 사유하고 이의 실천을 조직하는 민주주의의 급진화 과정의 일부라고 해석한 이 책에서는 결론적으로 둘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강력한 대안을 위해 대항실천과 운동을 조직하며 전체 사회의 변형 및 일상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곧, 밀양의 전쟁은 다른 세계를 위한 투쟁인 동시에 다른 일상을 위한 실천이기도 했다. 밀양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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